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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Sep 13. 2023

두 남자(완)

혁권은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자마자 등산 동아리에 들었다. 군 복무기간동안 잘 관리된 체력을 유지하고 싶었다. 대학에 들어와서 보낸 2년은 뚜렷한 계획없이 흘려 보냈지만 이젠 달라졌다. 인생의 목표가 생겼고 그 목표를 향해 남은 대학생활을 알차게 보내기로 했다. 등산 동아리에 들어온 것도 그 계획의 실천이었다.  

동아리에서 동민과 지원을 만났다. 동민은 자신의 성격과는 잘 맞지 않았다. 혁권은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과 친해지게 되면 쉽게 마음을 열고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며 상대방도 그러리라 기대하는 순진함이 있었다. 그러나 동민과 대화할 때면 그런 기대를 저버려야 했다. 뭔가 더 깊은 얘기로 진도가 나가고 싶을 때마다 브레이크가 걸리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동민은 항상 혁권의 기준으로 본다면 10%가 부족했다. 예를 들어, 등산을 할 때도 1시간만 더 하자고 제안을 하면 여기까지 하며 선을 긋고, 뒤풀이 때도 1차에서 살아난 흥을 이어가기 위해 2차를 제안할 때마다 브레이크를 걸어 흥을 깨버렸다. 매사가 그런 식이다. 그는 모자란 듯 적당히 즐기고는 멈추었다. 특히 대화를 할 때는 진정성 없이 맞장구만 쳐 줄뿐 혁권이 대화에 녹아들어 흥분을 하는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그에 비해 지원은 자신과 코드가 맞았고 흥을 돋구어 주었다. 자연스레 지원과 더 가까워졌다. 그러나 혁권은 그때 당시 동민이 지원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렇게 심각한 줄 몰랐다. 자신이라면 좋아하는 여자가 있으면 어떻게든 티를 내고 주변 사람이 그 사실을 다 알게 하겠지만 동민의 태도는 밋밋하고 어정쩡해 보여 그저 지원에게 작은 호감을 갖고 있으려니 하는 정도로만 보였던 것이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혁권은 1년 정도 지원과 사귀게 되었고 동민에게 상처를 남겼다. 혁권은 때때로 동민의 성격을 비난했지만 그의 성격과 라이프 스타일을 보면서 자신을 되돌아 보기도 했다. 그 역시 위험을 감내해야 하는 결정을 내릴 때나 다소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할 때 동민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가정해 보았던 것이다. 안전한 쪽으로만 선택하는 동민의 입장을 생각하면 그가 얄미운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러지 못하는 자신을 돌아볼 때 안타까운 마음과 설명하기 힘든 고독감이 밀려오곤 했다.   


 혁권은 큰 이견없이 지원과 헤어졌다. 지원은 혁권에게 있어서 연인이라기 보다는 친구에 가까웠다. 졸업시즌이 되어 각 자의 길을 찾아 헤어졌고 지원은 유학길에 올랐다. 지원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녀는 동민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혁권은 졸업 후 취업하지 않고 스타트업 회사를 차렸다. 5년 동안 갖은 고생을 했지만 이제는 제법 자리가 잡혀 벤쳐기업 CEO로 신문지상에도 가끔 오르내리고 있으며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해 나가고 있었다.   


 혁권은 창밖을 보며 상념에 잠겨 있다가 대전역에 도착하고 있다는 차내 방송을 듣고 정신이 들었다. 졸업 후 10년이란 세월이 정말 정신없이 빠르게 지나갔다.

인간이란 보편적으로 공통된 마음을 갖고 태어나지만 그 마음은 또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서 다를 수 있는 것을 그 때는 인정할 줄 몰랐다. 혁권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 다름을 인정할 수 있을까? 화물대에서 가방을 꺼내 들고 혁권은 출구를 향해 걸었다. 출구에 다다랐을 즈음 혁권은 동민의 좌석 옆에 멈추어 서서 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동민이?...동민이 맞지?” 


