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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Aug 27. 2023

기쁜소식(3)

식물을 통한 힐링...

민수는 원예가였다. 그것도 프로페셔널한 실력파 원예가였다. 미옥처럼 어려서부터 꽃과 식물을 사랑하여 일찌감치 원예가가 되기로 마음먹었고 원예와 화훼의 강국인 네덜란드로 유학하여 네덜란드의 남부도시 세르토헨보스에 있는 GBS(HAS Den Bosch Business School)를 졸업했다. 그 곳에서는 식물의 재배기법과 비료공급, 품종개량 등과 같은 원예 관련 지식뿐만 아니라 경영학 등 창업에 필요한 경영 노하우도 가르쳤다. 민수가 식물과 꽃에 대해 다양하고 깊은 지식을 갖고 있던 이유도 전문 원예가였기 때문이었다. 민수는 졸업 이후 원예전문가로 홀로서기 하여 한국을 화훼강국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진입광장을 지나 주제원 온실에 도착했다. 주제원 온실에는 세계 12개 나라의 도시에서 자생하고 있는 다양한 식물들을 옮겨 와 전시해 놓고 있었다. 꽃과 식물을 좋아하는 미옥도 이렇듯 변화무쌍한 식물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우울했던 기분이 사라지고 마음이 가벼워지며 왠지 눈까지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걷던 민수도 밝아지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힘을 얻어 더욱 의기양양하게 쫑알대기 시작했다. 걸을 때마다 마주치는 다양한 식물들에 대해 마치 미술 작품 해설가가 설명하듯이 그 식물의 특징들을 조목조목 설명해 주었다. 미옥에게는 처음 보는 낯선 식물들도 많았는데, 민수는 그런 식물들에 대해서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이름을 알려주고 짧은 설명을 곁들였다. 미옥은 민수의 박식함에 놀라면서도 그의 설명이 재밌어 시종 귀 기울여 들었다.  


 그러다가 라틴 아메리카 도시 전시관까지 왔을 때 민수가 발걸음을 멈췄다. 천천히 따라 오며 식물들을 감상하던 미옥도 덩달아 걸음을 멈추고 의아해하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민수는 빙그레 웃으며 무릎앉아 자세를 하고 한 식물을 가리켰다.  


“미옥씨... 이 식물을 보세요...제가 좋아하는 식물 중의 하나예요”


미옥은 민수가 가리키고 있는, 키가 허리쯤 오는 식물을 주의 깊게 쳐다보았다. 민수씨가 멈춰서서 자신을 주목을 시키는 것은 뭔가 특별한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그러나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 꽃가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필로덴드론’의 일종이었다.


“이게 왜요?” 민수와 제법 가까워진 미옥이 명랑하게 물었다.  


“아...미옥씨도 화초 좋아한다고 하셨죠? 화초 좋아하시는 분들은 왠만하면 필로덴드론을 다 알고 있죠...”  


민수는 식물백과사전에 요약해 놓은 것 같은 설명을 빠르게 쏟아냈다. 필로덴드론은 열대 아메리카에 자생하며 200종이 넘는 다양한 종류가 있고 원산지는 브라질과 서인도제도다. 다른 물체에 착생하기도 하고 직립성인 것도 있다. 비교적 키우기 쉽고 관리하기도 쉬우며 화분에서 키울 수도 있다 라고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고, 잠시 뜸을 들였다가   


“친구를 좋아한다는 ‘필로’와 나무라는 ‘덴드론’이란 그리스어가 합쳐져 필로덴드론이라고 불리게 되었죠...친구를 좋아하는 나무라고나 할까?”


 미소를 띠우며 설명하는 민수의 큰 눈이 반짝였다.   


“모든 식물이 특별한 감각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 이 식물은 인간의 귀에 들리지 않는 소리,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적외선이나 자외선 같은 색깔의 파장까지도 구별해내고 특히 엑스레이나 텔레비전의 고주파 같은 것에도 민감해요...”


“....식물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게 사실이에요?” 미옥은 믿기지 않는 듯 민수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사실이에요... 많은 과학자나 시인 철학자들이 식물이 단순히 숨만 쉬는 존재가 아니라, 상호 교감도 나눌 수 있는 존재, 즉 혼과 개성을 부여받은 창조물이라는 것을 받쳐 주는 증거들을 속속 찾아내어 제시하고 있어요”  


 민수는 큰 눈을 더 자주 깜박거리며 설명을 이어갔다.  


“식물들은 말이죠... 한번 어떤 특정인과 유대감을 갖게 되면 그가 어디에 있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많은 인파 속에 있더라도 그 사람과 계속 유대를 갖게 되요.”  


