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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Sep 11. 2023

두 남자(1)

 동민은 부산 출장을 위해 아침 일찍 서울역에 도착했다. 평소 남쪽지방 출장을 갈 때는 여러 지역을 방문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자신의 애마인 BMW 520d를 이용하는 편이었지만 오늘 출장은 부산의 한 지역만 방문하고 오는 일이라 어쩔 수 없이 서울역에서 기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동민은 출장을 가는 일이 좋았다. 업무가 좋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승용차를 직접 몰며 여기저기를 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달, 오래전부터 갖고 싶었던 차가 드디어 집에 도착했고 처음 그 차를 보고 운전석에 앉았을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독일제 2000cc 후륜 구동 모델의 이 애마는 디젤 차량이었지만 시끄럽지 않았고 무엇보다 국산 차에 비해 연비가 좋았다. 이 차의 구매는 그의 인생사에서 가장 큰맘 먹고 저지른 일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파격적인 결정이었는데 그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고려되었던 점은 바로 안전이었다. 동민은 인생의 모토를 안전하고 리스크 없는 삶으로 정하고 있었다. 모든 선택과 판단의 기준은 이 모토에 따라 결정되었다. 그 기준은 승용차를 구매할 때 뿐 아니라 삶의 매 순간마다 적용되어 동민의 삶의 스타일을 규정짓는 특징이 되었다. 예를 들어, 안전이란 기준은 건강과도 관련되어 생활 습관을 지배하였고(그는 건강을 위해 규칙적으로 산행을 하고 사회인 야구 동아리에도 참여하였으며 과식을 피하고 담배와 술도 적당량 이상은 절제하였다.) 리스크가 있는 어떤 투자활동이나 과도한 지출은 피했다. 독일제 자동차는 국내산 보다 가격적인 면에서 많이 비쌌지만 안전적인 측면에서 객관적으로 우위에 있었기에 선택되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이 콧구멍이 커다란 애마는 가성비도 좋았다. 비록 초기 구입비용이 비싸긴 했지만 연비가 뛰어나 유지비는 경제적이었다. 사실  이 차를 갖고 싶어 오래전부터 여러 가지 사항을 검토해 왔지만 신차를 구매할 생각은 아니었다. 적당한 주행거리의 중고차를 구매해도 대만족할 일이었는데, 뜻밖에도 아내가 쌈짓돈을 지원하며 신차를 구매하라고 했던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자신의 드림카를, 그것도 신차로 갖게 된 그는 사람들이 꺼리는 장거리 출장업무를 자진해서 떠맡는 희생정신(?)을 발휘하기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자신의 애마를 타고 달릴 때, 그는 행복했다. 사람들은 그의 라이프 스타일을 두고 답답해하기도 하며 때때로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는 얼마든지 감수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동민의 행동은 항상 지나치지 않고 넘치지 않았다. 옛 현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중용의 덕을 잘 지킨다고 볼 수 있었다. 차를 타고 달릴 때면 그런 라이프 스타일을  지키며 누릴 수 있었던 소소한 행복감이 밀려와 만족감을 느끼도록 해 주었고 큰 위험 없이 살 수 있는 인생에 감사한 마음이 들게 했다. 

 안전을 제일로 우선하는 동민은 주차방식도 남달랐다. 그가 최우선으로 선호하는 주차 장소는 자신이 주차할 장소 옆자리에 이미 주차해 있는 차량이 없는 곳이었다. 충돌이나 간섭될 염려가 없기 때문이었다. 차량이 빽빽하게 주차된 곳에서는 가급적 가장 귀퉁이 지역에 주차를 한다.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가 주차한 곳으로부터 아무리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도 안전한 주차장소라면 그런 불편쯤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차량에 스크래치가 나거나 다른 불상사가 발생할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주차장을 몇 바퀴라도 도는 일을 감수하는 일이 습관화 되어 있었다.      

 동민은 서울역 커피숍에서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신 후 아래쪽 플랫폼을 향했다. 예전 같으면 자신의 애마를 타고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었을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플랫폼을 따라 6호차 열차를 향해 걷고 있을 때였다. 플랫폼 중간에 마련된 흡역구역을 5m 정도 남겨뒀을 때,  흡연구역으로 막 들어가는 트렌치 코트 입은 남자를 보았다. 동민은 순간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흡연구역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간 후 뒤돌아보았을 때 그 남자는 흡연실 안에서 담뱃불을 붙이고 있었다. 그는 혁권이었다. 졸업 후 10년 동안 연락도 없이 지내다가 오늘 이렇게 처음 보았지만 그는 틀림없는 강 혁권이었다. 동민은 혁권과 있었던 지난 날의 여러 가지 일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떠올랐다. 출발 시간 까지는 10분 정도 남아 있어서 되돌아가 아는 체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에 관해 좋은 기억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민은 씁쓸한 마음으로 6호차에 올랐다. 자신의 좌석은 출입문에서 가까웠다. 출입문으로부터 세 줄 떨어진 창가 좌석이었다. 통로 쪽 옆 자리에는 아직 주인이 와 있지 않았다. 동민은 창가의 블라인드를 내리고 자리에 파묻혀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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