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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Sep 02. 2023

마초맨(2)

 민준은 집 근처에 있는 대학교 연극영화과에 4학년 복학을 앞두고 있는 대학생이다. 군복무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을 때 복학 전에 무엇인가 의미 있는 체험을 하겠다고 결심했었다. 5월에 제대를 했으므로 9월에 4학년 2학기 수강을 먼저하고 내년에 1학기 수업을 들으면 코스모스 졸업이 가능했지만 내년까지는 복학을 미루고 무언가 뜻깊은 경험을 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자신만의 역할극이었다. 어차피 연기자로서의 꿈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자신이 설정한 캐릭터 체험을 통해서 그 인물로 살아보며 몰입하고 그 인물을 체화하는 연습을 해보는 것은 꽤나 도전적인 일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 엉뚱한 계획은 철저한 원칙과 가혹한 약속이 없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헛놀음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자신의 계획에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그 첫 번째 원칙은 캐릭터를 선택할 시 풀타임 직장인은 배제하는 것이다. 풀타임 직장인으로 변신할 대상을 정할 경우, 현재 복학하지 않은 실업자 신분이기 때문에 실제 업무시간인 낮 시간에는 그 캐릭터로 살아갈 수가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증권맨 보다는 프리랜서 데이트레이더를 선택하고 학교 선생님보다는 시간제 학원강사를 선택하는 것이  현재 상황으로 볼 때 더 많은 시간을 그 인물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해진다.  

 두 번째 원칙, 캐릭터로 살아가는 기간은 3개월을 기본으로 하고, 최장 6개월까지 가능하다. 연기하는 캐릭터를 자신이 체화할 수 있는 기간은 3개월이 적당하며 이는 아이가 세상에 적응하는 백일(3개월) 동안의 기간이 우연히 정해진 것이 아닐 것이라는 그 나름의 소신이었다. 민준은 가급적 정해진 체험기간을 지키기로 원칙을 세웠다. 

 노숙자 체험이전에 코스프레 했던 길거리 화가 역할은 처음 시도했던 캐릭터였는데, 3개월의 체험기간은 좀 길게 느껴졌다. 캐릭터로서의 특징이 약했기 때문에 3개월간 자신의 내면을 체화할 여지가 많지 않다고 생각되었지만 어쨌든 자신이 정한 체험기간을 지켰다. 

 노숙자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체험기간을 짧게 정했었는데, 노숙자라는 캐릭터가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적인 특징이나 내면의 변화를 체험하기에 짧은 기간이 더 적당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한 달을 변신기간으로 정했던 것이다.  

 세 번째는, 자신의 상상력을 자극할 만한 요소가 부족한 캐릭터는 제외한다. 학원 강사는 풀타임으로 자신이 코스프레 할 수 있어서 선택할 수 있는 캐릭터이긴 하지만 그 인물로 살아갈 때 상상력을 자극할 요소가 빈약하므로 제외된다. 반면, 길거리 화가는 자신이 그 인물로 살아갈 가능성이 거의 없으므로 의외성이 있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라 선택한다는 식이다. 

 마지막으로, 직업적인 것에 국한하지 않고 성격이나 성향이 특별한 캐릭터도 선택된다. 예를 들어, 마초맨이나 은둔형 오타쿠 같은 캐릭터는 직업이라기보다는 성격, 성향을 나타내는 캐릭터지만 그 특징을 체화하여 연기해볼 만했다. 

 이런 식의 자기원칙에 근거하여 복학할 때까지 변신하기로 한 캐릭터는 길거리 화가, 노숙자, 마초맨으로 정해졌다.      

