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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Sep 04. 2023

마초맨(3)

민준은 마초맨의 오전 주요 일과로 헬스장에서의 운동을 계획했다. 아무래도 마초맨에 어울리지 않는 빈약한 자신의 바디를 벌크 업 하기 위해서는 꾸준하고도 중량 있는 운동이 필요해 보였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댄 트레이닝 코치에게 3개월간의 PT(개인레슨)를 등록한 마초맨이지만 오늘은 운동을 시작할 마음이 없었다. 코치의 오리엔테이션을 건성으로 듣고 나서 고개만 끄덕인 체 헬스장을 떠나기 위해 출입문으로 향했다. 

 그러다 갑자기, 출입문을 열어 제치기 직전 갑자기 몸을 홱 돌린 마초맨은 어쩐지 계속해서 자신을 힐끗힐끗 쳐다보던 한 여성을 노려보았다. 그러다 느닷없이 손가락 총을 만들어 겨누고 “피융~!” 하고 총알 나가는 소리를 냈고, 곧이어 팔을 거두어 선글라스의 오른쪽 테를 살짝 내린 후 윙크를 날렸다. 대부분의 여성이라면 기겁을 하고 헬스장을 바꾼다 어쩐다 난리를 피웠겠지만 마초맨의 손가락 총을 맞은 그 여성은 아무 말 없이 얼굴만 붉히고 고개를 살며시 숙이고 있었다.        

 헬스장을 나온 마초맨은 바이크를 대여하기 위해 일산을 향했다. 마초맨의 현재 사회적 위치는 아무리 잘 봐줘야 실업자였으므로 승용차 값에 버금가는 비싼 바이크를 살 돈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나마 군대에서 받은 쥐꼬리만한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저축했기 때문에 고향집에 손 안 벌리고 근근이 생활하고 있었지만 이마저도 바닥날 날이 오래 남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누구인가? 마초맨이 아니던가? 내일에 대한 고민은 마초맨의 사전에 없었다. 다행히 요즘은 바이크 라이더 문화에 대한 저변이 많이 확대되고 동호회도 활성화 되어 있었다. 이런 시대흐름에 맞춰 바이크를 대여하는 대여점이 한두 군데 생겨나고 있었고 바이크를 탈 수 있는 방법이 꼭 비싼 바이크를 소유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대여가 아직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인터넷으로 어렵사리 일산에 소재한 바이트 대여점을 찾아낸 마초맨은 일산으로 향했다. 

대여료: 3시간에 5만원.

 바이크는 주말을 이용하여 타면 되고 그때그때 대여료를 지불하면 목돈 들어갈 일은 피하면서 폼생폼사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할리데이비슨을 대여한 마초맨은 대로로 나올 때까지는 조심스레 운행을 하다가 길이 넓어지기 시작하면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넓게 트여 직선으로 뻗은 대로는 질주를 향한 마초맨의 본능을 꿈틀거리게 했다. 마초맨은 인천공항까지 뻗어 있는 8차선 도로를 내달렸다. 

 인간의 마음속엔 누구나 자신도 모르는 성격이 도사리고 있다. 그마저도 자신의 다른 모습이지만 우리는 그 성격을 자신이라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민준의 마음속 깊은 곳에도 마초맨의 본성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민준이 마초맨이라는 역할을 설정하게 추동시킨 것은 합리적인 이성일 수도 있지만 무의식에 깔려있는 자아의 조종이었을 수도 있다. 민준은 세상에서 마초맨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며 유치하다 여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비웃던 그 성향대로 살아보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자신의 평소 모습에서 일탈한지금 이 순간, 의외의 짜릿함으로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일주일이 지나, 헬스장 PT를 등록한 이래 두 번째로 헬스장을 방문했다. 물론 가죽잠바와 청바지, 가죽부츠는 벗어 던지고 말끔한 트레이닝 복장이었지만 선글라스는 고수했다. 장발의 머리는 뒤로 묶어 말총머리를 만들었다. 출입문을 열자 예의 댄스음악이 왕왕거렸고 러닝머신의 주인들은 쿵쿵쿵 소리를 내며 땀을 내고 있었다. 러닝머신 부대 맨 끝에서 세 번째에 마초맨의 손가락 총을 맞았던 여자가 조용히 걷고 있었다. 마초맨은 개인 트레이너를 기다리지 않고 제멋대로 몸을 풀었다. 몸을 푼 다기보다는 흡사 국민체조를 하는 모습에 가까웠다. 대충 몸을 푼 그는 마침 비어있던 벤치 프레스로 다가갔다. 바벨의 양쪽에는 25kg씩 도합 50kg의 원판이 끼워져 있었다. 트레이너의 프로그램에 따라 기구의 사용법을 배우고 주의사항도 듣고 차근차근 시작해야 했지만 일단 저쪽 끝 세 번째 러닝머신위 여자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여자 쪽을 힐끗 보고 천천히 벤치에 누웠다. 바벨 봉 사이로 머리를 넣고 양쪽 봉을 단단히 잡았다. 세 번째 여자가 러닝머신의 버튼을 누르고 걷기 속도를 서서히 줄이고 있었다.  

“끙~~!!”

