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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Aug 25. 2023

기쁜소식(1)

식물을 통한 힐링...

 양재동에 위치한 15평 남짓한 강의실 안에는 10명 정도의 수강생이 보였다. 자리에 앉아 강의 자료를 뒤적이는 사람도 있었고 강의실 구석에 마련된 다과테이블 옆에서 커피를 마시며 전화통화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강의실 뒤쪽 서너 줄은 비어 있었는데 테이블 위에 듬성듬성 강의 자료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빈 자리는 아니고 쉬는 시간이라 잠시 자리를 비운 것으로 보였다. 미옥은 앞에서 두 번째 줄에 강의 자료가 놓여있지 않은 빈자리를 확인하고 한 손에 커피를 들고 그 자리로 서둘러 이동했다. 

 오늘은 “숲 해설가 교육과정”의 첫 번째 날이었다. 첫째 날에는 두 강의가 잡혀 있었는데, 첫 시간은 전체 강의 일정과 안내사항을 전달하는 오리엔테이션이었고 두 번째 강의는 특강이었다. 첫 날부터 결강을 하고 싶진 않았지만 부득이하게 며칠 전부터 예약해 놓은 병원에 들르는 바람에 첫 시간을 놓쳐버렸다. 그렇지만 어차피 강의 일정과 안내사항은 숙지하고 있는 터라 오리엔테이션 강의는 꼭 수강할 필요가 없었고 두 번째 강의에 늦지 않게 온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미옥은 첫 번째 강의인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두 번째 강의가 시작하기 전 휴식 시간에 양재동 강의실에 도착한 것이었다.  

 가방을 열어 강의 교재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 놓고 필기구도 꺼내고 커피도 한 모금 마시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정면을 보니 오늘의 특강 제목이 PPT화면으로 띄워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식물의 정신세계]

식물에게 무슨 정신세계가 있을까? 강의제목을 보며 잠깐 호기심이 일기도 했지만 어쩐지 식물에 대한 신비감을 조장하여 무엇인가를 과장되게 홍보하는 내용일 것 같은 우려도 스쳐갔다. 그러나 생각은 거기에서 더 연장되지 못했다. 두 번째 강의가 시작된다는 직원의 안내와 함께 밖에서 휴식을 취하던 수강생들이 강의실로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비어있던 뒷줄이 거의 채워지니 수강생이 30명은 되어 보였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쓴, 강사로 보이는 남자가 앞쪽 출입문으로 들어왔고 그 뒤에 또 한명의 남자 수강생이 허리를 숙이고 바짝 붙어 서둘러 따라 들어오더니 미옥의 옆자리에 착 앉았다. 그는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테이블 위 강의 자료 첫 페이지를 넘겨 손바닥으로 문질러 고정시킨 후, 옆자리의 미옥을 보고 살짝 웃으며 목례로 인사했다. 미옥도 얼떨결에 옆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같이 인사를 해버렸다. 수강생이 모두 자리에 앉은 것을 확인한 후에 뿔테 안경 강사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저는 오늘 두 시간 동안 특강을 진행할 OO대학교 최 경환입니다.” 

뿔테 안경 강사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큰 키와 마른 체형을 보고 짐작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중저음의 목소리는 느리고 부드러웠다. 수강생들이 소란스럽지 않을 정도로 박수를 치며 환영하였고 박수소리가 멎을 즈음에 강사는 말을 이어나갔다. 

“숲 해설가 교육과정을 수강하게 된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숲 해설가를 위한 교육을 시작하기에 앞서 숲을 이루고 있는 식물들...

그 식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할까 합니다. 제목을 보고 좀 의아한 생각들을 하셨죠? ” 

강사는 미옥이 특강제목을 보고 잠깐 생각한 것처럼 다른 수강생들도 식물에게 정신세계가 있을까? 하는 궁금증과 의구심을 가졌을 것이라는 걸 짐작하고 있다는 듯이 얼굴에 미소를 띠우며 수강생을 천천히 훑어보고 난 후 말을 이어갔다. 

