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ep Walking Aug 26. 2023

기쁜소식(2)

식물을 통한 힐링...

 집에 도착한 미옥은 기운이 없었다. 현관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집안에 생기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아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빈 집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한 건 벌써 한 달이 되어갔다. 사실 이 집은 빈집이나 다름없었다. 별거선언을 한 남편이 집에 들어오지 않은지 한 달이 되어가고 있어 미옥 혼자서 이 집을 지키고 있었지만 그녀는 빈껍데기만 남아있는, 물리적인 질량이나 형태 없이 그저 방과 방을 발자국도 안남기고 유영하는 유령 같은 존재였다. 

 늦은 오후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거실에 햇빛이 비치고 있어 실내가 그리 어둡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어두운 기색이 싫어 서둘러 거실 불을 밝혔다. 불빛에 들어난 모든 사물은 제자리였다. 늘 있던 자리. 냉장고는 냉장고 자리에, TV는 TV자리에, 식탁은 식탁자리에... 미옥은 아무런 변화 없는 세상에 대한 절망감과 우울감이 갑작스레 밀려와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거실 구석에 가방을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소파 한가운데에 털썩 주저앉았다. 소파 등받이 위로 양팔을 걸치고 잠시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악몽 같았던 지난 3개월의 기억들이 영상필름처럼 지나갔다. 

 미옥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편의 외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10년 전 그들은 5년간의 연애 끝에 30대 초반의 나이로 결혼했다. 남편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가진 것이 별로 없었지만 능력 있는 남자로 보였고 항상 자신감 있는 태도와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성격은 미옥에게 깊은 신뢰를 주었다. 특히 미옥은 그녀와 마주보며 대화할 때의 그의 진지한 눈빛과 표정을 사랑했다. 그녀는 그녀가 가지고 있던 자신의 모든 세계를 남편이 향하고 있는 방향에 맞추었고 남편의 세계가 곧 자신의 세계가 되었다. 

 남편은 모딜리아니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의 모습을 닮은, 마치 식물 같이 가늘고 건조한 자신의 외모를 사랑한다고 했고 미옥은 그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 신뢰와 약속이 갑작스럽게 일방적으로 무너져 내렸다. 자신은 변함없이 그 신뢰를 지켰건만 상대방은 그러지 않았다. 그녀에게 그 무너짐은 단순한 약속 위반이나 배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마치 남편을 태양으로 삼고 그 태양만 바라보고 사는 식물처럼 살아왔다. 그렇기에 태양이 떠나가 버린 지금 이 세상은 마치 그녀를 지탱했던 세계가 송두리째 무너져 내린 것처럼 느껴졌다. 이 세상을 버티어 나갈 힘과 희망이 아무것도 남지 않은 무기력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마치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식물인간처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성적이고 조용한 내 성격에 싫증이 난 걸까? 모딜리아니의 여인처럼 식물 같은 내 외모에 싫증이 난 걸까? 미옥은 하루에도 몇 번씩 허망한 생각들로 자신을 괴롭히며 남편이 떠난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고 설령 그것을 찾았다 해도 되돌릴 수 있는 일인지도 알 수 없었다. 미옥은 마음의 병이 깊어져 우울증이 찾아왔고 2개월 전에 시청에 휴직원을 냈다. 6개월간 휴직하고 자신을 추스를 필요가 있었다. 

 미옥은 소파에서 일어나 베란다에 쳐져있던 커튼을 열어 제치고 베란다 문을 열었다. 하루 24시간 내내 고여만 있는 실내공기를 바깥공기를 들여 쓸어내 버리고 싶었다. 바깥 창문을 열다가 문득 베란다에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화분장에 눈이 갔다. 남편과 사이가 틀어지기 이전부터, 그리고 그 이후에는 더더욱 미옥이 애착을 느끼는 유일한 일은 이 식물들을 가꾸는 일이었다.

