아직 포기하지 않았거든요..

리사의 마음 카페

by 김리사

실패 전문가입니다만..



거실의 조도를 낮추고 남편과 마주 앉은 저녁이었다. 얼음이 짤그랑거리는 하이볼 잔을 내려놓으며 남편이 툭, 한마디를 던졌다.

"또 뭘 시작하려고?" "……." "또 하다 말 거면 아예 시작하지도 마! 당신은 그게 문제야.“

걱정 반, 타박 반이 섞인 그 말에 가슴 한구석이 뜨끔했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반박을 하이볼 한 모금과 함께 꿀꺽 삼켰다. 억울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평생 내 편이 되어줄 것 같았던 그 남자. 하지만 현실은 늘 ‘남의 편’ 같던 남편에게서 주로 듣는 말이지만, 사실 고요한 새벽이면 내 내면 깊은 곳에서도 들려오는 소리이기도 하다.


그래, 어쩌면 내 삶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놓고 본다면 나는 실패를 전문적으로 수집하고 있는 ‘실패 전문가’가 아닐까?


내가 ‘실패 전문가’라고 스스로를 명명하게 된 건 우연히 펼쳐 든 신문 기사 때문이었다. 커피 향이 채 가시지 않은 아침,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카이스트 실패연구소 소장님의 인터뷰였다. 이공계에서는 ‘실패하는 용기’가 필수 덕목이라 했다. 실험실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무수한 가설이 깨지고 데이터가 버려져야, 비로소 세상을 바꿀 발명품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나는 복잡한 수식을 다루는 이공계 출신도 아니고, 위대한 발명품을 뚝딱 만들어내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내 삶이라는 실험실’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치열한 연구원이다. ‘새로운 버전의 나’를 쌓아올리기 위해 나는 오늘도 기꺼이 실패한다. 하다가 만 일이 태반이고, 먼지가 쌓여가는 계획표도 수두룩하다. 그러나 그 수많은 시도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내 곁을 지키는 것들이 있다. 늦은 밤 타닥타닥 자판을 두드리는 글쓰기, 학생들의 눈을 마주하며 호흡하는 영어 강의, 그리고 맛집을 찾아다니며 기록을 남기는 블로그 포스팅. 이것들은 오래 해도 질리지 않고, 식어가는 내 열정에 다시 불을 지핀다.


잠시 눈을 감고 내가 거쳐온 ‘실패의 역사’를 더듬어 본다. 하지만 실패라고 단정 짓기엔 내 삶은 여전히 뜨거운 현재진행형이다. 카이스트 실패연구소 소장님의 말처럼, "나는 실패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아직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있을 뿐이다.

내 기억의 서랍 속에는 먼지 쌓인 도전들이 가득하다. 학창 시절, 나는 ‘지구별 여행자’라는 낭만적인 단어에 꽂혀 지구본을 돌려가며, 가고 싶은 곳에 점을 찍었다. 어른이 되면 세계 곳곳을 누비리라. 발길 닿는 곳이 곧 집이 되는 삶을 꿈꿨다. 아직 가보지 못한 대륙이 많으니 이 도전장은 실패가 이닌 유보된 꿈의 현장이다.

실패한 대학이라며, 1학년을 마치고 자퇴서를 내던 날의 떨림, 다시 수능 문제집을 펼치던 막막함을 기억한다. 그리고 재입학 후 휴학을 반복하며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세상 속으로 뛰어들었던 날들은 모두 실패와 성공을 오가던 내 젊음의 초상화다.


영문학과 졸업 후, 주머니에 돈도 없으면서 떠났던 호주 워킹홀리데이 유학 시절은 또 어떤가. 엄마 카드로 편도 비행기 표를 끊고, 나머지 비용은 개인 대출을 알아보던 중 그 시절 만나던 남자친구가 700만원을 빌려줬다. 그곳에서 워홀로 벌어서 값을 자신이 있었기에 벌인 일들이다. 남자친구는 그때 내 눈빛을 보더니 사채 빚이라도 내어서 나갈 기세여서 자기 돈을 싸게 빌려 준 것이라 했다. 내가 돈을 안 값으면 어쩌려고 그 돈을 빌려 줬냐고 하니, 그럼 매달려 결혼이라도 해야지 라고 했다. 결국 귀국 후 곧 우리는 결혼을 했고 그와 나는 부부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남편이 된 그 시절 남자친구에겐 아직도 그 빚이 남아있다. 가끔 남편이 말한다. “여보, 내돈 700만원 언제 갚아 줄거야?” 그러면 나는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걱정마, 죽기 전까진 꼭 갚을게!” 오늘날의 이런 유쾌한 대화는 무모한 도전을 아끼지 않던 과거의 리사가 있어 가능하지 않을까?


