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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Aug 29. 2023

자전거 출근...퇴근

 이제 서울의 풍경은 제법 아름답다 할 만하다. 낮은 낮대로 아름답지만 풍경 속 불필요한 요소는 가려지고 강조될 만한 풍광만 두드러지게 드러나기 시작하는 초저녁 풍경은 더 아름답다. 해가 막 지고 있는 노을 진 한강변의 도로를 자전거로 달려본 적이 있는가? 낮보다 무겁게 흐르는 흙빛 강물은 그 어둠의 위용으로 가까이에 위치한 불필요한 요소들 모두를 검은 바탕화면으로 흡수해 버리고 강물 위로 켜지기 시작하는 마천루의 조명 빛들을 대조적으로 더 휘황하게 만들어 준다. 초저녁에 켜지기 시작하는 저 인공조명들은 왜 이다지도 청량한 느낌을 주는 걸까? 아무튼 이 빛들이 불그스레 물드는 하늘 빛 사이사이에 박히기 시작하면, 검은 빛 강물과 청량한 마천루 조명, 거기에 더해 붉으면서도 듬성듬성 남아있는 코발트 빛 하늘이 어우러져 초현실적인 한강변 풍경이 나타난다.!! 이 풍광을 접하면 아무리 목석같은 이라도 나지막이 중얼거리지 않을 수 없으리라. 오매! 참 므찌다!!    


 자전거를 타고 통근한 지 6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매일같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 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봄을 살짝 지나 무더운 여름을 통과했고 이제 가을에 접어들어 맑고 상쾌한 강 공기를 만끽하며 달리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에는 무더운 여름 날씨에 마저도 상쾌함을 준다. 페달을 한참 밟으면 자연스레 몸이 덥혀지기 시작하고 가방을 멘 등짝과 뒤통수 머리카락부위부터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달리는 자전거 운동의 반작용으로 바람이 내 몸 구석구석을 훑어 통과하면 땀방울과 함께 열기도 같이 날아가 버린다.      

 처음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자고 마음먹은 것은 콩나물시루 같은 만원버스를 타고 한강대교를 건너기 싫어서다. 거기에 더해 나이 들며 확 줄어버린 아침잠. 할 일도 없는데 일찍 눈이 뜨니 난감하다. 젊어서 잠이 많던 시절에는 콩 볶듯 바빴던 아침 출근시간대에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시간이 남아돌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쩝!       

 자전거는 정직하다. 무슨 말인고 하니 타고 있는 사람이 노력을 들이는 만큼 전진한다는 말이다. 물론 현대의 눈부신 기술 발달로 자전거가 경량화 되고, 전기모터를 달고, 향상된 기어변속기로 편리함이 증대되었지만 기본적으로 질주의 원동력은 인간의 힘이다. 목적지를 향하여 자전거가 나를 옮겨주지만 내가 자전거를 이동하기도 하는 것이다. 둘 중의 하나가 삐끗하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기에 최선을 다해 페달을 밟는다. 허벅지 근육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팽창하여 뻐근해오지만 근육 량이 광속처럼 줄어드는 중년의 남자에게 이러한 고통은 오히려 즐겁고도 만족스럽다.        

 자전거를 타면 재밌다. 직선도로에서는 질주가 주는 속도감이 쾌감을 주지만, 구릉이나 언덕을 만났을 때도 즐길 수 있는 재미가 있다. 구릉이나 언덕에서는 기어를 변속하게 되는데 이때, 다양한 경사각의 언덕을 만나도 페달을 가하는 허벅지의 힘이 균등하게 배분되도록 적절한 타이밍을 맞추어 기어를 변속하는 것이 목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숙련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 때때로 자기 만족감을 준다. 운전하는 재미이외에도 자전거는 달림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것은 자전거 주행 코스와 관련이 있는데 특히 한강변의 양쪽으로 조성된 자전거 도로는 그런 즐거움을 느끼기에 최적의 코스이다. 강변북로 방향과 올림픽대로 방향, 양 방향으로 조성된 도로는 각각 다른 재미를 선사해주기에 왕복코스를 달릴 때는 갈 때 올 때 방향을 바꾸어 주행하면 더 재미있다. 개인적으로는 강변북로 방향 중 중랑천과 합류되는 지점의 코스를 좋아한다. 중랑천 상류로 올라가는 방향을 향하여 달릴 수도 있고 직행하여 서울숲 방향으로 달려도 되는데, 나는 이 갈림길에 도달하여 달릴 때면 알 수 없는 낭만적 기분에 젖어들게 된다. 이 지점의 풍경과 자전거의 속도감이 어우러져 그런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전거를 타며 감상하게 되는 풍경은 정지하며 감상할 때와는 조금 다르다. 감탄을 자아내는 풍경이라도 멈춘 채로 감상할 때에는 그 풍경과는 떨어진, 객관적인 관찰자라는 느낌이 들지만 자전거로 달리며 풍경을 감상할 때는 풍경과 동떨어진 것이 아닌, 말 그대로 풍경 속을 달리며 그 공간에 소속되게 된다. 다이나믹하게 공간을 연속적으로 훑고 갈 때,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풍경과 온전히 동화되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한강변에서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멋진 몸매를 자랑하며 조깅하는 레깅스의 젊은 여성, 손을 잡고 걷고 있는 연인들, 게이트볼을 즐기는 어르신들, 돗자리를 깔고 소풍 나온 가족들, 항상 고정 자리를 지키는 노숙자까지...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며, 나는 이 광활한 우주에, 하필 이 시대에 이 사람들과 같이 존재하고 있다는 알 수 없는 연대감을 느끼며, 서울에건, 이 나라에건 아니면 이 우주에건 같이 소속되어 있다는 소속감마저 느껴진다. 불현듯 찾아오는 이런 감정은 엉뚱하게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라고 하는 행복감과 연결되어 마음을 들뜨게 한다. 그럴 때면 자전거를 멈추고 담배를 하나 문다.

불을 붙인다.

들이 마쉬고

음미하며 눈을 감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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