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아이들과 집밥을 해 먹는 날은 어김없이 밥솥에 어중간한 밥이 멀뚱멀뚱 표정 없이 남아있다. 오늘 밥은 가능하면 내일로 넘기지 않으려고 한다. 하루가 넘어가면 찰기와 구수함도 사라지거니와 애매한 양으로 남은 밥은 다음날 한 명의 희생을 부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유년시절의 저녁밥상에서 엄마는 늘 그랬다. 모락모락 갓 지은 밥을 오목하게 담아주고 뒤늦게 담아온 엄마의 밥그릇엔 식은 밥과 갓 지은 밥이 반반 담겨 있었다. 예쁘고 오목하게는커녕 밥주걱을 싹싹 긁어 담은 흔적을 그릇 가장자리에 남긴 채. 남북 분단도 아니고 늘 밥의 중간엔 뚜렷한 경계가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화창한 밥과 우중충해진 흐린 밥.
엄마도 새 밥을 먹으라는 볼멘소리를 하면 "남은 밥 아까워서 안돼. 누가 쌀을 버려! 쌀 한 톨 농사짓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아니." 하시며 농부 예찬을 늘어놓았다. 밥은 쌀 한 톨도 버리는 게 아니라는 말을 끼니때마다 들었다. 그럼 내가 식은 밥을 먹는다고 가져가는 시늉을 하면 손을 탁 치며, 쉰소리 그만하고 골고루 팍팍 많이 먹으라는 말이 돌아왔다.
치이익, 밥솥에 증기 빠지는 소리와 구수하게 흩어지는 밥 내음은 사람을 무장해제시키곤 한다. 물 멍도, 불멍도 아닌, 밥 멍이랄까!
우리 집의 어중간하게 남은 밥은 프라이팬으로 향한다. 멀뚱멀뚱 길을 잃은 밥들을 프라이팬에 동그랗게 펼쳐놓고 약불에 가만히 놓아둔다. '자 이제 여기가 너희들의 종착역이야.'
타닥타닥, 모닥불 소리가 들린다. 누룽지가 내는 소리는 캠핑할 때 나는 불멍의 소리다. 블루투스 스피커의 음악을 정지시키고 누룽지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보는 사람도 없으니, 지긋이 눈도 감아본다. 타닥타닥 타닥타닥, 누룽지가 내는 소리.
누룽지가 만들어지는 시간 동안 밥솥엔 새 주인이 들어앉아 찰기 가득한 새 밥이 지어지고 있다.
타닥타닥 소리와 치이익 소리가 콜라보되는 순간, 밥의 연주는 절정이 된다.
다 만들어진 누룽지는 후식으로 먹기 위해 끓여서 식혀두고, 새 밥을 휘휘 저어 밥그릇에 담으면 뜨끈한 한 끼가 공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