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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사 Jan 13. 2023

브런치 하며 무슨 이야기하세요?

여고동창 4인이 뭉쳤다. 거제에 사는 친구 2명, 통영 1명, 창원 1명, 우리는 여중, 여고 동창이다. 넷 중 셋은 결혼을 해서 아이가 둘씩 있으며, 한 친구는 싱글이다.(우리 기혼녀들의 부러움을 몹시 사는 대목.)


친구 두 명은 국가 공무원이고, 한 친구는 전업주부이며, 나는 프리랜서이다. 통영에서 여중, 여고를 함께 나온 우리는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웃음을 터뜨리던 10대를 지나, 청춘의 꽃 20대, 어른이 되기 위한 고군분투의 30대, 그리고 마구마구 흔들리며 생의 대지진을 맛보는 40대가 되었다.


내 삶의 힘든 구간을 지날 때는 친구들의 힘듦을을 보지 못한다. 그간 건강을 잃어 큰 고생을 한 친구도 있고, 오랜 시간 맞지 않는 일을 하며 번아웃이 와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든 친구들도 있다. 정신없이 달려오니 어느새 마흔이었다. 나도 친구들도 눈가에 주름이 늘고 마흔에 걸맞은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마음은 여전히 10대 소녀이지만 둘러앉아 나누는 얘기들이 이젠 무게가 있는 이야기가 많은 것이다.





친구들이 살고 일하는 거제로 창원에 사는 내가 달려갔다. 주로 이렇게 깜짝 모임을 주선하면 친구들은 외출을 내고 2~3시간가량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건이다. 1시간 15분이면 갈 수 있는 곳에 절친들이 살고 있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차를 몰고 간다. 예전에는 그냥 시간 될 때 간헐적으로, 시간이 맞는 사람 위주로 만나다가 얼마 전부터는 계모임을 제대로 하고 있다. 이렇게 넷이서 계모임을 하며 주기적으로 뭉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오랜 절친 우리 넷에게 그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3년 전이었다. 안타깝게도, 친구 한 명이 암에 걸렸다.


마흔도 되기 전에 암에 걸려서, 항암과 치료를 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재발해서 다시 수술을 받고 현재도 주기적으로 추적 관찰을 하며 지내고 있다. 그 불안이 아직도 친구에게 가득 고여 때론 눈가가 촉촉하다. 이 친구를 보면서 친구들은 다들 각자의 삶을 돌아보게 된 것 같다. 우리는 더 많이 소녀시절처럼 그렇게 웃고 즐기며 살자고 마음을 먹었다. 말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같이 있으면 그런 에너지가 흐른다. 하하 호호, 더 많이 웃고 유쾌하게 살자고. 암묵적인 우리들의 눈짓과 마음이 보인다.





이렇게 맛있는 브런치와 풍경이 예쁜 곳에서 우리는 더 많이 웃고 즐긴다. 시시껄렁한 농담도 하고, 자식 이야기도 하고, 싱글인 친구의 삶을 동경하기도 하고 말이다. 가보지 않은 길은 늘 매력적인 법이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공무원 친구 두 명을 몹시 부러워하면, 친구들은 프리랜서인 나를 부러워한다. 서로의 삶의 조각이 여기저기 맞아지면서 못 가본 삶을 대신 맛본다.





한 친구가 쨍한 형광느낌이 나는 파란색 니트를 입고 와서 같이 놀리듯 웃었다. 나이가 드니 자꾸 옷이 쨍한 것이 끌린다고 한다. 격하게 공감하며, 옷이라도 쨍하고 싶은 우리가 참 귀엽기도 하고 사랑스럽다. 우리는 마흔이 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어느덧 마흔이 된 우리가 쨍한 옷을 입은 친구를 귀엽게 바라보며 웃는다.





평일 낮, 브런치를 하는 여중, 여고 동창 넷. 동그랗게 둘러앉아 서로를 본다.


마흔까지 참 애쓰고 살았던 우리는, 이제 그전과 다른 삶을 꿈꾼다. 공무원을 하며 같은 일들과 사람들의 문제로 번아웃이 온 친구의 힘든 마음을 위로하며, 말했다. 일터를 바꿀 수 없다면, 힘이 날 수 있게 재밌는 다른 도전들을 해보자고 말이다. 미친척하고, 특이한 동호회도 가입해서 활동해 보고, 이색 취미를 갖는 것이다.


산악회도 가보고, 서핑도 배워 보자. 뭐든 새로운 걸 시도하지 않으면 이렇게 사십 대가 다 지나가 버릴 것 같으니 말이다. 암에 걸린 친구에겐 걱정을 내려놓고 현재를 살자고 말해준다. 친구도 노력해보겠다고 한다. 당장 다음 달에 또 병원에 가서 건강을 점검해야 하니 예민해져 있는 친구를 본다. 어찌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괜찮다고 말을 들어야 또 한숨을 휴~내쉬며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하고 또 살아갈 수 있다.






도심에 이렇게 야외 캠핑장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브런치 카페가 있다. 우리는 세상 가장 팔자 좋은 네 사람이 되어 여고동창 브런치 놀이를 했다. 항상 카페에서 브런치를 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는데, 마음을 먹고 시간을 빼니 우리도 그럴 여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즐겁고 유쾌하고 행복한 한때를 보냈다. 브런치를 두고, 아주 많이 감사하고 행복해서 그 순간이 더 오래 지속될 수 있길 바라며.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가 중학생 때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 아이들이 중학생이 된다. 서로의 딸과 아들이 중학교 교복을 입은 모습을 보며, 그 엄마가 된 우리들은 서로를 다정하게 바라본다. 한 바퀴를 돌아, 우리는 엄마가 되어 있고, 그때처럼 우리 아이들은 소녀가 되어, 멋진 소년이 되어 우리를 보고 웃는다.



브런치를 두고, 마음은 중학생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우리는, 이제 중학생이 된 우리 아이들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들었다. 깨어있지 않으면, 삶은 어쩌면, 너무나 짧고 강렬하게 우리의 시간을 통째 삼키고 있는 것 같다. 정신을 바짝 차려서 내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도록, 더 즐겁게 살아야겠다. 친구들과 브런치를 더 자주 할 것이다.


더 많이 웃으며 더 많이 철없는 엄마가 될 것이다. 평일 낮 브런치가 팍팍하고 힘겨운 어른 놀이 중인 우리 삶에 활력이다. 브런치를 두고, 죽음과 사라짐, 한라산 등반, 그럼에도 사랑을 얘기하는 낯설고 사랑스러운 우리를 만났다. 내 안의 여중, 여고생 그 아이들이 살아나서 같이 웃는다. 친구의 암도 없던 일이 되길 바라며, 내일 출근이 지옥 맛이 아니길 바라며, 프리랜서의 불안이 아무것도 아니길 바라며. 그렇게 브런치를 하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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