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의 서재
앤드루 포터의 단편집 중 표제작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정적인 문체 속에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의 파동을 담아낸다.
소설은 대학 시절 물리학 교수였던 '로버트'와 특별한 정신적 교감을 나누었던 주인공 '헤더'의 회상을 따라간다. 로버트는 헤더에게 물리학을 가르치며 지적인 자극을 주는 동시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내면을 공유하는 유일한 존재가 된다.
시간이 흘러 헤더는 다정한 남편과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지만, 문득문득 로버트와 보냈던 그 모호하고도 강렬했던 시간들을 떠올린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생의 어떤 결정적인 흔적에 관한 이야기다.
정의할 수 없는 관계의 무게 우리는 모든 관계에 이름을 붙이려 한다. 친구, 연인, 혹은 스승과 제자. 하지만 헤더와 로버트의 관계는 그 어떤 범주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다. 소설은 삶에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오히려 본질이 훼손되는 소중한 영역이 있음을 시사한다.
빛과 물질의 이중성 물리학에서 빛이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듯, 인간의 감정 또한 하나로 규정될 수 없는 이중성을 지닌다. 현재의 평온한 삶-물질 속에서도 과거의 강렬한 기억-빛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곁을 부유한다.
기억이라는 그림자 헤더가 로버트를 추억하는 방식은 파괴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 기억을 통해 현재의 자신을 지탱한다. 때로는 이루어지지 못한 것들이, 결실을 본 것들보다 더 오랫동안 영혼의 허기를 채워주기도 한다.
이 소설은 명확히 사건들을 판단하고 분별하는 시선을 보여 주지 않는다. 다만 우리 인생에 존재하는 수많은 '설명할 수 없는 이론'들을 가만히 응시하게 만든다. 빛이 물질을 투과하듯, 어떤 기억은 세월을 뚫고 들어와 현재의 우리를 비춘다.
담담한 문체와 그 어떤 판단의 언어가 없어 더 크게 울렸던 것 같다. 그것을 보는 독자에게로 넘겨주며 내내 긴 여운을 남기는 단편소설이다.
한 번 읽고 나서 이 꼭지,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천천히 다시 읽고 싶어졌다.
.마치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한번 더 보고 싶었던 이유와 같았다.
명작은 읽은 후로도 여운을 주는 법임을 또한번 느낀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