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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Sep 07. 2023

베스트 스코어

 골프를 언제 시작했을까? 정확한 년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영부영 10년이 되어간다...ㅋㅋ 웃음이 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내 골프실력은 별로 변한 게 없어서다.     

골프는 하면 할수록 알 수 없는 운동이다. 골프의 어려움에 대해서,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멘탈 스포츠로서의 특징 등에 관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격언과 농담 등이 퍼져 있고 관련 책들도 세상에 널려 있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거기에서 말하는 대부분의 얘기들이 다 맞는 것 같고 100프로 공감 가는 내용들이다. 재미도 있고 뼈가 있어서 몇 가지만 소개하면,      


- 골프는 동반자한테는 “4타 쳤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6타를 쳤고, 스코어카드에 적을 때는 5를 적는 게임이다.   

- 대통령을 그만두니까 골프에서 나를 이기는 사람이 많아지더라.

- 골프에서 50%는 심상, 40%는 셋업, 그리고 나머지 10%가 스윙이다. 

- 화가 나서 클럽을 내던질 때는 전방으로 던져라, 그래야 주우러 갈 필요가 없으니까.

- 드라이버는 쇼, 아이언은 스코어, 퍼터는 돈.

- 골프는 아침에 자신을 얻었다고 생각하면 저녁에는 자신을 잃게 하는 게임이다. 

- 오래 사는 인생도 아니다. 서두르지도 근심 걱정도 하지 말자. 우리 인생길에 있는 꽃들의 냄새나 실컷 맡자. 

- 골프는 인생의 반사경, 티샷에서 퍼팅까지의 과정이 바로 인생 항로다. 동작 하나하나가 바로 그 인간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나에겐 이 격언이 크게 와 닿는다. 

- 골프의 요체는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하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다.   

   

처음 필드에 나가 플레이를 하게 되는, 사람들이 흔히 머리 올리러 간다고 말하는 필드 플레이에서의 첫 인상은, 대부분의 초보 골퍼들도 그렇게 느꼈겠지만, 도대체 비싼 돈 들여가며 이따위 짓거리를 왜 하는걸까? 하는 생각이다. 마음은 바쁘고 제멋대로 날아간 공을 찾으러 땀을 뻘뻘 흘리고, 먼저 간 동반자들을 괜스레 원망하고, 초라한 자신에 화가 나며...내가 다음에 골프 치러 나오나 봐라 를 속으로 몇 번이나 다짐하며 멀리 가버린 카트를 힘겹게 따라간다. 그러나 골프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다음 약속이 언제 잡힐까를 애타게 열망한다.      

나에게 있어서 골프의 매력은 자기 만족감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누구나 인정하는 고수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심리적 우월감을 갖게 한다. 좀 과장해서 표현하면 이것은 세상에서 성공하여 목표를 이루었을 때의 만족감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성공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많은 고통과 시련을 감내하고 마침내 목표를 이루었을 때의 성취감...골프에는 분명 이와 같은 인생의 과정이 축소판처럼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골프가 멘탈 스포츠라는 전체적인 관점을 차치하고 세부적인 플레이 측면에서 내게 처음 매력적으로 다가온 부분은 아이언 샷이다. 아이언 샷은 골프의 전략적 측면에서 정확성이라는 목표 달성을 요구하는 플레이다. 보통 드라이버 샷 이후에 두 번째로 아이언 샷을 하게 되는 데 이 때의 목표는 공을 그린 위 목표지점으로 정확히 안착시키는 것이다. 낚시꾼들은 흔히 월척을 낚을 때의 손맛을 얘기한다. 낚시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 손맛이 어떤 맛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훌륭한 아이언 샷으로 느낄 수 있는 손맛은 감히 말하건대, 낚시꾼의 손맛에 뒤진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공과 아이언 클럽 헤드간의 충돌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매끈하게 이루어진 스윙은 매우 통쾌하며, 시원하게 뻗는 공의 궤적을 바라볼 때의 만족감이란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엉성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진 아이언 샷으로 자신감을 갖게 된 후 나의 관심은 드라이버샷으로 옮겨졌다. 대부분의 아마츄어 골퍼들이 드라이버 샷의 어려움으로 필드플레이에서 그 날의 기분을 망치고 스코어도 망치게 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드라이버 샷의 목표는 비거리와 페어웨이 안착에 있다. 팔 힘과 어깨 힘에 자신감이 있었던 나는 비거리가 안나오는 현실에 좌절했고 조바심이 났다. 알고 보니 팔 힘과 어깨 힘이 빠져야 되는 것을.. 하여간 이놈의 골프는 욕심과 힘이 들어가면 망한다. 또한 알면서도 욕심과 힘을 빼지 못하는 것이 우리 가엾은 골프 중생들이다. 드라이버 샷에서 느껴지는 손맛은 아이언 샷에서 느껴지는 손맛과는 또 다르다. 멋진 샷이 성공했을 때의 통쾌함은 아이언 샷에서의 통쾌함을 크게 능가하고 경쾌한 타구음은 주변에 들리는 잡음들을 압도한다. 드라이버 샷은 골프들의 허영심을 가장 크게 부추기는 측면이 있지만 이 또한 골프의 매력이다. 훌륭한 드라이버 샷 뒤에 보일 수 있는 거만한 자세와 차오르는 우월감은 굳이 자제할 필요가 없다. 

