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by Keep Walking

나는 중년이 된 지금도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엄마라 부른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라고 부르며 존대를 하지 않은 습관이 그대로 굳어져 새삼 존대를 하며 어머니~ 하고 부를라 치면 아주 어색하다. 어머니도 예전처럼 그대로 이름을 부르고 싶어 하시는 눈치지만 이미 중년이 되어 버린 아들의 이름을 강아지 부르듯 하시기가 뭣하신지 아들~, 또는 가끔 누구누구 아범~ 이라 부르신다. 어머니가 나를 부르실 때의 호칭은 달라졌지만 목소리와 태도는 변한 게 없으시다. 가끔 전화로 대화할 때나 마주보며 이야기 할 때 어머니 말에는 따뜻한 장난기가 배어 있고 여전히 나를 강아지로 보시는 것 같다. 중년에.. 강아지라니?

어머니는 키가 작지만 걸음이 재시고 동작이 빠르시다. 성질 급한 아버지의 독촉과 흥부네처럼 많은 자식들을 혼자의 힘으로 돌보셔야 했기에 매사를 빠르게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여러 사람의 일을 홀로 하시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못 말리는 낙천성과 긍정 마인드는 어머니의 늘 바쁜 일상을 보고 있어도 그 바쁨에 동조되거나 긴장되지 않도록 했다. 나는 살면서 어머니가 한 번도 희망의 끈을 놓고 좌절하시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어머니가 겪어야 했던 많은 시련과 역경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어머니는 극복해내셨다. 당신의 자식을 온전하게 키워내겠다는 어머니로서의 본능이 가장 크게 작용했겠지만 거기에 더해 어머니의 낙천적인 성품과 세상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태도도 큰 역할을 했으리라. 어머니는 또한 세상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과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여든을 훌쩍 넘기신 나이임에도 드라마에 빠져있기 일쑤이고 가수 임*웅의 열렬한 팬이시다. 가끔 어머니 집 근처에 있는 산으로 등산을 할라치면 무릎 관절염도 잊으신 채 따라 나서려고 신발을 챙기신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있어서 자식에 대한 사랑은 말릴 수 없는 본능이다. 내 어머니도 예외는 아니어서 나 역시 어머니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그 사랑에 대해 몇 가지 얘기해보면, 먼저 어머니가 내게 베푸신 무조건적인 이해와 수용이다. 이러한 사랑은 내가 자라 성인이 되기까지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어머니는 가끔 어린 시절의 나의 모습에 대해 얘기하곤 하셨다. 어머니에 따르면 어린 시절의 나는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인 아이로 말수가 적은 편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학교에서 다물고 있었던 입을 열어 소소하고 일상적인 사건들을 어머니께 조잘조잘 모두 얘기하곤 했다고 한다. 그 때 어머니는 학교에서 내가 겪은 사건들에 대해 다정하게 경청하시고 이해해주셨다. 그 이해와 수용은 무조건적인 것이었으며 내가 세상에 나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또한 자존감을 유지하며 살게 해준 자양분이 되었다. 성인이 된 지금, 성장기에 있는 아이의 생각과 결정을 이해하고 수용해주는 부모의 태도야말로 아이가 세상을 대하는 자신감과 도전의지 등을 성장시키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배움이 짧은 어머니가 이런 걸 모두 염두에 두시진 않았겠지만 자식에 대한 넘치는 사랑이 무조건적인 이해와 수용으로 연결된 것은 확실하다.

두 번째로 두드러지는 어머니의 사랑은 말 그대로 먹이는 것이다. 이 본능은 너무 강렬해서 소화불량이라는 역효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식에게 우리 어머니들만큼 맹렬하게 먹이려 하지 않는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왜 이렇게 자식 먹이기에 열중할까? 우리 어머니 세대의 배곯던 시절의 포한이 음식이 넘쳐 나 영양과다로 인한 비만의 지경까지 이른 현재의 상황을 망각시켰기 때문일까? 어쨌든 어머니는 유별나게 먹이려 드셨다. 자식을 배불리 먹이고 싶어 하는 그 욕구는 너무 강렬해 보여서 어떤 이성적인 생각이나 계산 이전의, 무의식적인 본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여하튼 이런 넘치는 사랑으로 인해 가끔 소화불량이 발생하기도 하고 어머니 집을 찾을 때면 과식을 준비하기 위해 속을 비워두기도 한다. 어머니는 특히 어린 시절 내가 좋아했지만, 지금은 먹기 어려운 음식들을 만들어 주신다. 감자범벅, 잡채, 동치미 등 변함없는 그 맛에서 어린 시절에 베풀어주신 어머니의 사랑을 고스란히 다시 느낀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시고, 가난한 집으로 시집와 많은 고생을 겪으셨다. 한국 사회의 어머니들이 그러하듯, 가난한 시대의 아픔을 숙명처럼 짊어지고 자식 잘되기만을 유일한 희망으로 삼으며 개인으로서의 삶, 한 여인으로서의 삶은 진즉에 포기하며 살아오셨다. 어머니가 바라는 유일한 행복이란 자식의 성공을 보는 것이었다. 이제 중년이 되어버린 내가 어머니가 바라신 그 유일한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머니가 바라신 자식의 성공이란 무엇이었을까? 입신양명하여 세상에 이름을 알려 명예를 얻는 것이었을까? 경제적으로 성공하여 큰 부를 축적하는 것이었을까? 결과적으로 나는 이에 화답하지 못하였다. 입신양명하여 출세하지도 못했고 경제적으로 성공하지도 못했다. 돌이켜보면 그러한 성공에 실패한데 대해 아쉬움이 남고 어머니께 효도하지 못한 것 같은 죄송한 마음이 있다. 어머니의 생각은 어떠실까? 물론 자식에 대한 기대가 컸었기에 실망하는 마음이 있겠지만 어머니가 바라는 행복은 다시 새롭게 정립되어 있을 것이다. 당신의 자식이 이루지 못한 명예의 성취와 부의 축적에 대해 아쉬워하지 않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는 것으로. 자식이 온다는 소식에 너무 많은 양의 잡채를 만들고 양푼 가득히 떠내 오시는 어머니의 바쁜 걸음을 보면서 나는 확인한다. 새로이 정립된 어머니의 행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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