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였던 시누이

우리는 같음과 다름을 동시에 가진다.

by 예담


5월은 가정의 달, 가족모임도 많고 챙겨야 할 마음들로 분주한 달이다. 어린이날을 맞아 어김없이 할비 할미가 아이들을 축하해주러 오겠노라 하셨고, 우리는 어버이날을 맞아 그럼 그날 가족 모두 함께 식사하고 바람 쐬러 가자는 제안을 했다. 하나뿐인 남동생은 결혼 전까지 조카들의 물주이자, 방귀 하나로 낄낄거리며 한참을 뒹굴 수 있는 친구 같은 삼촌이었다. 동생이 결혼을 하고 그에게도 아이가 생기면서 예쁜 숙모와 뽀송뽀송 백설기 같은 아기 동생이 생긴 우리 아이들은 서먹해했다. 가족 그림을 그릴 때도 늘 삼촌이 끝이었지. 숙모와 아기 동생은 그려 넣질 않았다. 소심한 질투 같은 건가... 아무튼, 그 제안에 동생이 잠깐 머뭇거리더니 올케의 친구들이 그날 오기로 했다며 그런데 일단 기다려보라고, 조정해보고 다시 말해주겠다고 했다. “ 야야야! 됐어. 시간 내어 오랜만에 친구들 보는 걸 텐데. 만나고 담에 보면 되지. 우린 날이 그날뿐이냐 어디. 그날은 그럼 우리끼리 식사할게.”라고 했지만, 전화를 끊고 왜 그렇게 서운하던지...


시누 짓 하기 싫어서 아무렇지 않은 척 서둘러 마무리 짓고 끊었지만, 속마음은 하나도 쿨 하지 못했음을. 입이 삐죽삐죽 혼잣말로 “담이가 삼촌 보고 싶어 했는데...”.


남매는 유년시절 치고받고 싸우며 든 꼬질꼬질한 손때 묻은 정이 있어서 누이는 이제 시누이가 된 것이 못내 씁쓸하다. 아이들은 뭐든 사달라고 하면 도깨비방망이 마냥 뚝딱뚝딱 이었던 우리 삼촌이 이젠 아빠라는 것이 억울하기도 하다. “삼촌 안 보고 싶어? 왜 요즘 전화 안 해? ”라고 동생이 전화해 물었을 때, 아이들이 그랬다. “삼촌은 이제 이준이 아빠잖아. 당연히 보고 싶지. 얼굴도 잊어버렸어! 흥” 한바탕 웃어넘겼지만, 가족의 여러 이름과 형태에 대해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 나조차도 시누이자 동시에 올케, 같고 다름을 동시에 가지는 것이다. 마치 이해와 반감처럼...





80년대에 태어난 올케였던 나와 90년대에 태어난 나의 올케는 참 다르다. (아 근데, 올케는 어감이 참 별로야. 오랑캐 같잖아. ) 남편에게 몇 번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왜 그렇게 못했을까? 정말 보기 좋다고. 명절이든 무슨 날이든 함께 밥을 먹을 땐 어김없이 늘 남동생이 아기를 받아 들었고, 그녀는 시아버지 옆에 턱 하니 앉아 야무지게 밥을 먹는 거였다. 그것도 여유 있게 이야기도 나누며 맛있게 한 그릇을 턱 하니 비우고 동생은 그 뒤에 배턴터치를 하는데, 나는 그 광경이 낯설기도 하지만 그보다 멋지고 예뻐 보여서 웃음이 났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늘 동동거렸었다. 시댁 식구들 모두 식사하는 동안 나는 아가씨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 밥을 먹이느라 진땀을 흘렸었지만, 그것을 거스를 생각조차 못했다. 부당함을 기꺼이 감수하니 부당함은 당연히 내 몫이 되었다. 나는 90년대생 우리 올케의 청량한 당당함을 응원한다. 결국 하나뿐인 이름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런저런 이름들과 위치에 얽매이다 보면, 한겨울에 방구석에 앉아 귤 까먹듯 내 이름도 까먹게 되니까.


KakaoTalk_20190503_115752595.jpg 삼촌은 숙모 사진을 찍어주고, 아이는 풍경을 바라보고, 할머니이자 시어머니는 그 모두가 너무 예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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