 식물의 식생과 이름, 유래 등에 대한 설명에 더해 영혼을 가진 생명체로서의 식물에 대해 강조하는 민수는 마치 첫날 특강에서 식물의 정신세계를 강의했던 교수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처럼 보였다.  


 


 서울 식물원의 주제원 온실을 다 둘러본 두 사람은 잠시 차를 마시며 쉬기로 했다. 미옥도 한결 기분이 좋아져 우울한 감정을 씻어내고 파랗게 빛나는 가을 하늘을 자주 올려다 보며 숨쉬었다. 하늘을 향해 힘차게 줄기를 뻗는 저 식물들처럼.


 아메리카노 두 잔을 손에 받치고 온 민수는 한 잔을 미옥에게 건네며 테이블에 앉았다. 열린숲정원 옆에 마련된 야외 카페는 신선하고 맑은 가을바람이 드문드문 불어와 상쾌했고 가까이에는 화초정원이 둘러싸고 있어 차를 마시며 꽃들을 감상하기에도 좋았다. 빙 둘러 조성된 화초정원을 감상하던 민수가 커피를 한모금 홀짝이다가 미옥에게 물었다.  


“미옥씨는 무슨 꽃을 가장 좋아해요?”


“......”


갑작스런 질문에 잠시 대답을 찾고 있던 미옥이 아메리카노 커피 잔에서 입을 떼고 말을 하려할 때 민수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아이리스를 좋아해요”


순간, 미옥은 깜짝 놀라 움찔했다. 방금 그 말이 자신의 말인지 민수의 말인지 헷갈렸다. 자신이 하려던 말이 토씨 하나 안 바뀌고 민수의 입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저 아름다운 꽃을 보세요”  


민수는 테이블 옆으로 줄지어 피어있는 아이리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미옥도 자리에 앉기 전부터 그 아이리스 정원에 주목하며 이 테이블에 앉자고 했던 터였다. 노란 꽃과 자주빛 꽃을 피우고 있는 두 무리의 아이리스가 경쟁하듯 아름답게 피어 간헐적으로 불어오는 희미한 가을바람에 살랑이고 있었다.     


“아이리스의 꽃말은 비 내린 뒤에 보는 무지개처럼 ‘기쁜 소식’ 이랍니다.”


 아이리스의 꽃말을 설명하는 민수의 표정이 꽃말과는 다르게 약간 어두워졌다. 미옥은 민수의 표정변화를 읽어내며 무언가 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물을 필요없이 민수의 이야기가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민수는 네덜란드 유학시절, 일본 유학생과 연애를 했었다고 했다. 졸업 후에 결혼까지 약속할 정도로 둘은 깊은 관계였고 그녀는 노란 꽃 아이리스를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했다. 민수는 그녀를 위해 일주일에 서너 번씩 노란 꽃 아이리스를 선물했고 꽃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난다고도 했다. 그러나 졸업을 얼마 앞두고 그녀는 갑작스레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민수가 식물의 영적인 능력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투병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고 싶었던 것이 동기였다. 그 당시 민수는 불치병을 치료하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이다.   


 미옥은 담담하게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는 민수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항상 밝은 표정의 민수에게 예상치 못한 슬픈 이야기였다. 그러나 민수는 곧 예의 밝은 표정으로 돌아와 명랑하게 덧붙였다.


“그래서 이제는 노란 꽃 아이리스는 좋아하지 않아요...하하하...자줏빛 꽃 아이리스가 좋아요. 늘 노란 꽃 아이리스를 주기만 했는데 나도 이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줏빛 꽃 아이리스를 누군가에게 받고 싶어요...하하하...”    


 민수의 웃음에는 쓸쓸함이 느껴졌다.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민수는 식어버린 커피를 모두 마시고 허공을 한번 쳐다봤다가 미옥 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녀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이제 미옥씨 얘기도 해보세요...”


“......”


그는 미옥의 얘기를 재촉하듯 큰 눈을 깜빡이며 계속해서 미옥을 바라보았다. 미옥은 어쩐지 이 사람에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가슴에 맺혀있는 응어리를 풀어내고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모딜리아니의 긴 목을 가진 여인처럼 한동안 목을 기울이며 커피 잔을 만지작거리던 미옥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시작했다. 남편의 외도,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 숲 해설가 교육과정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 이혼의 기로에 서 있는 현재, 햇빛을 잃은 식물처럼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잃은 자신의 이야기를 아주 오랜만에 길게 얘기했다. 민수는 맑고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미동없이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희미하게 불어오던 가을바람은 완전히 멎어 있었고 코발트 빛 하늘이 두 사람의 머리 위에 높게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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