가슴을 양쪽으로 쫘악 펴고 등 쪽 아래 허리를 활처럼 둥글게 말며 바벨을 번쩍 들어 올렸다. 첫 번째 바벨을 들어 올릴 때 러닝머신 세 번째 여자의 기계는 완전히 멈췄다. 젖 먹던 힘을 다 짜내며 들어올리기 10개를 시도했다. 가슴은 터질 듯 부풀어 올랐고 오른쪽 팔뚝의 나비문신 아래로 힘줄이 울퉁불퉁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6번째를 들어 올리려 안간힘을 쓸 때 러닝머신 여자가 이쪽으로 조용히 걸어오고 있었다. 사실 마초맨은 군대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에 단련되어 있었다. 제대 후 몇 달간 웨이트 트레이닝을 쉬긴 했지만 근육 속에 잠복해 있던 단련의 기억은 금세 살아나기 시작했다. 바벨을 가장 높은 위치까지 들어 올렸을 때 그녀가 옆에 서 있는 것이 느껴졌다. 바벨 걸이에 바벨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킨 마초맨은 그녀가 서있는 방향으로 고쳐 앉았다. 

 그녀는 무표정하게 마초맨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운동의 열기로 발그레 상기된 두 볼이 그녀의 트레이닝 복과 너무 잘 어울려 아름다웠다. 머리는 뒤로 넘겨 단정하게 묶여져 있었고 몸에 붙는 검정색 트레이닝복이 그녀의 몸매를 드러냈다. 날씬한 몸매지만 조금 마른 편이었다.  상하가 붙어있는 트레이닝 복 위로 발목 부분에는 무릎 밑까지 올라오는 토시가 끼워져 있었다. 트레이닝 복의 상의는 가슴부위가 좀 파져있어 에어로빅을 할 때 입는 옷을 연상시켰다. 그 파인 부위 왼쪽가슴위로 동그랗고 분홍빛을 띠는 밴드가 붙어 있었다. 그녀의 돌발적인 접근에 당황한 마초맨은 며칠 전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껄떡된 전력을 상기하며 내심 그 일을 따지러 왔으리라 짐작하고 사과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막 말을 하려하는 찰나, 상기된 표정의 그녀가 머뭇거리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말을 가로 막았다. 

“....당신이 처음 쏜 총알이 내 왼쪽가슴을 관통했어요...그래서 용기를 냈어요” 

“......”

작은 목소리로 수줍게 말하며 왼쪽가슴위의 분홍색 동그라미 밴드를 가리켰다. 총 맞은 자리에 붙은 분홍밴드....그녀의 수줍게 떨리는 목소리의 진동은 마초맨의 귀에 닿자마자 엄청나게 증폭되어 그의 마음을 강타했다.      

 운동이고 뭐고 총을 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마초맨은 정신없이 운동을 마감하고 분홍밴드 여자에게 저녁을 사주겠다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헬스장을 나와 사람들이 북적대는 먹자골목에 들어섰다. 대학가라 주변에 싼 먹거리들을 파는 곳이 많았다. 평소의 민준이라면 근사하고 우아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을 검색하느라 바빴겠지만 그는 현재 민준이 아니고 마초맨이었다. 자신이 설정한 인물에 충실해야 한다는 철저한 원칙에 예외를 둘 수 없다. 분홍밴드의 손목을 잡고 사람들 틈을 헤치며 간판에 돼지머리가 크게 그려진 고기 집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고 여기저기 피어오르는 고기 굽는 연기가 눈과 코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나는 이런 분위기 좋아해~! 사람들 흥청거리며 즐거움에 겨워하는 분위기~~” 

 대뜸 반말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에 대고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마초맨 코스프레 원칙중의 하나는 ~했어요. ~했습니까? 하는 점잖고 공손한 말투를 쓰지 않고 아주 연장자가 아닌 이상은 존대하지 않는다는 말도 안 되는 설정을 해 두었다. 존대를 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서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러나 청춘의 그린라이트가 켜진 이런 행운의 순간에, 초면에 반말을 찍찍하는 무례한 남자로 낙인이 찍힐 것이 두렵기도 한 마초맨은 어정쩡한 방향에 대고 어정쩡한 말투로 끝을 흐리며 대사를 읊어댈 수밖에 없었다. 마치 그녀에게 하는 말이 아니고 독백인 양.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분홍밴드는 마초맨의 대뜸 반말모드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저는 사실 이런 곳은 익숙지 않아요...”

 나즈막히 웃으며 사랑스런 눈동자에 호기심을 가득 담은 채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속삭이듯 말했다. 마초맨은 돼지고기 삼겹살과 소주2병을 시켰다. 주문한 고기가 나오고 소주와 소주잔 2개가 나왔다. 한편으론 고기를 굽고 한편으론 술을 따라주었다. 그녀가 당황했다.

“소주를 마셔본 적은 없는데...” 

말끝을 흐리며 마초맨을 따라 한잔을 원샷했고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그가 하는 대로 고기를 쌈에 싸서 한입에 넣었다.

그녀의 눈은 가늘고 길었다. 약간 위로 올라간 눈꼬리는 선하지 않은 이미지를 줄 수 있지만 눈동자가 맑아 악한 이미지를 주지도 않았다. 입술은 가는 눈매와 매우 잘 어울리며 눈매와 입술의 두 곡선이 함께 어울려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풍기고 이와 어울리는 갸름한 얼굴형은 그런 이미지를 더 강화시켰다. 그녀의 이름은 수연. 알고 보니 민준과 같은 대학 영문과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무남독녀 외동딸로 자란 그녀는 마초맨이 봤을 때 정말 세상물정을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였다. 마초맨이 헬스장을 처음 들어섰을 때 그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심장이 멎을 뻔 했다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남 앞에 나서지를 못하는데 정말 난생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마초맨 앞에 다가갔다는 것이다. 그녀에게 마초맨의 일거수일투족은 남자다움의 표상이었고 이상형의 모습이었다. 

‘정말 세상일이란...이건 미녀와 야수도 아니고..마초맨과 순진녀라고 해야 하나?’ 

 민준은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지만 자신에게 찾아 온 행운이 믿기지 않아 꿈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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