시드니의 뜨거운 태양 아래, 지갑은 얇았고 끼니는 부실했지만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눈빛만은 살아 있었던 나를 기억한다. 비싼 호주 물가에 외식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마트에서 싼 재료들만 사서 음식을 해먹었다. 비록 계획했던 거창한 액션 플랜은 다 지키지 못한 채 돌아와야 했지만, 그 ‘실패’ 같았던 시간은 내 영어 강의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날것의 표현들, 현지의 공기, 그 치열했던 생존 영어가 지금의 ‘강사 김리사’를 만들었다.

결혼 후에도 나의 실험실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아이들에게 옷을 직접 만들어 입힐 거야.” 호기롭게 재봉틀을 샀다. 하지만 ‘드르륵, 드르륵’ 경쾌한 소리도 잠시, 엉켜버린 실타래와 삐뚤빼뚤한 박음질 앞에서 나는 좌절했다.


영어 일을 하다가 마음치유에 관심이 많아서 덜컥 대구 사이버대 미술치료학과에 편입했다 중도하차 때도, 야심 차게 독서 논술 공부방을 열었다가 7개월 만에 간판을 내리며 텅 빈 교실을 바라보았을 때도, 나는 분명 실패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책을 쓰겠다며 결제한 수많은 온라인 강의들, 온라인 판매업을 해보겠다며 내면 도전장…. 내 삶의 궤적은 어쩌면 끈기 없는 중도 하차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보니, 잃은 것보다 남은 것이 더 많다. 재봉틀은 멈췄지만 내 아이의 목엔 엄마표 턱받이가 둘려 있었고, 미술치료학과는 중퇴했지만 사람의 마음을 읽는 상담가의 눈을 갖게 되었다. 7개월 만에 문을 닫은 공부방은 내게 뼈저린 경영 수업이 되어주었다. 허공에 날린 줄 알았던 글쓰기 수업료는 몇 년 뒤, 내 이름이 박힌 세 권의 책으로, 그리고 다른 이의 치유글을 다듬어주는 코칭 일로 되돌아왔다. 나의 무모했던 도전들은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제 자리에서 저마다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2025년, 마흔이 넘은 나이에 나는 또다시 낯선 도전을 시작했다. 매일 아침 경제 신문을 펼치고, 스마트폰 삼각대 앞에서 심호흡을 한다. <리사의 마음 카페>라는 유튜브 채널. 화면 가득 내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나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두서없는 인사이트를 쏟아낸다. “안녕하세요, 리사의 마음 카페입니다.” 꽉 찬 화면속 어색한 미소와 떨리는 목소리. 내 옛 자아가 본다면 기절초풍할 일이다. 하지만 몇 개월 만의 결과는 놀랍다. 구독자 67명과 동영상 업로드 수 120개(비공개 포함). 채널 조회수 2.9만. 시청 시간 78.4시간. 최다 조회를 기록한 쇼츠는 내 우주의 방(Bang in m Universe)라는 음악 업로드 영상으로 2.9천 회가 조회되었다. 방구석 작사가의 끄적임이 고퀄리티 음원이 되는 세상이라니. 요즘 이 일을 할 때 나는 가장 설렌다.

물론, 솔직히 말하자면 이 모든 도전의 기저에는 ‘월 천만 원 인세 소득’이라는 욕망이 꿈틀거린다. 아직 통장에 찍히는 돈은 ‘천리길 앞에 한 걸음’ 정도다. 누군가는 "돈도 안 되는 짓을 또 한다"며 혀를 찰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조차도 가끔 흔들리며 묻는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내가 꿈꾸는 월 천만 원 인세 소득자의 삶은 대체 어디쯤 있는 걸까?“


하지만 안개 속을 걷는 것 같아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지금 멈춰 있지 않고 ‘길 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영어 강의든, 유튜브든, 혹은 치유 코칭이든, 나는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것이다. 양자물리학자들은 말한다. 관측하는 행위가 곧 존재를 만든다고. 가능태의 바다 속에 둥둥 떠다니는 나의 꿈들을 현실로 끌어당기기 위해, 나는 오늘도 끊임없이 성공한 나를 관측한다. '나는 힐링 에세이 작가다. 나는 성공한 영어 강사다. 나는 교육 사업가다.‘

오늘도 내 영혼이 가장 기뻐하고 설레는 일을 찾아 나침반을 든다. 그 나침반의 바늘은 타인의 시선이 아닌, 오직 내 마음을 가리키고 있다. 지금 하는 이 엉뚱하고 무모한 도전들이 모여 훗날 어떤 근사한 그림으로 완성될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두렵지 않다.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계속 갈 것이다. 포기라는 마침표를 찍지 않는 한, 내 문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결국 내 손에 남을 열매의 이름은 ‘성공’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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