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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Sep 01. 2023

마초맨(1)

 주변의 소음이 들리기 시작하면서 잠이 깬 민준은 침낭 속에서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민준은 반포대교의 줄지어 서있는 대교 다릿발중의 한 곳에 침낭을 깔고 밤을 보냈다. 반포대교의 다리기둥은 Y자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Y자의 두 개의 받침이 모이는 움푹 패인 곳은 침낭 하나를 깔기에는 맞춤한 장소였고 지면으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져 있어 새벽에 올라오는 한기를 피하기에도 적당했다. 열흘째 이곳을 자신의 잠자리로 사용해 왔다. 몸을 반쯤 일으켜 세워 한손으로는 바닥을 짚고 다른 손으로 머리맡에 있던 소주병 옆에 물병을 집어 들었다. 어제 마신 소주로 속이 쓰리고 입이 텁텁했다. 입안을 한번 가글하고 아래쪽으로 퉤 뱉은 후에 병에 남은 물을 벌컥벌컥 모두 들이켰다. 

 이른 아침인데도 한강변을 찾은 다양한 시민들로 주변은 활기를 띠기 시작하고 있었다. 한쪽 손을 이마위로 대 손 그늘을 만들고 해가 들어오는 한남대교 쪽 하늘을 잠시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가 주섬주섬 침낭을 개기 시작했다. 국방색 침낭은 꼬질꼬질하게 때가 끼어 있었고 지린내를 풍겼다. 대충 개인 침낭을 꾸깃꾸깃 침낭 백에 구겨 넣어 옆으로 밀어 놓고 입고 잔 잠바주머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민준은 땅으로 내려올 생각 없이 무릎을 위로 하여 다리를 접은 채 앉아 한 팔로 무릎을 감싸 앉고 자전거 도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늘로써 노숙자 생활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고 정해 놓은 기간이 끝났다. 담배 한 모금을 길게 빨았다가 잠시 뜸을 들인 후 내뱉었다. 지난 밤 그는 이태원 일대를 배회했었다. 노숙자 기간 동안은 가급적 사람들이 붐비는 장소를 찾아 자신을 노출시키기로 계획을 세워 놓았었다. 한 달 동안 거쳐 간 서울시내는 서울역 근처, 홍대입구, 종로거리, 광화문 사거리 등으로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곳들이었다. 어제는 마지막으로 이태원을 배회하며 노숙자를 코스프레 했는데, 한 달 동안의 노숙자 기간 동안 가장 운이 좋은 날이었다. 이태원의 밀집된 술집 골목을 배회하다가 상가 골목에서 벌어진 길거리 술판에 끼어 공짜 술과 음식들을 얻어먹었고 마시다 남은 소주도 한 병 얻어 올 수 있었다. 이 지역에는 종종 주변의 상인들과 뜨내기 양아치들, 국적을 알기 어려운 외국인들이 우연히 모여 가끔 술판이 벌어지는 모양이었다. 암튼 그들은 더럽고 냄새 나는 민준을 별 거부감 없이 술판에 끼워주었고, 덕분에 노숙자 기간 동안 곯던 배를 케밥과 쏘세지 같이 기름진 먹을거리로 채워 넣을 수 있었다. 노숙자 기간이 시작될 때 그의 수중에는 한 푼의 돈도 없었다. 애초에 그렇게 시작하기로 계획을 세웠었다. 이 계획이란 것은 아주 중요한 약속이었다. 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자신의 역할극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었기에 그 약속은 철저하게 지켜져야 했고 가능한 가혹하게 세워져야 했다. 노숙자 역할을 시작할 때 허락한 조건은 침낭 하나와 끌고 다닐 수 있는 조그만 캐리어가 전부였다. 그가 세운 계획의 가혹한 면은 바로 땡전 한 푼 없이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한 달간의 노숙자 생활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구걸만으론 버티기가 어려웠다. 공사장 막노동판에서 잡부를 하며 일당을 벌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번 일당은  상대적으로 큰돈이어서 어려움 없이 노숙자 기간을 버틸 수 있게 해 줄 수도 있으므로 공사장 잡부 일은 할 수 있는 일에서 제외시켰다. 그는 끼니를 때울 수단으로서의 일을 박스 줍기와 동냥으로 한정시켰다. 박스 줍기를 통해서 얻은 수익은 번듯한 끼니를 때우는 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그나마 주울 박스도 많지 않았다. 처음 일주일 동안은 구걸할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배고픔에는 장사가 없었다. 쓰레기를 뒤져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를 뒤지다 지치면 구걸도 서슴지 않았다. 민준의 모습은 3일이 지나지 않아 실제 노숙자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게 되었다. 얼굴의 구멍이라는 구멍에선 죄다 털이 삐져나와 얼굴을 덮었고 머리도 열흘전보다 꽤 길어져서 덥수룩했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어서 체중이 많이 줄었다. 노숙자가 되기 전 길거리에 누워 있거나 두꺼운 겨울 외투를 입고 지나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오래 노숙자 생활을 하면 저런 모습이 될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 겪어보니 그렇게 변하는 건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무튼  자신이 계획한 한 달간의 노숙자 생활을 무사히(?) 마쳤다. 꽁초길이까지 타 들어간 담배의 마지막 한 모금을 길게 빨아 들여 내뱉고 일어섰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그는 흑석동 주변의 한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다. 지방 시골 출신인 민준은 대학에 입학해서 삼학년이 될 때까지는 대학가 주변에서 번갈아가며 자취와 하숙을 했었고 군대 가기 전 학교 기숙사에도 1년 있었다. 삼학년을 마치고 군복무를 위해서 휴학을 했다가 지난 5월에 제대한 후로는 오피스텔에서 생활하고 있다.      

