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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Sep 15. 2023

인간 X(2)

삶, 죽음, 존재...


 한편, 슈퍼컴퓨터 “챠크리티”의 명령으로 “죽음”이라는 자연법칙이 처음 도입됐지만 죽음을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죽음을 알아보기로 했다. 그 방법은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이다. 다행히 프리티비에는 수많은 인간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모두 X와 동일한 개체였고 신체 조건, 지적 능력이나 감정, 사고 방식 등에서 차이가 없다. X가 여타의 다른 인간들과 다른 점은 단지 왕국을 존속시켜야 한다는 미션이 부여되어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뿐이다. 완전히 동일한 조건을 부여받은 인간들이 초원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X는 인간 종인 “마누쉬” 중 수명이 다한 개체 하나를 자신의 거처로 옮겨와 실험에 착수했다. 실험은 간단했다. 자신의 뇌를 죽어가는 개체의 뇌와 동기화시켜 죽는 순간 그 개체가 겪게 될 임사체험을 고스란히 겪어보는 것이다. 실험에 임하기 위해 인간 X와 또 다른 인간이 실험실에 나란히 누웠다. 이제 몇 초가 지나면 그는 옆에 누워 있는 인간과 같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동료가 죽는 순간 자신도 동시에 감지하게 될 느낌과 감정들, 죽음 이후에 혹시 찾아올지 모르는 또 다른 차원과의 대면 등 살아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직접 경험하게 될 것이다. X는 죽은 후 1시간이 지나면 다시 깨어나도록 자신의 뇌를 프로그램해 놓았다. X는 처음 겪게 되는 “죽음”이라는 낯선 사건 앞에서 존재 이래 한 번도 품지 않았던 생각, 자신이 혹시 누군가의 피조물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고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임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이윽고 동기화를 통제하는 제어기의 삐-하는 부저 음과 함께 옆 동료의 육체로부터 생명이 빠져나갔다. 동시에 X의 의식도 사라졌다. 순간 모니터 화면이 한 점으로 소실되어 꺼져버리듯 자신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의식이 한 점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가 인지했던 모든 세상은 사라졌다. 사라졌다는 것을 느끼는 것도 사실 제 3자의 느낌일 뿐, 정작 X에게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말 그대로의 무(無)가 찾아왔다. 그는 전원이 나가 아무 기능도 할 수 없는 기계 덩어리 혹은 고깃덩어리에 불과했고 1시간이 지나 다시 깨어났을 때, 죽음 이후에 혹시 대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던 다른 차원의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완전 헛소리에 불과한 기우였다.    

 

 임사체험을 마치고 “자연사(死)”도 이 왕국을 운영하는 자연법칙의 하나로 정립할 수 있음을 확인한 후, 프리티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에게는 “삶”이 주어졌다. 

 이제 종을 이루는 개체들은 살아온 세월에 따라 “나이(Age)”가 들었다. 이전에는 없던 일이다. 수명이 부여된 생명체들은 복제 후 성장하여 성체가 되고 늙고 자연사하게 된다. X는 복제를 통한 탄생부터 죽을 때까지의 기간을 “삶”으로 정의하고 프리티비를 구성하는 생명체는 필연적으로 삶을 가지도록 함으로써 프리티비 왕국 버전 1.0을 완성했다.     


 생명체에 탄생과 죽음의 주기인 “삶”을 부여함으로써 유한한 자원문제도 해결했다. 죽은 개체를 다른 생명의 복제 재료로 이용하여 자원을 순환시켰다. 프리티비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은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다. 그것은 프리티비의 지형을 이루는 토지, 산, 계곡 등 무기물뿐만 아니라 수많은 생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에 해당한다. 죽은 개체는 때로는 프리티비의 흙으로 돌아가고 때로는 바나스파티를 구성하는 재료가 되고 또 때로는 마누쉬를 만드는 재료가 된다. 다시 말해 어떤 것으로든 환원하여 재생되었다. 개체의 죽음은 새로이 탄생하는 생명의 재료가 되어 프리티비 자원의 거대한 순환을 가능하게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X는 프리티비 왕국 버전 1.0을 완성한 후 모처럼 찾아온 평화의 시기를 음미하며 거주지를 나와 초원을 거닐고 있었다. 저쪽 멀리 한 무리의 성체 “마누쉬”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똑같이 생긴 마누쉬들은 생김새로는 서로를 구분할 수 없다. X를 그들로부터 구분해 주는 유일한 표식은 그가 이마에 두른 붉은 띠였다. 붉은 띠는 프리티비 왕국의 관리자임을 상징했고 다른 마누쉬들은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으며 저항하지 않았다. 그들은 왜 붉은 띠를 두른 X가 그들을 관리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의 말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그냥” 알고 있었다. 

 마누쉬들은 X가 다가오는 것을 보자 수군대는 소리를 멈추고 양쪽으로 비켜서기 시작했다. X는 마누쉬들이 양옆으로 갈라서며 생긴 길 가운데로 걸어 나갔다. 잠시 후 그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끔찍한 광경을 목도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수십 마리나 되어 보이는 차르타들이 집단으로 죽어 있었다.

 어떤 생명체이건 프리티비가 존재한 이래 이렇게 한꺼번에 떼죽음을 당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이 왕국에서 죽음을 목격하는 것은 드문 일로 포식자에게 습격당한 피식자의 죽음이 간헐적으로 목격되곤 했지만그마저도 주검이 거의 남김없이 포식자에게 흡수되어 시체가 초원에 드러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X는 죽음이라는 통제를 도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한 이 대규모 죽음이 어쩐지 우연히 발생한 일 같지 않았다. 프리티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죽음이 새롭게 등장했다는 것이그를 두렵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프리티비에 존재하는 죽음은 포식자에 의한 죽음과 얼마 전 도입된 자연사 두 가지뿐이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차르타들의 주검 위로부터 피어오르기 시작한 공포의 기운이 하나로 합쳐져 주변에서 웅성대는 마누쉬들에게로 퍼져나갔다. 저 멀리 산 밑으로 핏빛 태양이 저물며 동쪽 산으로부터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X는 마누쉬들과 힘을 합쳐 죽은 차르타들을 모두 땅에 묻었다. “다린다”와 “마누쉬”들에게 배분하여 식량으로 사용하게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었고 그들을 식량으로 사용했다가 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땅에 매장하여 프리티비의 자원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단, 조사를 위해 한 마리는 묻지 않았다. 그것을 거처로 옮겨 더 자세한 조사를 할 작정이었다.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죽은 차르타 한 마리를 메고 자리를 떠나려 할 때 저쪽 뒤에 있던 마누쉬 무리중의 누군가가 말했다. 

“차르타들이 죽기 전 이 지역에만 비가 내렸어요. 이 지역은 좀체로 비가 오지 않는 곳인데...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X는 고개를 돌리고 마누쉬 무리로부터 들려오는 그 말소리를 따라 다가갔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인간 무리들이 천천히 물러섰고 마지막으로 물러서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마누쉬 하나가 허리를 굽히고 주저하며 말을 이었다. 

“...그 빗물을 마신 차르타들이 죽게 된 것이 아닌지...”

 그의 말에 X는 당황했다. 프리티비의 기후는 중앙제어실에서 제어하고 있는데 그런 국지적인 강수는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X는 죽은 차르타들이 마신 것으로 보이는 빗물 웅덩이에서 물 한 통을 긷고 차르타 주검 하나를 메고 기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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