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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Sep 12. 2023

두 남자(2)

 대학 3학년 때 등산 동아리에서 처음 만난 혁권은 한마디로 동민 자신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남자였다. 나이는 동갑이었지만 동민보다 복학시기가 6개월 정도 늦었다. 동민이 보기에 그는 뭐든 끝을 보려하는 성격 같았다. 인생은 모험을 무릎 쓰고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두뇌가 명석하여 공부를 잘했고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는 실력이었지만 장학금을 받아야만 할 형편이었기 때문에 동민과 같은 대학에 진학했다고 들었다. 그에 비해 동민은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교육자였고 부모님으로부터 늘 모나지 않은 삶을 살아가도록 교육받으며 자랐다. 지금 자신의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주의도 그러한 가정교육과 무관하지 않았다. 동민은 현실주의자였고 가정적이었으며 대학 졸업 후 교수님의 소개로 취업하게 된 직장을 지금까지 성실하게 다니고 있으며 정년까지 그 직장에 머무를 가능성은 150%. 월급쟁이로 직장생활을 마치는 데에 대한 아쉬움이 없다. 안전하고 편안한 삶이면 족하다. 야심과 모험이란 단어는 그의 사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혁권은 이상주의자였으며 흥미로운 것은 질릴 때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고 무엇이든 고쳐서 쓰기보단 근본부터 바꾸려고 하였다. 동민은 자신의 성격과 딴판인 혁권에 대해서 적대감을 갖진 않았었다. 오히려 자신이 주저하는 일에 대해 거침없이 실행하는 그를 보며 부러워하는 마음을 가질 때도 있었고 그를 닮고 싶은 마음도 가졌었다. 

 그러나 동민의 이런 호감이 적대감으로 바뀐 사건이 있었다. 혁권이 등산 동아리에 들어오기 전 동민은 같은 동아리의 여학생 지원과 관계가 깊어지려 하고 있었다. 2학년 때 만난 지원은 빼어난 미인은 아니었지만 성격이 밝고 재치가 있었고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동민은 여러 가지 면을 고려해 봐도 지원이 자신에게 맞는 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원과 사귀기 위해 숱한 공을 들였고 혁권이 나타나기 전까지 그 노력은 결실을 맺으려 하고 있었다. 그 때 3학년에 막 복학한 혁권이 등산 동아리 방에 나타났다. 세 사람은 자연스레 동반 등반하는 일이 많아졌다. 2주에 한 번꼴로 서울 근교의 산에 올랐다.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관악산 등 동아리에서 주최하지 않은 경우에도 셋이 어울리며 서울 주변의 산을 두루 섭렵했다. 하산 후엔 항상 뒤풀이를 했는데 동민은 혁권에 비해 술이 약했다. 혁권은 술도 잘 마시고 분위기를 주도했으며 늘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고 재치있는 지원은 맞장구를 쳐대며 즐거워했다. 뒤풀이는 늘 끝장을 보려하는 혁권이 탓에 1차에서 끝난 적이 없었고 늦게 까지 이어졌다. 동민으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일탈이었지만 지원을 에스코트하려는 마음에 끝까지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간혹 혁권은 술에 취하면 말도 안되는 것으로 트집을 잡으며 자신의 성격을 비난하는 말을 했다.

“동민아 임마, 너는 재미가 없어. 그리구 무슨 말을 할 때면 진정성을 좀 가지고 얘기해. 영혼 없이 말하지 말란 말야!”

“......”

이런 비난의 말을 할 때마다 동민은 기분이 나빴지만 딱히 대꾸할 말도 없었다. 그러나 지원 앞에서 그런 얘기를 할 때면 화가 치밀었다. 

“친구들끼리 술을 마실 때면 너도 좀 허심탄회하게 취하게 마셔봐바~쫌~~”

 아니 남이야 술을 마시든 말든 취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람. 한번은 지원 앞에서 오기가 발동하여 대놓고 혁권과 술내기를 한 적도 있었다. 물론 대패했고 다음 날 엄청난 고생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일쯤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그의 가슴을 아프게 한 건 지원의 변심이었다. 그녀는 혁권의 재치있는 말주변과 화끈한 성격에 점점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고 그와 반대로 늘 평화롭지만 재미없는 자신에게선 멀어지기 시작했다. 동민은 지원을 잡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성격을 바꾸어 보려했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결국 불가능한 일이었다. 동민은 동아리 방에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지원을 볼 수 없었고 혁권과도 단절했다. 고독과 외로움이 독버섯처럼 찾아왔으며 혁권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쌓여갔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 졸업을 몇 주 앞두고 지원과 혁권이 헤어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지원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고 했다. 그 즈음해서는 동민의 감정도 많이 희석되었고 예전의 그의 라이프 스타일로 돌아와 있었다. 아니 그의 스타일은 변한 적이 없었다. 위험을 예방하고 안전을 우선하는 삶.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중용의 삶. 그대로였다.      

 기차 출발시간이 다가왔고 혁권은 흡연실에서 나와 6호차로 향했다. 여유없이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한 몇몇 사람들이 헐레벌떡 뛰어가며 혁권의 앞으로 달려갔다. 승강대 출입구 앞으로 짧은 줄이 만들어졌고 혁권은 천천히 승차했다. 모바일 승차권의 좌석표를 확인하고 6호차 표시가 되어 있는 출입문을 열었다. 혁권은 좌석 위쪽의 화물대 위에 씌어 있는 좌석번호를 보며 앞으로 천천히 전진하다가 좌측 창가에 앉아 있는 동민을 보았다. 그는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혁권은 오랫동안 동민을 보지 못했지만 그가 틀림없었다. 순간적으로 지나쳤고 뒤에서 밀고 오는 다른 사람들로 인해 뒤를 돌아 갈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뒤돌아서서 아는 체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혁권은 잠시 망설였지만 그대로 뒤쪽에 위치한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동민은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무슨 생각에 빠져 있어 지나치는 혁권을 보지 못했다. 혁권은 자리에 앉아 동민과 관련된 지난날을 회상하며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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