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와 거리두기

맥주대신 와인.

by 예담

그래. 맥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어디 여름밤뿐인가. 사시사철 맥주는 달디단데. 다만 양심이 있는 인간인지라 공기가 서늘해지면 처음 만난 남녀 사이처럼 무심한 척하는 것일 뿐, 알고 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캔은 끝났지.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도 맥주를 원했고 '아우 이렇게 추운데 무슨 맥주야'라고 말하면서도 입맛을 다셨던 무수한 날들을 고해한다. 어찌합니까. 감히 맥주를 사랑한걸요. (찬 음식을 지양해야 하는 체질이다.)


대학시절 축제기간에 과대표로 맥주 마시기 대회에 나갔던 흑역사를 생각하면 맥주는 그때 끊어야 했다. 맥주는 나를 취하게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다른 술들은 분명히 취했건만 맥주를 먹으면 멀쩡했다. 배가 불러서 더 이상 먹지 못할 때쯤 되면 집에 갈 시간이었고 정신은 온전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진정 온전했겠냐만은. 그때는 그렇다고 느꼈다. 그러니 짠! 하고 시원하게 들이키며 기분을 낼 수 있는 맥주가 만만했다.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향한 호프집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었다. 원샷을 하는 자, 하지 않는 자.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쯤을 거슬러 올라가면 대학가 호프집에선 1700cc, 3000cc를 주문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김 빠지고 식어버린 맥주가 될 텐데, 그땐 그랬다. 그득히 담긴 맥주가 오면 부어라 마셔라 먹고 2차는 소주를 먹으러 가고 3차는 알다시피 살아남은 자들만 가게 된다. 끝까지 간다. 중간에 빠지는 법 없이 늘 끝까지 남아, 술과 사람에게 유종의 미를 거두는 나라는 사람은 술자리 때문에 남자 친구와 많이 다투기도 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맥주는 단숨에 들이켜야 제맛이 나는 청춘이었다. 커피처럼 홀짝거리는 게 아니라 단숨에 입안에 가득 머금고 한 번에 삼키는 거다. 마치 알약 먹듯이! 사케와 위스키와 와인만 홀짝거리는 게 허용이 된다. 한 번은 위스키를 그렇게 마시다 정신이 번뜩 드는 기분을 느끼고 잔을 내려놓은 적이 있다. 이젠 몸이 아는 거다. 바야흐로 몸이 정신을 알고 정신이 몸을 챙겨주는 시절이 도래했다. 이 시절을 지나고 나면 또 어떤 시절이 올까. 정신이 아무리 소리쳐도 몸이 듣지 못한다면 중간에 있던 마음이 아파할 것 같다.


그리하여 나는 몸과 정신의 소리를 듣기로 한다. 가만히 토 달지 않고 따르기로 한다.




[의학박사 마키타 젠지의 책을 읽고 참고했다.]


맥주는 당질이므로 원래 술 중 가장 건강에 좋지 않다. 게다가 몸이 찬 사람에게는 더더욱 맞지 않다. 우리 몸이 당질을 주기적으로 섭취하면 췌장기능이 떨어지고 인슐린 분비가 줄어든다고 한다. 결국 뇌에 무리가 가게 되고 적신호가 켜진다. 혈당치를 낮추는 데는 와인이 좋다. (올리브 오일, 시나몬, 레몬도 도움이 된다.) 프랑스 사람들이 동물성 지방을 많이 섭취함에도 불구하고 심장병에 걸리는 사람이 희박한 이유는 레드와인 때문이라고 한다. 폴리페놀 성분이 들어있는 레드와인을 하루에 한잔씩 마시는 것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 화이트 와인은 나쁜 균을 제거해 장 내 환경을 개선시키기도 한다. 물론 당질이 없는, 시거나 드라이한 맛이어야 하겠다.


일주일을 기준으로 맥주는 500리터 5잔. 위스키는 60ml 5잔 소주는 2잔 와인은 8잔 정도가 알맞다고 한다.


차에 함유되어 있는 폴리페놀 성분인 '카테킨'에는 AGE를 막아내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자기 전에는 레몬밤이나 카모마일, 페퍼민트 같은 차를 마시려고 한다. 매일 조금씩 먹으면 좋은 음식은 레드와인, 강황, 콩, 블루베리, 키위, 양파라고 한다. 되도록이면 와인과 위스키를 조금씩 마시고 콩밥을 지어먹고 블루베리와 키위를 간식으로 즐기며 음식에는 양파를 습관처럼 넣어서 먹는 게 좋겠다.




그렇지만 맥주를 먹으면 행복해진다. 지치고 지난했던 어느 하루의 끝에 터덕터덕 들어와 샤워를 하고 나와 맥주를 꺼내 들면 그 순간부터 위로가 된다. 캔을 따는 청량한 소리마저 개운하게 느껴진다. 맥주를 마시기 위해 따듯한 물을 옆에 두고, 당질을 보태지 않기 위해 안주는 생략한다. 차가운 맥주와 따듯한 물이라니!


차가운 맥주를 마시고 나면 따듯한 물로 몸을 정화시키고 정신을 단정히 하고 잠이 든다.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그것은 어렵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차가운 맥주에 따뜻한 물을 안주 삼는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이건 물이 아니야. 따뜻한 사케야...'


남편은 내가 웃겨서 좋다고 한다. 나는 진지한데.


자 생각해보자. '이 사람은 구 씨다.... 구 씨다....' 안되겠다. 맥주나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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