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집

외할머니 집이 허물어지고 다이소가 들어섰다.

by 예담


다 있소. 뭐든지 다 있다는 다이소가 생기고 외할머니 집이 허물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넓고 다정했던 할머니 집은 팔렸다. 형제들이 모두 모여 내린 어른들의 결정이었지만 엄마는 마음 아파했다. 오빠들(외삼촌)들의 결정에 반대를 해보았지만 여동생의 입김이 생일 초 부는데야 쓰이지. 무슨 힘이 있었으랴. 결국은 그렇게 될 것을 예상하고 있었을 테다. 몇 달 뒤 할머니 집은 공사가 시작되었고 그 자리에는 커다란 다이소가 들어섰다. 다이소에 다 있으면 뭐하나. 우리 할머니의 집과 화단, 마당이고 운동장만 한 밭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유년의 추억이 서려있던 할머니 집은 이젠 기억을 떠올리며 되짚어야 한다. 시간과 함께 사람들이 머문 흔적이 사라지고 동네의 모양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것을 '개발'이라 부른다지만 어쩐지 '개똥' 같다.


시공간은 사람으로 온기가 채워지는 것이라 할머니가 없는 그곳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허전한 회색빛이 되어버렸다. 촌스럽고 정감 있었던 동네의 상점들과 골목은 길이 넓혀지고 세련되면서 낯선 표정을 지었다. 굳이 갈 이유가 없기에 더 그립고 애달픈 곳이기도 하다.



할머니 집은 언제든 자유롭고 편안했다. 깔끔한 우리 엄마는 정기적으로 할머니 집을 뒤엎어서 청소를 하곤 했는데 그래 봤자 며칠 뒤면 다시 구수해지곤 했다. 할머니 집 안방은 절절 끓도록 뜨거웠고 늘 폭삭한 이불을 깔아 두었었다. (단, 엄마와 함께 가는 날엔 민낯을 드러내었다. 이불을 탈탈 털어서 세탁해서 마당에 널어두고 맨얼굴을 드러낸 바닥은 빡빡 닦이고 닦였다.) 추운 날엔 그대로 쏙 들어가서 이불을 덮고 앉으면 멍함의 극치에 이르러 노곤해지는 기분이었다. '아 뜨거워. 앗 뜨거!' 를 외치면서도 책을 들고 이불속을 파고들었다.


할머니 집이 천국임을 증명하는 가장 큰 환희는 이불속에서도 과자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대충 잔소리를 하고 넘어갔다. "까자 부스러기 때문에 개미가 오지..." 그러면서도 먹지 말라는 소리는 하지 않으셨다. 낄낄거리며 엎드려 과자와 함께 만화책을 보았다. 손으로 따닥따닥 돌려서 채널을 바꾸던 티브이 상자 속의 만화는 또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한참을 놀다가 할머니가 보이질 않아서 마당 뒤쪽으로 끝없이 뻗어있던 밭에 가보면, 몸을 절반으로 굽혀서 뭔가를 캐고 계셨는데 저 뒤의 밭의 끝에는 철조망과 함께 군인이 서있었다. 경남 진해는 그런 작은 도시였다. 도시의 끝엔 바다와 철조망이 쳐진 담벼락이 있었다.


과자 부스러기와 쌓아놓은 책들이 자근자근 밟히고, 겨울이 되면 얼굴은 시리지만 지글지글 끓는 방바닥에 엉덩이는 뜨거웠던 할머니 집! 쓸데없는 물건들이 가득하고, 안채에도 별채에도 비어있는 방들이 많아서 숨바꼭질하기에 제격이었던 우리 할머니 집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자유"이다. 할머니가 세를 주었던 집에 사람들이 이사를 나가고 나면 우리는 그 집에 들어가 한참을 또 놀았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화단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다섯 채의 집들이 모여있었다. 동그라미를 벗어나 두 채의 집 사이로 밭이 광활하게 뻗어 있었다.


어렸을 적 버스를 타고 혼자 할머니 집을 오가던 꼬맹이는 창밖을 보며 정류소를 세다가 까무룩 잠이 들곤 했다. 창문에 머리를 쿵쿵 박으며 깨서 졸음을 이기려고 몇 번 고개를 흔들다가도, 이내 꾸벅꾸벅 졸기를 반복했던 것은 극심한 멀미 때문이었다. 종점에 이르러 푸시식 버스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고 뒷문이 열리면 눈을 비비고 일어나 주섬주섬 내렸다. 멀미도 심하고 겁도 많았던 아이에게 할머니 집에 갈 때면 어디서 그런 용기와 강단이 나왔는지, 할머니 집으로 가는 길은 마음마저도 이미 자유로웠다.


가끔 할머니 집으로 혼자 놀러 갔던 기억은 깊은 여운으로 추억이 되었고, 절절 끓었던 온돌방의 뜨뜻함은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어도 아직 따뜻하다. 오래된 온기는 가만히 마음을 지피고 있다가 시리도록 추운 날에 이렇게 찾아와서 문득 몸과 마음을 달래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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