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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Aug 28. 2023

기쁜소식(완)

식물을 통한 힐링...

 며칠 후 숲 해설가 교육과정이 모두 끝났고 교육에 참여했던 3기 수강생들은 한 사람도 낙오 없이 모두 수료했다. 수료 후 일주일쯤 지났을 때 미옥은 민수로부터 소포를 하나 받았다. 숲 해설가 수강을 위해 외출 하던 일도 사라져 버린 지금, 유일한 바깥 출입이었던 병원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미옥은 아파트 현관에 배달된 작은 화분을 발견했다. 민수가 서울식물원에서 좋아한다고 말해주었던 필로덴드론 이었다. 잎 하나하나 다치지 않게 정성스레 포장된 50cm 크기의 화분이었다. 미옥은 화분을 거실에 들여 놓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수종은 필로덴드론 버킨(P. birkin)이었다. 윤기 나는 진녹색의 잎사귀 사이사이에 흰색 잎맥이 나 있고, 키는 크지 않아 아담했지만 팽팽하고 힘차 보이는 잎들이 빽빽하게 전개되며 펼쳐 있어서 다부지고 싱싱해 보였다. 화초의 아래 밑둥 부분에 작은 크기의 편지 봉투가 꽂혀 있었다. 미옥은 봉투를 열어 안에 들은 내용을 확인했다.     

 To. 미옥 씨

안녕하세요. 강 민수입니다. 

제가 네덜란드에서 힘든 시절을 보낼 때 힘이 되어주고 저를 치유해주었던 화초 하나를 보냅니다. 미국의 인디언들은 삶이 무기력해지고 기운이 없어질 때 숲속으로 들어가 양팔을 활짝 벌려 나무에 기대어 그 식물의 힘을 받아들인답니다. 미옥씨도 이 화초로부터 힘을 얻어 건강한 삶으로 돌아오시길 바래요...

 음악을 들을 때나 식사를 하실 때 이 화초를 곁에 두고 공유하면 조급한 마음에 여유가 생길 거에요. 

 촉촉한 흙을 좋아하는 편이라 겉흙이 말랐다 싶을 때 물을 흠뻑 주면 되고, 겨울철에는 속흙까지 말랐을 때 물을 주면 된답니다. 대략 1주일에 한번 정도로.

건강하세요...

P.S. 이 화초의 꽃말은 ‘행복이 날아든다. 절세미인’ 이랍니다 ^^

From 민수.     

 미옥은 필로덴드론을 베란다 화분장으로 옮길까 하다가 민수의 따뜻한 마음이 고마워 거실의 정면 스툴의 빈자리에 올려놓고 가까이서 보기로 했다.  

 별거중인 남편에게서는 이제 전화 한통 오지 않았다. 며칠 전에는 아무 연락 없이 이혼 서류만 달랑 우편으로 배달되었다. 이혼 수속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까지는 미옥을 대면하고 싶지 않은가 보다. 미옥은 그 이유가 자신에 대한 감정이 완전히 식어서라기보다는 그녀를 대면하는 것이 미안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어떤 여자를 만나 살고 있는 지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견딜 수 없이 궁금하고 남편에 대한 증오심으로 미쳐버릴 것 같은 몇 개월이 지나자 미옥의 마음에 일었던 격렬한 감정들은 사그라들고 무기력과 공허함만이 그녀를 채웠다. 그러나 그런 상태는 또 그런 상태대로 살아가지게 마련이었다.    

 필로덴드론이 배달된 후 며칠은 미옥의 생활에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저 자고 일어나 눈을 뜨면 멍하니 앉아 있기 일쑤였고 그러다가 다시 잠드는 일이 반복되고 일주일에 한번만 병원에 가기 위해 외출하는 것이 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소파에 앉아 민수가 보내온 화분을 바라보고 있을 때 마침 핸드폰이 울렸다. 민수였다. 

“여보세여...미옥씨...오랫만입니다. 잘 지내고 계시죠?”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바로 옆에서 속삭이듯 또렷하고 정겨워 왈칵 울음이 날 뻔했다. 

“아... 민수씨 안녕하세요?”

“버킨이 잘 크고 있나여?” 민수는 대뜸 화분의 안부부터 물었다. 버킨이는 저 필로덴드론의 민수식 애칭이었나 보다.  

“아...네...잘 크고 있어여” 

 미옥은 새삼 민수가 성의로 보낸 선물에 무관심했던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 화초가 잘 크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미옥씨 우리 버킨이에게 물도 안주고 있었죠? ㅎㅎㅎ 물 안 줘도 잘 크긴 하니까요 ㅎㅎ 일단 음악을 같이 듣는 거부터 시작해 보세요...마음이 편안해 지실 거에여...앞으로 자주 전화할게요...ㅎㅎ 그래도 되죠? ”

“아...네...”

