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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Sep 14. 2023

인간 X(1)

삶, 죽음, 존재...

 인간 X는 정확히 아침 6시에 눈을 뜬다. 

 거대한 돔의 동쪽에서 눈 부신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X는 사방이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그의 침실이자 집무실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 자신의 바깥 세계를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의 왕국은 사방에 펼쳐져 있지만 어느 쪽이든 육안으로 그 경계의 끝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그 경계 밖으로 나가는 것이 그렇게 멀거나 어렵다고 생각되진 않았지만 그럴 의도를 품지 않았고 그렇기에 왕국의 경계 끝까지 가본 적이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렇게 사방으로 트인 창가에서 자신의 왕국을 살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자신이 살아 온 세월이 얼마쯤인지 가늠이 안 되었고 어떻게 이 왕국에 오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에 순종했지만 왜 순종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품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숭고한 미션에 충실할 뿐이었다. 그 숭고한 미션은 왕국을 유지하고 존속시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왕국을 ‘프리티비(PRITHIVI)’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 이름이 어떻게 붙여지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프리티비는 거대한 돔 모양의 구조물이다. 하늘에서는 매일 동쪽에서 서쪽으로 태양이 움직였으며 동쪽에서 해가 나타날 때를 아침이라 불렀고 서쪽으로 사라질 때를 저녁이라 불렀다. X가 거주하며 왕국을 관리하는 본부는 프리티비 정 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그곳으로부터 바깥 경계면 끝까지의 거리는 모두 일정했다. 즉 프리티비는 거대한 원반 모양의 땅이었다. 지면 위에 있는 하늘은 거대한 돔의 형태를 띤 투명한 곡면으로 천장의 곡선을 따라 태양이 동에서 서로 매일 운행했다. 

 해가 떠오르고 지는 지면의 외곽 경계면은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그 산들은 거대한 원형 땅덩어리의 바깥 울타리를 이루고 있었다.

 산의 중턱으로부터 시작해서 아래쪽으로는 초원이 펼쳐진다. 초원은 프리티비의 전 지면을 덮고 있어서 누군가 프리티비를 멀리서 보았다면 그 초록빛 때문에 이 왕국을 초록 원반이라 불렀을 것이다. 그 초원의 중간중간에 인간들이 거주하는 마을이 있었고 인간의 마을 외곽지대에는 인간과 다른 생명체들이 살고 있었다. X는 초원을 이루는 생명체들의 이름이 “바나스파티”라는 것을 알았지만, 자신의 왕국이 왜 프리티비라고 불리게 되었는지를 알 수 없는 것처럼 이 생명체들이 왜 그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그 초록 생명체들을 바나스파티라는 이름 대신에 “생산자”라고 불렀다. 

 생산자들은 뿌리로 땅속의 수분을 흡수했고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무수한 잎으로 태양에너지를 이용하여 영양분을 만들었다.

 생산자들은 프리티비를 유지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존재들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영양분은 프리티비의 모든 생명체를 키워내는 에너지원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종인 X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바나스파티를 섭취하고 있지만 그의 먹거리가 바나스파티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아침 식사로 식탁 위에 차려진 초록색 바나스파티 한 줄기를 우걱 씹어 삼키며 계속해서 창밖을 주시했다. 


 저 멀리 보이는 초원에는 한가로이 바나스파티를 뜯고 있는 “차르타”들이 보였다. 차르타는 대개 무리를 지어 초원에 무성하게 자란 바나스파티를 찾아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생활한다. 그들은 네발을 가지고 빠르게 달릴 수 있어서 먹이사슬 상위에 있는 생명체들을 피해 달아나는 것에 능숙하지만 가끔은 포식자들의 먹이가 되어 그들의 단백질 공급원이 되었다. X는 차르타를 초식자라고 불렀다. 차르타는 바나스파티를 뜯어 먹고 살아가지만 사나운 “다린다”에게 먹잇감이 된다. “다린다”는 육식을 하는 생명체로 육식자다. 폭발적인 스피드와 날카로운 발톱으로 차르타를 사냥하며 때때로 인간을 위협하기도 한다. 이렇듯 프리티비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은 먹이사슬로 얽혀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고 그 사슬의 정점에는 인간 X가 속해 있는 “마누쉬” 즉, 인간 종이 있다. X는 바나스파티 한 줄기를 다 먹고 나서 식탁 위 접시에 담긴 차르타로 요리한 고기 한 점을 우물우물 씹으며 계속 생각에 잠겼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누군가 프리티비라는 세상을 이제 막 만들어 놓고 여러 가지 실험을 계획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프리티비에 태양, 산, 지면과 같은 자연조건을 만들어 놓고 불완전한 상태의 생명체들을 풀어놓은 후 자신을 관리자로 데려와 이 왕국을 좀 더 안정되게 유지 존속시키는 의무를 지웠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만 프리티비의 유래와 자신의 의무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보다 더 깊은 통찰은 하지 못했다. 가령, 이 실험의 의도가 무엇인지, 실험의 설계자가 누구인지 그 설계자는 자신과 같은 인간 종인지 등과 같은 근본적인 의문은 품지 않았다.      