 미옥은 어려서부터 식물과 정원을 좋아했다. 식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한 기분이 들어 시간가는 줄 몰랐다. 정말 뿔테 강사가 말한 대로 영적인 충만감으로 차 있는 식물들의 진동을 인간이 본능적으로 느껴서인 지도 모른다. 초등학생 시절 미옥은 걸어서 등교할 수 있는 학교를 다녔는데, 큰길로 가면 5분 걸릴 거리를 빙 돌아 30분이나 걸리는 길로 가곤 했다. 그 길로 가면 들풀을 볼 수 있고 또 다양하고 예쁜 꽃들을 볼 수 있는 정원거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미옥은 베란다 화분장에 놓여있는 화분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고 정성을 들이는 화분은 화분장 3단에 놓여진 자주 빛 아이리스였다. 지난 가을에 구근을 심어 정성을 들였는데 올해 5월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여름을 재촉하는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거나 이른 아침 이슬을 머금고 함초롬이 피어 오를 때의 아이리스를 가장 사랑했다. 물을 머금은 자주 빛 아이리스는 깨끗하면서 청초했다.   

 미옥은 식물과 꽃을 사랑했기에 휴직 6개월 기간 동안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한국 숲 해설가 협회에서 개설한 4개월 과정의 “숲 해설가 교육과정”에 등록했다. 교육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그녀가 휴직기간 동안 외출하는 일은 병원에 들르는 일과 숲 해설가 교육 수강, 이 두 가지가 전부였다.      

 교육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어느덧 교육 과정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동안 산림에 대한 교육과 생태계에 대한 이해, 커뮤니케이션 방법 등에 대해 배웠다. 첫날부터 미옥의 옆자리에 앉았던 민수는 교육과정 내내 그녀의 옆자리를 차지했고 미옥도 첫날 강의 때 앉았던 자리를 계속해서 지켰다. 우연히 미옥의 짝이 되어버린 민수는 교육과정 동안 알게 모르게 미옥을 많이 도와줬다. 그는 원예나 화훼 등 식물 전반에 대해 넓고도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강의를 진행하는 강사보다도 더 깊은 지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이 교육과정을 선택한 것은 식물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 보다 더 큰 개념인 숲에 대한 이해, 그것도 한국의 숲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얻기 위해서인 것처럼 보였다. 

 이제 교육 과정 중 남은 일정은 수목원 견학과정뿐이었다. 이론교육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면 수강생들은 각자 자유롭게 조를 편성해 서울식물원을 방문하여 그동안 배워온 여러 가지 이론들을 확인하는 시간을 갖는다. 

 정규 견학과정이긴 하지만 실은 교육 수료 전 수강생들 간의 친목과 네트워크를 다지는 성격도 있었다. 그렇지만, 설령 견학과정이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더라도 수강생들은 이미 서로서로 친해져서 교육이 끝난 저녁시간에 끼리끼리 별도의 모임을 갖곤 했다. 그러나 사교적이지 않은 미옥은 강의가 끝나자마자 귀가하기 바빴고 유일하게 몇 마디 나눠 본 사람은 미옥의 옆자리에 앉아 함께 수강했던, 큰 눈을 깜박이는 버릇의 강 민수만이 유일했다. 민수는 미옥에게 식물원 견학을 같이 가자고 제안했고 미옥은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억지로 혼자 방문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협회 측에서 조편성 방문을 권장하는 터라 굳이 고집을 부리기도 뭐했다. 두 사람은 다가오는 금요일 오전10:00에 서울식물원과 가까운 양촌향교역 8번출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금요일 오전 9:50분. 초가을 오전 하늘은 더없이 화창했다. 

미옥이 약속장소인 양촌향교역 8번 출구를 나왔을 때, 민수는 이미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청바지에 등산 가방을 메고 있었다. 미옥도 청바지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왔다. 

“미옥씨...어서 와요... 지하철 붐비지 않았어요?”

예의 밝은 표정을 지으며 명랑한 목소리로 민수가 인사했다. 

“....별로요....”   

미옥의 대답은 더 길게 말할 기운이 없다는 듯이 항상 단답형이었다. 민수는 개의치 않고 씩씩하게 걸으며 한손으로 갈 방향을 가리키고 말했다.

“자 이쪽으로 가요...이쪽 길이 진입광장과 이어져 있어요”

민수는 서두르는 듯 말했지만 미옥의 느린 걸음을 배려하여 보폭을 작게 하며 천천히 걸었다. 두 사람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기도 하고 벤치가 나오면 잠시 앉아 쉬기도 하며 식물원을 향했다. 민수는 걷는 내내 눈을 깜박거리며 종알종알 많은 얘기를 지껄였다. 그때마다 미옥은 고개만 끄덕이거나 네 라고 짧은 대꾸뿐이었지만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식물과 정원을 실컷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기쁜소식(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