 숙소로 돌아온 민준은 노숙자 기간 동안 자신이 느끼고 체험한 일들을 꼼꼼하게 평가하고 정리한 후에 다음 변신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처음 캐릭터 설계를 할 때는 묘한 흥분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자신과 전혀 다른 인물을 창조해내고 그 인물이 되어본다는 것은 마치 조물주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킬 때 느껴보았을 흥분을 느끼게 했으며 자신이 창작해 낸 걸작품을 대하는 예술가의 희열이란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설계하는 캐릭터의 외모와 성격은 세부적일수록 더욱 실감이 나며 몰입을 깊게 만든다. 노숙자 다음으로 변신할 마초맨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남자다움을 지나치게 과시하거나 우월하게 여기는 남자’. 민준은 자신이 정의한 마초맨 성향을 좋아하지 않았고 본인의 성격도 마초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런 인물의 외향을 설정하여 변신하고 생각하는 방식까지 철저하게 마초맨으로 생활하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가 자신과 약속한 마초맨으로의 변신기간은 4개월이다. 그는 자신이 변신할 마초맨의 외모를 세밀하게 스케치하고 성격과 특징을 창조해내기 시작했다.  


 헬스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내부의 후끈거리는 열기가 확하고 온몸에 끼쳐왔다. 시끄러울 정도로 볼륨을 높인 댄스음악이 왕왕거렸다. 실내는 제법 넓었고 출입문에 들어서 좌측 창가엔 일렬로 러닝머신이 사열하듯 스무 대쯤 배치되어 있었는데, 각각의 기계에는 다양한 모습의 주인들이 올라타 일제히 창밖을 쳐다보며 걷거나 뛰고 있어 쿵쿵쿵 발 디딤 소리를 내고 있었다. 출입문에서 이어진 정면의 통로를 기준으로 좌측 러닝머신 부대 반대편인 오른쪽으론 다양한 운동기구들이 나머지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러닝머신이 배치된 창가를 제외한 3면의 벽은 모두 거울로 마감되어 헬스장 내부가 실제보다 더 넓게 보이도록 했다. 출입문 여는 소리가 댄스음악에 묻혀 주목을 끌진 못했지만 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어느새 출입문에 들어서 있는 남자를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검정색 민소매 런닝을 입은 남자가 오른손 두 손가락으로 어깨에 걸친 가죽잠바를 당기고 서 있었다. 검정색 민소매 러닝 아래는 가죽부츠에 청바지였고 왼손은 바지주머니에 찔러 넣고 있었다. 복장으로 봐선 운동하러 들른 것 같지 않았고 누구를 찾거나 만나러 온 것 같았다. 

 마치 헬스장 사람들이 자신을 모두 쳐다보길 바라는 둣 움직이지 않고 서 있던 남자가 왼손으로 선글라스를 벗어 런닝의 목 소매에 꽂고 주변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흡사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에 나온 주인공 아놀드의 모습 같았다. 오른쪽 팔뚝엔 자그마한 나비 그림의 타투가 새겨져 있었고 나비 옆엔 ‘빠삐용’이라고 한글로 크게 새겨져 있었다. 글자 크기가 그림에 비해 너무 커서 약간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머리카락은 반 곱슬의 장발로 거의 어깨에 닿을 둣 했고 옆머리를 양쪽 귀 위로 손가락 빗자국이 보이도록 멋들어지게 넘기고 있었다. 

 이채를 띠는 방문자의 모습에 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잠시 호기심어린 눈으로 그를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칠라치면 고개를 돌려 하던 운동에 열중했다. 그 때 한 구석에서 웨이트 트레이닝 방법을 설명하던 근육질의 젊은 남자가 출입문에 서있던 이 남자를 보고 크게 외쳤다. 

“김 민준 씨죠? 오늘 처음이시죠?”

마초맨은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이며 눈으로 스캔하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힐끗거리는 관찰자들은 마초맨의 행동을 보고 저마다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건방진 녀석이군’

‘개폼 잡는 관종이 왔구먼~’

여성 이용자들은 

‘아 이래서 돈을 더 주더라도 여성전용 헬스장을 이용해야 했어. 수준 떨어지는 아저씨들이 너무 많아. 다음 달부터라도 옮겨야 하나?’ 

 그러나 그중의 누군가는 다른 생각을 할 사람도 한명쯤은 있을 것이다. 인간의 기호는 어차피 천차만별이기에...

‘잔뜩 폼 잡고 온 저 아저씨...어쩐지 내 스타일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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