 X는 프리티비의 현재의 조건과 상황들을 파악하고 어떤 조치를 첫 번째로 취해야 이 왕국이 지속 가능할까를 궁리했다. 생명체들에 대한 조치가 먼저 필요해 보였다.

 프리티비의 생명체는 자연적으로 발생했다기 보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같이 보였다. 이러한 인공적인 특성을 자연발생적인 성질로 수정해야 왕국이 자생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프리티비에 나타난 생명체는 모두 동시에 등장했다. 등장할 때부터 지금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성장하거나 늙지 않았지만 포식자에 의해 먹이로 소멸되기 때문에 전체 개체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한 조치가 필요했다.      

 프리티비 본부에는 왕국의 모든 일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중앙제어실이 있다. 그 제어실 내 위치한 슈퍼컴퓨터는 태양의 운행과 기후 조절 등과 같은 물리적이고 기계적인 조건들을 제어할 뿐만 아니라 생명체들이 프리티비의 자연법칙에 적응하며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역할도 했다. 

그 컴퓨터는 “챠크리티(自然, Nature)”라고 불리었다. 

X는 자신이 수행해야 할 첫 번째 조치를 챠크리티에게 요청했다.

챠크리티는 답을 내놓았다.      


[생명체들의 복제와 성장]     


 챠크리티의 명령에 따라 실행한 첫 조치는 개체에 자기 복제 능력을 부여한 것이다. 복제 주기는 그들을 둘러싼 환경조건에 따라 조절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했다. 생존환경이 좋을 때는 복제가 더 빈번하여 개체수가 증가했고 그렇지 않은 때에는 반대의 상황이 발생했다. 이 조치 후에 처음 나타난 현상은 상위 포식자들의 증가였다. 천적이 없는 인간종이나 육식자는 주기적인 복제로 인해 개체수가 증가했다. 그러나 이들의 증가로 인해 하위 피식자들의 개체수가 감소하기 시작했고 다시 상위 포식자들이 점차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천적이 없는 종도 개체수가 무한정 증가하지는 않았다. 먹이사슬 시스템은 적절한 개체수를 유지하는 자정능력을 어느 정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왕국의 생명체 수는 조금씩 증가했다. 생명체가 계속 불어나게 되면 프리티비는 존속할 수 없게 된다. 프리티비의 자원이 유한하고 바나스파티의 생산 능력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프리티비의 먹이사슬 균형은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다음 단계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X는 다시 챠크리티에게 답을 요청했고 슈퍼컴퓨터는 대답했다. 


[복제에 대응하는 죽음의 도입]    

 

‘죽음의 도입?’

 그때까지 프리티비에 “자연사(死)”는 존재하지 않았다. 복제를 통해 증가한 개체수를 자정능력만으로 적절하게 감소시키는 데에 한계가 있기에 다른 수단이 필요한 것은 당연했다. 이제 새로운 죽음이 등장했고 X는 생명체의 탄생(복제)과 죽음을 조절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죽음이 도입되면서 비로소 “수명”이 등장했고 생명체는 시간에 따라 성장하고 어느 시기가 도래하면 죽는 존재가 되었다. 수명의 길이는 프리티비 생태계의 자연적인 흐름에 맡겼다. 복잡하고 가변적인 변수들이 생겨나 X가 취한 조치를 흔들었지만 탄생과 죽음이라는 자연법칙하에 소소한 변수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결되었고 프리티비는 다시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프리비티의 생명체에게는 수명이 주어졌다. 그러나 챠크리티는 X에게는 수명을 부여하지 않았다. X는 왕국이 존속되는 한 끝까지 세상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미션을 수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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