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을 팔로우하나요?
겉장이 파란 노트 한 권, 연필 두 자루, 그리고 연필깎이와 대리석 테이블, 이른
아침의 향기, 맺힌 땀, 그것을 닦기 위한 손수건 한 장, 그리고 행운.
이것이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이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파리에서 보낸 7년 -
sns의 시대, 어떤 사람을 팔로우하는가에 따라 한 사람의 가치관의 언저리를 조금은 들여다볼 수 있다. 좋아하는 분야를 팔로우할 것이고 추구하는 삶의 형태에 따라 그에 맞는 사람에게 관심이 갈 것이다.
어떤 삶을 추구하나요?
예쁘고 멋진 연예인을 보고 감탄하며 쓰는 화장품이나 입는 옷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연예인들의 일상을 엿보며 재미를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인플루언서의 화려함에 이끌려 공구를 따라 구매하기에 바쁘지만 그것이 일상의 활력이 된다는 이들도 있다 하고, 자신의 업종과 관련된 이들만 팔로우하며 철저히 일적으로 sns를 운영하는 이들도 있다.
무슨 상관인가! 각자의 행복의 주머니는 크기부터 모양까지 다른 각자의 몫인데.
예전에는 멋지고 예쁘거나 당당하고 빛나는 사람에게 눈이 갔었다면 지금은 삶의 태도가 아름다운 사람에게 시선과 마음이 간다. 내 마음을 움직이는 아름다움의 기준은 나의 취향과도 닮아 있다. 어쩐지 예쁜 연예인들보다 그런 삶의 결을 가진 사람들이 더 아름답다. 비슷한 일상을 살고 같은 길을 걸어도 모퉁이마다 새로운 행복을 발견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건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책에 애정을 가진 이들을 주로 팔로우한다. 그들의 추천을 통해 읽고 싶은 책이 생겨서 메모할 때도 있고, 감탄이 절로 나오는 리뷰를 읽으며 공감하기도 한다. 한없이 나태해져 있던 어느 날 피드에 올라온 책탑을 보며 비스듬히 기대 있던 몸을 세워 앉으며 긴장하고, 멍해진 눈을 깜박여 의지를 다잡기도 한다. 가만히 놓여있지 말고, 그렇다고 물살에 따라 곱게곱게 흘러가지도 말고, 여기저기 탐험하라며 선두지휘를 하는 책들은 소극적인 나에게 적극적인 친구이다. 정적인 나에게 늘 동적 활력소가 되어준다.
또한 마음을 고르게 일군 한 사람의 에세이를 읽는다는 건 축복이다. 저자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단단해지는 마음을 확인한다. 하여, 부조리한 삶 속에서도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 삶의 방향성과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바람이 부는 날에도 즐거움을 찾아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여물었는지. 주어진 삶을 오롯이 즐겨야지.
고등학생 시절 수능 모의고사를 앞두고 한밤중에 침대 아래에 기대앉아 과자를 까먹으며 읽었던 책들은 나에겐 커다란 일탈이자 환풍구였다. 그렇게 책을 읽다 보면 다시 공부할 내적 욕구가 생기고 몰입이 되었다. 대학생 때도 마찬가지다. 영어 음운론 시험을 앞두고 허클베리핀 원서를 뒤적이며 읽고 있거나, 영문법을 암기하다 말고 영시를 필사하고 있었으니... 그렇다고 영문학 시험은 또 잘 쳤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교수님이 알려준 제출범위만 파고들어야 하는데 그저 읽었으니까. 엄마의 거대한 계획(영어교육과로 전과를 시키겠다)은 처참한 실패로 돌아갔다. (대책이 없는 아이였다고 적고 싶은데, 덜덜덜 심지어 어른이었다! )
그럼에도 나는 사교육 시장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엄마는 공교육의 칠판 앞에 서지 못한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뭐가 다르냐고 따져 묻지 못했던 이유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서운한 마음보단 미안한 마음이 앞섰고, '문학을 좋아해서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인가' 자책하며 나의 행복을 쿡쿡 찔러대기도 했다.
하지만 20년 전에도 그랬고, 그보다 훨씬 전 아이였을 때도 그랬듯이 지금도 변함없이 곁에서 온기를 주는 것 또한 책과 문학이다. 책을 읽으며 사유하고 한 세계에 빠져드는 것은 광활한 바다에서 겁도 없이 수영을 하는 자유로운 마음과도 비슷하다. 아늑한 공간에서 호젓하게 읽어가는 독서라는 행위가 주는 만족감은 실로 다채롭다. 독서의 기쁨을 아는 사람을 팔로우한다. 독서는 의무가 아니라 즐거움이며 경험할수록 더 나아갈 수 있는 수영이다.
식물을 곁에 두고 긴 시간 동안 묵묵히 키워나가는 사람이 좋다. 산책길의 나무가 주는 조건 없이 너른 고마움과 식물을 키우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은 부지런하고 유연하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 여기지 않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취향과 소신을 지켜나가는 사람을 보며 반하곤 한다. 호방한 마음으로 언제든 스스로의 속도와 방향을 가지고 걸어 나가는 당당함을 가진 사람은 매력적이다. 예컨데 직업과 연결고리가 없는 취미를 가진 사람이 그러하다. 업으로 삼고 있는 일과는 무관한 취미를 즐기는 이는 삶의 즐거움의 한가운데 놓여있는 것만 같다. 검증되지 않은 개개인의 정보가 넘쳐서 과유불급이 되어버린 단톡방에서 우물쭈물거리지 않고 인사하고 나올 수 있는 줏대가 있고, 어느 중요한 모임에서 분위기에 휩쓸려 다수에 이끌리지 않고 언제든 일어서 나갈 수 있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이 멋지다.
긴 시간을 공들여하는 취미가 있는 이 또한 매력적이다. 빠른 피드백과 결과물 없이도 몰입하며 행복할 수 있는 취미가 있는 이들은 타인의 관심이나 평가를 갈구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어도 근사한 하루가 만들어지고 느리더라도 이끌어 가는 소박한 재미가 있는 삶은 충만하다. 지는 노을을 아쉬워하며 사진으로 남기는 대신 그 속으로 들어가 이미 함께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그런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나에게 긍정의 기운을 주는 이를 가까이하여 스미고 싶고, 나 또한 좋은 기운을 뿜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쉽진 않겠지만, 천천히.
중요한 건 해석이다. 들여다보고 매력을 찾고 음미하는 것이다. 인생은 음미할 줄 아는 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선물한다. [없던 오늘]
열등감이나 패배감에 잠식되지 않은 건강한 마음으로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을 사는 사람. 이제 나는 특별한 사람보다 그런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이건 나는 게 아니라 멋지게 추락하는 거야. 흔들림 없이 단단한 목소리로 말하는 버즈는 오히려 바로 그 순간 가장 반짝였다.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