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뒤에 숨겨진 진짜 나를 안아준다는 것
이번 설 연휴, 모처럼 찾아온 고요 속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레이디 두아>를 정주행 했다. 화면 속에서 화려한 빛을 내뿜는 '사라킴'의 모습은 아름다웠지만, 그 이면에서 느껴지는 서늘함이 내내 마음을 붙잡았다. 이 드라마는 한 여자가 스스로 쌓아 올린 견고한 가짜가 무너지는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진짜 나'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여인의 밀실, 그 화려한 감옥 '부두아'
드라마의 중심에는 상위 0.1%를 위한 하이엔드 브랜드 '부두아(Budua)'가 있다. 본래 '여인의 밀실'을 뜻하는 이 공간은 극 중 사라킴에게 단순한 일터를 넘어선 의미였다. 그녀는 이름도, 과거도 모두 지워버린 채 이 밀실 안에서 세상이 갈망하는 가장 완벽한 가짜를 설계한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한다.
"사람들은 내가 누군지 궁금해하지 않아. 내가 무엇을 걸쳤는지가 곧 나니까."
이 대사는 드라마 속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았다. 우리 역시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울 앞에 서서, 조금 더 괜찮아 보이는 나를 과시하며 살아가지 않는가. 내면의 결핍을 감추기 위해 명품이라는 옷을 입었던 그녀처럼, 우리도 각자의 가면을 쓰고 스스로를 방어하며 살아간다.
가짜의 간절함은 진짜가 될 수 있을까
드라마 속 사라킴의 이면에는 지독한 자기부정이 서려 있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게 잘못이었습니다. 부자는 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태어나는 거였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게 잘못입니다. 저는 잘못 태어났습니다."
일그러진 가치관으로 잘못된 선택들을 연이어하는 그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언제부터였을까..
그녀는 묻는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습니다. 왜 하필 제가 어둠입니까? 빛나려면 타버려야만 합니다." 어둠 속에 갇히지 않기 위해 제 몸을 태워버리기로 선택을 하는 그녀. 계속해서 그녀의 판단은 파괴적 선택으로 흐르며 형사 박무경의 추궁 앞에 그녀가 던진 질문은 묵직한 파동을 일으킨다.
"진짜와 구별할 수 없는데, 가짜라고 할 수 있나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가 되기 위해 쏟았던 그 치열한 시간들. 비록 시작은 위조된 삶이었을지언정, 그 삶을 지키려 했던 간절함만큼은 그 무엇보다 뜨거운 '진짜'였다. 물론 잘못된 방식의 간절함이었지만 말이다. 진짜와 구별할 수 없다면 과연 우리는 그것을 가짜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드라마 내내 나를 따라다니며 답을 회피하게 했다.
무너진 자리에서 비로소 만나는 나
그녀가 갈망했던 것은 어쩌면 화려한 보석이 아니라, 단 한순간만이라도 온전히 빛나는 자신을 긍정하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것이다. 화려한 가면이 벗겨지고 상처투성이인 본모습이 드러나는 순간, 내 눈엔 역설적으로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워 보였다.
무너진 욕망 위에서 마주한 자신의 진짜 얼굴은 담담하고 차분하다. 드라마는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당신이 쓰고 있는 가면은 안녕한지, 그리고 그 뒤에 숨은 당신의 진심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쓰고 있는 가면이 우리를 정의 내릴 수 있는지,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지 말이다.
질문을 통해 여운을 남기는 드라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