드라이버 샷이 주는 매력은 골프 외적인 요소가 추가된다. 그것은 자연과의 어울림이다. 드라이버 샷의 위치는 자연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장소이고 자연의 풍광과 연계되어 심리적인 영향을 끼치며 그렇기에 가장 어렵고, 마인드 컨트롤을 요구하며 성공 시에는 보다 더 강렬하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고수로 가는 가장 큰 난관은 역시 숏 게임이다. 솔직히 숏 게임에서 골프의 매력을 느낄 단계까지 오르진 못했지만 어디에 매력이 있는지는 알 것 같다. 숏 게임은 어프로치 플레이와 퍼팅을 두고 하는 말인데, 특히 퍼팅은 고도의 집중을 요한다는 면에선 드라이버 샷에서 요구되는 집중도를 능가한다. 물아일체...퍼팅 플레이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퍼터와 나, 공, 그리고 저기....공간상으로 떨어져 있는 홀. 세상에는 오직 이들만 존재하고 이들은 모두 분리되어 떨어져 있지만 하나로 묶여있다. 적막 속으로 나를 몰고 가서 침묵의 바다로 침잠시킨다. 

골프를 전체적으로 멘탈 스포츠라 말할 때 그렇게 이끄는 주요한 플레이 중의 하나가 퍼팅이 아닐까 생각된다. 모든 샷이 손맛이라는 감각과 연결되어 있는 데 퍼팅 역시 그런 점에서 뒤지지 않는다. 드라이버 샷과 아이언 샷에서 느끼는 강렬한 손 맛과는 다르지만 훌륭한 퍼팅에서 느낄 수 있는 손 맛에도 통쾌함과 경쾌함이 있으며 그로 인한 짜릿함은 모든 샷을 능가한다.      

2022년 9월의 어느 날. 이날은 내 골프인생에 있어서 기억할 만한 날이다. 친구들과의 라운딩에서 베스트 스코아를 기록했다. 90개를 훌쩍 넘기는 스코아가 대부분이었던 내가 무려 8자를 그렸다. 그것도 상당히 여유롭게!! 그간의 설움(?)과 굴욕(?)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더 높은 곳을 향한 의지가 강렬하게 끓어 오른다.

     

골프는 모든 골퍼에게 도전과제를 던진다. 그가 고수이건 초보이건 심지어 프로 선수라고 할지라도 방심할 수 없으며 또한 어느 누구에게도 완성된 골프란 없다. 골퍼라면 누구라도 기복이 있다. 단지 그 기복의 변동폭이 크냐 작냐만 차이가 날뿐. 모두에게 매순간 집중을 요구하며 방심하면 예외 없이 지옥의 맛을 보여주며 그걸 견디어 내야만 천국의 열매를 맛볼 수 있다.   

매번 천국의 열매를 맛볼 수야 없지만 그런들 어떠리..매 샷마다 맛볼 수 있는 또 다른 열매가 있는 것을...나는 오늘도 콜이 오기를 열망하며 칼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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