얼떨결에 네 라고 대답했지만 미옥도 싫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미옥은 어디에 두었는지 알 수 없었던 오래된 오디오를 허둥지둥 찾아냈다. 역시 오래전에 진열장에 쳐 박아 두었던 클래식 전집 CD를 뒤져 바흐의 곡을 골라냈다. 거실엔 은은한 바흐의 선율이 연기가 퍼지듯 구석구석 스며들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바흐의 곡을 ON 하는 것이 습관이 된 지 나흘이 지나자 정말로 마음의 평화가 오는 것 같았다. 소파에 편안히 앉아 그 버킨이를 보며 바흐의 선율에 몸을 맡기고 있자니 공허하고 피폐해진 마음이 옅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어쩐지 버킨이의 잎새도 더욱 윤기가 나며 반짝였다. 음악을 들려준 화초들은 다른 것들 보다 훨씬 더 곧고, 빨리 자란다는 것을 미옥도 어디선가 들었던 적이 있었다.   

 식물은 귀가 없지만 음파가 식물의 세포벽에 물리적 자극을 주면서 내부의 세포질이 진동하면서 식물자체에 흐르는 전기장에 변화를 주면서 반응한다. 이러한 변화는 식물의 세포질 유동을 활성화시켜 광합성 등 기본대사를 증진하고 기공을 많이 열게 해주어 호흡과 양분 흡수를 높여 결국 식물의 성장을 촉진하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식물이 모든 음파에 똑같이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고 소음이나 락 음악 등의 시끄러운 음악은 식물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오히려 발육을 억제할 수 있다. 클래식 음악,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같은 조용하고 잔잔한 음악이 효과적이었다. 미옥은 필로덴드론이 싱싱해지도록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면서 자신도 그 음악을 들으며 마음의 평화를 찾기 시작했다.  

 민수의 말대로 음악을 같이 듣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미옥은 이 작은 화분에 대해 생각하고 집중하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식물과 인간의 공통점을 생각해 보기도 하였다. 식물과 인간은 일생동안 성장하며 살아가는 생명체라는 것, 적절한 영양소나 양분의 섭취를 필요로 한다는 것, 세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잘 돌봐주어야 한다는 것 등 공통점이 많았다.  

 미옥은 어느덧 의식을 집중한 상태에서는 식물과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식물은 행복과 사랑을 받는다, 그래서 건강하게 자라날 것이다. 하는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집중시키면 식물은 잠에서 깨어나 예민한 감각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그때 식물과 인간은 서로 감응할 수 있게 되어 일체감을 갖고 제3자라든가 발생한 사건에 대해 공감하게 된다. 미옥이 식물과 서로의 감각을 예민하게 하는 데는 불과 몇 분, 길어야 30분 정도의 시간이면 족했다. 

 미옥은 식물과 교감하게 되면서 필로덴드론의 유기적 형상을 보면서도 긍정적인 상상의 문을 열 수 있게 되었다. 즉, 서로 기대며 힘차게 자라는 잎들은 서로를 위로해 주는 듯 느껴졌고 하늘을 향해 뻗고 있는 줄기는 이 식물의 힘찬 의지를 말해주고 있는 듯 했다.

 미옥은 자신의 감정이 필로덴드론에 투사되어 결국에는 그 느낌이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에게서 시작된 감정이기는 하나 식물이라는 대상이 없었더라면 결코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사계절의 흐름 속에서 변하는 식물의 형상과의 교감을 통해 생명력, 생성과 소멸이라는 자연의 질서를 문득 깨닫게 되었고 이러한 통찰은 그때까지 미옥이 살아온 삶, 누구에게 종속되거나 의존하며 일희일비해 왔던 삶을 돌아보게 하였다. 자신도 이 세상에 독립된 존재로 홀로설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이 보내온 이혼서류에 이제는 더 이상 괴로워 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은 의지가 생겨났다.       

 며칠 후 민수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여보세여...아,,,민수씨 안녕하세여...”

한층 밝아진 미옥의 목소리를 들으며 민수는 자신이 보낸 버킨이가 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미옥 씨 어때요? 건강해 보이네요... ㅎㅎ”

“아...네...밥도 잘먹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어요...병원에서도 많이 좋아졌다고 하네요 민수씨 덕분이예여...고마와요” 

“아...그건 제 덕분이 아니고 그 버킨이 덕이에요,,,ㅎㅎ”

 민수는 사실 식물의 놀라운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미옥에 대한 자신의 좋은 감정을 가득 실어 필로덴드론을 가꾸었고 그 식물을 미옥에게 전달한 것이었다. 미옥에게 전달된 필로덴드론은 민수와의 교감을 기억하고 그 감정을 전달하여 미옥으로 하여금 민수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도록 해 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전화를 끊은 미옥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삶에 대한 새로운 의지가 살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자신의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배려해 준 민수의 마음이 새삼 고마웠다. 미옥은 그냥 있을 수 없었다. 베란다 창을 열고 자신이 소중히 가꾸었던 자줏빛 아이리스를 거실로 가져왔다. 이 자줏빛 아이리스를 민수 씨에게 선물하기로 마음 먹었다. 미옥은 화분을 예쁘게 포장하기 위해 흙을 고르고 시든 잎은 잘라냈다. 그리고 아이리스 밑둥에 꽂아 보낼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민수씨에게

보내주신 화분 덕분인지 제 삶도 희망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제가 정성스레 가꾸고 있는 자줏빛 아이리스를 당신에게 보냅니다. 

이 꽃이 당신에게 기쁜 소식으로 다가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조만간 당신을 만나 우리와 교감하고 있는 식물들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P.S. 이 화초의 꽃말은 민수씨가 알려 주신대로 ‘기쁜 소식’ 이랍니다. ^^

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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