 생각에 잠겨있던 동민은 갑작스런 목소리에 깜짝 놀라긴 했지만, 고개를 들지 않아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가 혁권 임을 알아챘다. 그러나,  자신이 혁권을 인식했음에도 먼저 아는 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는 의도로, 뜻밖에 처음 보았다는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눈을 크게 뜨고 혁권의 얼굴을 자세히 살피는 시늉을 하며 대답했다.  


“아...혁권이? 혁권이구나 ! 오랜만이다. 10년 만인가?”  


 사실 지금 동민의 대답은 어쩐지 상투적이어서, 반가운 감정이 묻어 있는 듯했지만 주의 깊게 듣는다면, 진정성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말투였다. 동민은 서울역에서 흡연실로 들어가는 혁권을 보고도 못 본 체 했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만약 아는 체를 하게 된다면 어떤 말을 건네야 할까를 떠올려 본 것이었다. 그렇기에 마치 외워둔 말을 뱉듯이 머릿속에 상념처럼 맴돌던 문구들이 주르륵 목소리의 높낮이만 강조된 채 튀어나왔다.   


 동민의 좌석이 창가 쪽이어서 두 사람의 대화가 통로 쪽 옆 사람에게 불편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목소리는 조심스러웠고 크지 않았다. 그러나 두 남자는 작은 소리로는 감정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는 듯 억양과 제스추어를 과장하며 부족하게 전달되는 감정을 만회하려 하였다.   


“옛날 전화번호 그대로지? 혹시 바뀌었나?”  


혁권은 조금 급해보였다. 마치 할 얘기가 많은 데 지금 이 상황에선 충분히 얘기할 수 없다는 듯이, 그래서 나중에 꼭 다시 만나야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냐. 그대로야” 


“그래, 그럼 내가 연락할게. 다음에 꼭 보자구” 


혁권은 아쉬운 듯 애써 팔을 뻗어 앉아있는 동민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 동작이 옆 좌석 사람을 피하며 이루어져 조금 어색해 보였다. 혁권은 출입문을 열고 나가기 전, 뒤를 돌아 다시 한번 손을 흔들어 보이고 떠났다. 혁권은 너무 늦게 아는 체를 하여 충분한 인사를 나누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이상한 일이었다. 몇 마디 인사말로 혁권은 반가운 감정이 살아났던 것이다. 그것은 동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혁권이 동민의 어깨를 두드린 스킨십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신기하게도 몇 마디 나누지 않은 인사말로 동민은 혁권에게 가졌던 묵은 감정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먼저 아는 체하지 않은 것이 후회될 정도였다. 세월이 두 남자의 다름을 서로에게 인정시킨 것일까?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짧은 만남을 되 뇌이며 상념에 젖어 있던 동민을 핸드폰의 진동이 깨웠다. 혁권이 대전역에서 내린 지 5분쯤 지났을까 그로부터 카톡 메세지가 왔다. 동민은 잠에서 깬 듯 정신을 차리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사진 이미지 하나와 그 밑으로 말풍선이 떴다. 


 그 사진은 동민과 혁권, 지원이 대학 산악회 동아리 시절, 북한산 백운봉을 등반했던 때의 모습이었다. 정상에 오른 세 사람이 어깨동무를 하고 활짝 웃고 있었다. 가운데 지원이 양팔을 뻗어 동민과 혁권의 어깨에 걸치고 있었고 두 남자는 한 손으로 지원을 어깨동무하고 바깥쪽 다른 손으로는 V자를 하고 있었다. 동민은 오래 전 자신이 지원과 헤어진 후 삭제해 버린 사진임을 기억해냈다.  


“우린 그때나 지금이나 많이 다르지만...아름다운 순간도 있었네.”  


라는 메시지가 사진 밑에 있었다.  


동민은 사진을 확대해서 물끄러미 한참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삭제버튼을 누르려다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탁 덮어버리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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