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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Sep 05. 2023

마초맨(완)

 고기 집에서의 만남 이후 마초맨과 수연은 서로를 알아가며 친해졌다. 수연은 잘 웃었다. 마초맨의 별 웃길 것 같지 않은 내용에도 웃어버렸다. 그녀가 웃음을 터뜨리는 포인트는 일반적인 사람들과 달랐고 그 기준도 별나 보였다. 다른 사람보다 한 박자 뒤쳐져서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거나 모두가 침묵을 유지하는 순간에 웃음을 터뜨려 다른 사람을 당황시키기도 했다. 그녀의 웃음엔 가식이 없고 여지가 없이 깔끔했다. 그녀의 웃음은 가리지 않고 내뱉는 마초맨의 얘기에 공감을 표하는 둣, 즐거워하는 듯 보여 그로 하여금 신바람 나게 더 지껄이게 하는 부스터가 되었다. 그녀는 서정적인 멜로디에 잔잔하고 무겁지 않은 노래를 즐겨들었으며 특히 가사를 중시하는 스타일이었다. 어떤 얘기에도 잘 웃는 그녀의 행동으로만 보면 노래가사를 새기고 의미를 부여하여 감동받는 모습이 잘 떠올려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가사나 문장 등에 대해 민감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고 때때로 자신이 그런 의미 있는 문장을 만들어 내는 재능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반해 마초맨은 격정적이며 감정의 기복이 큰 음악을 선호했고 가사의 내용은 관심에 두지 않았다.

그는 전자 기타의 사운드가 곡 전체를 주도하는 록 뮤직을 선호했다. 어느 날은 록 음악을 듣고 있는 마초맨에게 수연이 다가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당신은 당신처럼 멋진 음악을 듣는군요...”     


 인간은 누구나 다양한 측면에서 좋고 나쁨의 기호를 보인다. 맛에 대한 기호, 음악에 대한 기호 등등 다양한 측면에서 복잡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각양각색의 기호를 보이며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낸다. 인간의 기호를 결정할 수 있는 변수는 무궁무진하며 이 변수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더욱 다양한 변수들이 개인의 성향과 유전적 기질, 성장 환경 등과 같은 심리적인 변수들과 조합하여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기호를 낳는다. 이러한 특성이 인간에 대한 기호에 이르게 되면 이는 정말 설명하기 난해한 문제가 되어버리고 우리는 왜 그에게, 또는 그녀에게 끌리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민준은 자신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자신의 성격과 다른 마초맨의 특징을 연기하며 4개월을 보내기로 계획을 세웠고 이를 실천해 나갔다. 그가 예측하지 못한 상황들을 접할 때에도 평소 자신과는 다른 마초맨으로서 행동하는 데 충실했다. 그가 맞닥뜨린 최대의 변수라고 한다면 예기치 못한 수연과의 만남이었다. 그러나 수연과의 만남은 오히려 민준의 마초맨 코스프레를 더 강화시켰다. 왜냐하면 수연은 유치하게 보이는 마초맨의 행동과 성격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런 수연을 만족시키기 위해 연기는 더욱 리얼해졌고 마초맨 캐릭터에 몰입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그의 고민이 깊어졌다. 마초맨이 아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수연이 자신을 계속해서 좋아해 줄 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수연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점점 커져갔기 때문이다. 


 시간은 흘러 마초맨 코스프레를 시작한 지 벌써 4개월이 지났고 또한 수연을 만난 지도 4개월이 되었다. 무엇인가 결정을 내리고 수연을 마주 봐야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었다.       

 민준이 역할극을 끝내기로 계획한 디데이 하루 전. 

 날이 밝았다. 마초맨은 본래 계획상 역할극이 끝나는 내일 들러야 할 순대국 집엘 미리 들렀다. 어제 대여해 놓은 할리데이비슨을 식당 앞에 세우고 문에 들어섰다.  

“어서 오세~~~” 

 뚝배기가 가득한 쟁반을 나르던 아줌마가 곁눈질로 식당 문을 바라보다가 인사를 멈추고 마초맨을 훑었다. 아줌마는 고개를 갸웃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순대국을 나르며 부추무침 공치사 레파토리를 손님에게 퍼부어댔다. 마초맨은 중앙의 빈 식탁에 앉아 큰소리로 주문했다. 

“여기 순대국 하나~!!”  

잠시 후 뚝배기 사발을 마초맨 앞에 내려놓으며 아줌마는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는 뒤돌아섰다. 

“닮았네...닮았어~” 부추무침 공치사도 없었고 아줌마의 평가는 이게 다였다. 

민준은 순대국을 먹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마초맨 코스프레는 성공했다. 그만큼 민준이 이 캐릭터에 녹아들어 몰입했다는 반증이었지만, 곧 만날 수연을 생각하니 마음은 무거워졌다.     


이발소에 들른 후, 수연을 픽업하기 위해 그녀의 집이 있는 서초동으로 달렸다. 약속장소인 집 가까운 공원에 이르자 공원입구 벤치 옆에 서 있는 그녀가 보였다. 마초맨은 그녀를 보고 놀랐다. 원피스만 고집하던 그녀가 오늘의 바이크 데이트를 위해 청바지에 가죽재킷을 입고 있었고 심지어 가죽부츠를 신고 있었다. 놀라운 변신이었다. 다소 마른 체형이었지만 날씬한 몸매에 청바지와 가죽재킷은 아주 잘 어울렸다. 그녀의 평소의 스타일과는 너무 달라진 모습에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놀라긴 수연도 마찬가지였다. 헬멧을 벗었을 때 그의 장발은 짧고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었다. 옷차림도 수수한 대학생의 모습이었고 변하지 않은 것이라곤 팔뚝의 ‘빠삐용’ 타투뿐이었다.   

 민준은 바이크를 공원 입구에 세우고 그녀의 손을 이끌고 잠시 걷다가 공원 벤치에 앉혔다. 

의아해하는 표정의 수연을 바라보며 민준은 입을 열었다. 

“난 수연 씨의 이상형인 마초맨이 아니에요....” 

갑작스런 존대에 수연은 약간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난 그저 평범한 대학생이고 수연 씨를 만나는 동안 마초맨을 코스프레 했을 뿐이에요...”

“......”

역시 그녀는 말이 없었다.

“내가 수연씨를 계속 볼 수 있을까요?”

“......”

그녀는 말없이 그의 얼굴을 응시했다. 

 순간 민준은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을 느꼈고 마초맨 코스프레 기간을 연장하지 않은 자신의 결정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그때 벤치에 앉아있던 수연이 천천히 일어나 민준을 마주보았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지금 마초맨이 아니지만 마초맨이었을 때 내 마음에 들어왔고 그 마음은 이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내 마음속에 머물고 있어요...”  

“당신이 마초맨으로 변신하듯 난 당신을 위해 나를 변신시킬 수 있어요. 오늘은 마초맨인 당신을 위해 마초맨걸로 변신했지만 내일은 민준씨를 위한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어요...”     


 사랑은 외모와 성격뿐만이 아닌 영혼까지 사랑하는 것... 

두 사람은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자유로를 내달렸다. 수연은 민준을 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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