 반포대교의 잠수교를 건너 흑석동까지 캐리어를 끌고 걸어오는 데까진 제법 시간이 걸렸다. 배가 고팠고 어제 마신 소주로 속이 쓰려왔다. 한강변 남단의 자전거 도로를 터벅터벅 걸었다. 앞에서 무작위로 달려오고 있는 자전거 라이더들을 피해 인도로 걷던 민준은 배고픔에 지쳐 중간 중간 벤치에 앉아 숨을 돌리며 한 달간의 노숙자 생활을 반추해 보았다. 어찌 보면 짧은 기간의 가짜 노숙생활이었지만 노숙자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며 느꼈을 절망을 조금은 맛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이 아직은 젊고 실제 노숙자가 아니라는 자각이 실제 그들의 절박함을 체험하는 것을 방해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가혹하게 설정한 역할극을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한 안도감과 뿌듯함이 찾아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 기간 동안 경험했던 절망과 무기력을 잘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기로 다짐했다. 

 이제 자전거 도로 위로 방향을 틀어 큰 길 쪽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이 길을 건너면 자신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은 100미터 가까이에 있다. 그는 자세를 좀 더 구부정하게 고치고 잠바에 붙어있는 모자를 머리에 씌워 얼굴을 알아보기 어렵게 한 채로 큰 길을 건넜고 50미터 쯤 골목방향으로 더 들어갔다. 골목이 둘로 갈라지는 그 중심에 ‘연정순대국’ 집이 있었다. 식당은 허름해 보였지만 오래전부터 영업을 해왔기 때문에 동네 단골손님을 많이 확보하고 있었다. 역할극이 끝나는 날엔 어김없이 이 집에 들러 순대국을 먹으며 자신만의 공식 일정을 마무리 지었다. 이곳을 공식 일정의 마무리 장소로 정한 이유는 집 가까운 곳이라 식사를 해결하기 적당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이 집 주인 아줌마 때문이기도 했다. 주인아줌마는 세상 둘도 없는 오지랍퍼였다. 순대국을 기다리는 동네 고객들에게 쉴 새 없이 말을 시키고 참견을 해댔다. 동네 사람이 아닌 외부 손님이 와도 음식만 곱게 내주는 법이 없다. 자기네 순대국의 장점부터 시작해서 서비스로 준다는 부추무침 공치사까지 곁들여야 서빙이 마무리된다. 

 민준도 주말 아침마다 자주 찾아오는 식당이어서 아줌마는 그의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역할극을 잘 수행했는가에 대한 마지막 평가를 이 순대국 집 아줌마에게 맡기는 것이었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말 시키고 참견하기를 좋아하므로 그에게도 다가와 말을 걸 것이며 그 때 아줌마가 그를 알아본다면 역할극은 실패한 거고 알아보지 못한다면 성공한 것이라고 평가기준을 정했다. 

 노숙자 코스프레 이전에 3개월간 수행한 역할은 길거리 화가였는데, 그 때에도 마지막 날 이 집에 들러 아줌마를 대면했었다. 그 당시 그의 모습은 수염을 기르고 머리도 장발이었으며 캡 모자를 쓰고 있었다. 평소 짧은 머리의 대학생 민준과는 외양이 많이 달랐지만 아줌마는 그를 곧장 알아보고는 혀를 차며 속사포를 쏴댔었다.

“아니 몰골이 이게 뭐야! ”

“하이고~ 어머니 아버지가 학생 이 꼴을 보면 참 기도 안 차시겠네~”

“여자 친구가 뭐라 안 해? 이 꼴로 다니면? ”

 아줌마는 없는 여자 친구까지 들먹이며 핀잔을 주었었고 민준은 애꿎은 순대국을 들이키다시피 하며 비워버리고 후다닥 식당을 나왔었다. 

‘이번 역할극은 실패야~’ 분장이 부족했을 수도 있었고 자신의 체화된 연기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었다. 아무튼 제대 후 처음 설정하고 계획했던 길거리 화가 코스프레는 만족할 수 없는 결과로 끝났었다.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침낭백이 얹어진 캐리어를 식당 밖 벽에 세워두고 식당 문을 드르륵 열었다. 

“어서 오세~~~” 구석 식탁을 행주로 훔치고 있던 아줌마가 출입문 쪽으로 고개를 돌려 인사를 하다말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아줌마가 순대 몇 알갱이를 비닐봉지에 싸 주며 쫓아낼 까봐 재빨리 구석 식탁에 자리를 잡고 만 원짜리 한 장을 식탁에 턱하니 올렸다. 

“순대국 하나~ 언능 주이소~” 애써 쉰 목소리로 사투리를 내뱉고 고개를 숙여버렸다. 아줌마는 팔짱을 끼고 잠시 그를 노려봤지만 이 거지가 설마 주말 아침마다 찾아오는 민준인 줄은 눈치 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순대국을 먹고 난 민준은 아줌마의 눈총을 받으며 식당을 나섰고 벽에 세워둔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 역할, 노숙자 코스프레는 성공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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