“식물도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기뻐하고 슬퍼합니다. 예쁘다는 말을 들은 난초는 더욱 아름답게 자라고 볼품없다는 말을 들은 장미는 자학 끝에 시들어 버립니다. 떡갈나무는 나무꾼이 다가가면 부들부들 떨고, 홍당무는 토끼가 나타나면 사색이 됩니다. 제비꽃은 바흐와 모차르트를 좋아하고 록 음악을 싫어합니다.”

 강사는 부드럽고 또렷한 목소리로 설명하며 싱싱한 난초와 시들어버린 장미꽃 슬라이드를  차례로 보여주었다. 다짜고짜 시작된 식물의 의인화는 이를 뒷받침해 줄만한 과학적인 근거와 자료를 제시하여 설득하려한다기보다는 의심 없이 믿어야만 천국에 갈수 있다고 목청높이 외치는 목사님의 설교에 가까워 보였다. 그러나 특강하는 강사의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진지하여 그의 슬로우 템포 중저음 목소리와 더해져 수강생의 몰입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강의는 계속 이어졌다. 우리가 식물에게 가졌던 편견과 오해와 달리 식물은 놀라운 교감능력을 가진 생명체라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인간들이 생각하기를 식물은 움직이지 못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 식물은 자신의 몸을 고도로 진화된 동물이나 인간처럼 자유롭고도 쉽게, 심지어 우아하게 움직이는데,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그 움직임이 인간에 비해 너무 느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인간이 식물과 함께 있을 때 행복하고 편안한 기분을 느끼는 이유는 영적인 충만감에 젖어 있는 식물들의 심미적 진동을 인간이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미옥을 포함한 수강생들이 강의 내용을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두 시간 내내 숨죽이며 집중하는 분위기가 강의실 내부를 덮고 있었고 고도의 영적인 식물들로 이루어진 숲, 그 숲 해설가가 되려고 한 결정이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듯 수강생 각자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수강생들은 강의내용의 진위를 과학적으로 의심하기보다는 식물도 생각한다(?)는 새롭고도 흥미로운 주제에 매료되었고 강사의 진지한 태도와 귓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머릿속까지 울리는 웅장한 저음의 목소리가 더해져 강의실 내에는 긴장감마저 돌고 있었다.     

 강사는 마지막으로, 식물은 자신을 보살펴 주는 인간에게 관심과 애정을 보일 뿐 아니라 그의 마음을 읽어 내고 민감하게 반응하며 예지와 영성을 지닌 녹색의 현자들이라고 강조하며 강의를 마쳤다. 

 강사 자신도 강의에 몰입한 듯 상기된 표정이었고 수강생들은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보다 더 크게 박수를 치며 감사를 표했다. 교육과정의 첫날 마련된 특강은 꽤나 성공적인 셈이었다. 수업을 마친 몇몇 수강생은 앞 다투어 강사에게 인사를 하고 개별적으로 추가 질문을 하기도 하며 열기를 이어갔고 강사는 관심을 보이는 수강생들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미옥은 명함을 받을 생각은 없었지만 강의실 출구가 붐벼 빠져나가지 못하고 잠시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아 얼떨결에 인사를 건넸던 남자가 강사로부터 명함 하나를 받아 들고 강사와 반갑게 인사하고 있었다. 그는 전부터 강사를 알고 있는 듯이 보였다. 강사가 또 다른 수강생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 그 옆자리 남자가 미옥에게 다가와서 아는 체를 했다.  

“강의 재미있었죠? 식물도 생각을 한다?...정말 흥미롭지 않아요? ”

“아...네...”

미옥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며 대답했다. 옆자리 남자는 이제 보니 미옥과 비슷한 연배로 보였고 커다랗고 맑은 눈을 가지고 있었으며 말할 때마다 그 큰 눈을 자주 깜박이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저는 강 민수라고 합니다. 앞으로 자주 뵙겠네요...잘 부탁드립니다.”

호의가 가득 담긴 큰 눈을 깜박거리며 민수가 정식으로 인사했다. 

“아...네...”

미옥은 역시 고개만 숙여 인사했고 출입문의 봉쇄가 어느 정도 풀린 걸 확인하고 도망치듯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뒤에 남겨져 멋쩍어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민수의 시선이 뒤통수에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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