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한민국 육아대장 예채파파다.

by 예채파파

"내가 진짜 세상 누구보다 강한 기세로 나 자신에게 멋진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기회.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

나에게 그 기회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밖에 없어요? 나 자신밖에 없어요."

- 청울림 선생님 부자특강 中


/


지금도 그날이 생각난다.

출근길에 이 강의를 듣다가 갓길에 차를 세워두고 대성통곡을 하면서 울부짖던 그날이.

아무런 대책도 준비도 계획도 없이 '아, 육아휴직 써야 하는데?'만을 되뇌었던 날들.

그런 뜨뜻미지근한 마음에 제대로 기름이 부어진 순간을 마주하고 나는 마음을 독히 먹게 되었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육아를 잘하는 아빠가 된다!"

이 허무맹랑한 서른아홉의 외침은 지금 마흔을 넘긴 아빠의 육아휴직 2년 차로 메아리처럼 다가왔다.


육아란 무엇일까?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면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소명이고, 고귀하며, 눈물이 날정도로 따뜻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회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단어,

엄마들도 눈치가 보여서 오랜 기간을 사용하기에 눈치가 보이는 단어,

진정한 의미를 모른 채 그저 일을 하지않고 쉬려하며 꼼수를 부리는 듯하게 보이는 단어,

바로 "육아휴직"이다.

왜 사회는 아직까지도 육아에 대한 생각을 단단하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왜 아직도 '예전에는 이랬다, 저랬다.'며 변해가는 세상에서 고지식한 "라떼는"이라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얘기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나 역시 이러한 생각을 단번에 하지는 못했다. 아니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육아휴직이라는 단어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육아라는 것에 대해서도 절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허나 아내의 복직은 점점 가까워지고, 양가에 손을 벌릴 수 있는 경우가 아니었기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빠의 육아휴직에 대해서.

하지만 위에 적힌 대로 "휴직을 써야 해!"라는 단순한 생각 외에는 별다른 노력이 없었다.

그러다가 마주 본 아이의 눈망울.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두고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시기에 맞물려 들었던 인생 멘토의 강의 그리고 외침,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세요!"

나는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는 삶을 스스로 허락하자"



사람은 누구나 어떠한 계기를 만난다.

그리고 인생의 전환점을 만나게 된다.

그 순간, 생각만 하고 실천을 하지 못하면 방향을 바꾸지 못한 채 그냥 그대로 가는 것이고,

중요한 결정을 실천으로 옮기게 되면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는 육아휴직이 그러한 계기였다.

물론 회사와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정말 쉽지 않았다. 아니 어려웠다.

그럼에도 내 마음에는 확고함이 있었다.

'이렇게 소중한 내 아이들의 성장을 오롯하게 옆에서 조력하는 기회를 나에게 주자!'

물론 부부가 맞벌이를 하면서도 아이들을 기관에 맡기거나 돌보미분께 맡기면서도 가능한 부분이다.

다만 나와 아내는 우리 스스로가 하고 싶었다.

일생에 한 번뿐인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뒹굴고 안아주고 공유하면서 그렇게 보내고 싶었다.


결심이라는 것.

쉽지 않았다.

남자 나이 마흔에 새로운 결정을 한다는 것,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생각이 길어지면 용기는 사라진다는 것.

나는 스스로의 선택이 확고했고, 확실했으며, 꼭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육아휴직의 길로 들어가면서 마음에 단단함을 새겨놓았다.

그러한 단단함을 매일 바라보고 생각하고 외치며 그렇게 시작한 나의 육아휴직이었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육아를 잘하는 아빠이다.
나는 대한민국 육아대장 예채파파이다.




낙타.jpg
이전 01화내가 “아빠육아”로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