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일본에 왜 갔어?

아이들은 역사에 진심이다.

by 예담


초등학생인 아이는 세계가 궁금하다. 가보지 못하였지만 동시대에 존재하는 세계가 의문스러워 묻고 또 묻는다. 올림픽을 볼 때도 라이브라는 것에 크게 의의를 두고 보는 듯했다. "지금 우리랑 같은 시간에 저 선수들은 일본에서 경기를 하는 거지?" 확실하냐고 몇 번이나 물으며 눈빛에 생기를 담았다. 4년 뒤에 파리 올림픽엔 꼭 가보고 싶다며 돈을 모으자는 말을 했다. 표정은 이미 비행기를 탄 듯 들떠 있다.


한국사와 세계사에 대한 엄마의 대답이 영 시원찮으면 책을 찾아 읽는다. (기다렸다가 아빠가 퇴근하면 묻는 스킬도 생겼다. 아이들의 질문에 늘 거침없이 설명해주는 남편은 역사에 강하다. 역사책을 읽고 어렴풋이 알게 된 일본에 대한 적개심은 미스터 선샤인을 보며 극에 달했다.


작년 광복절엔 태극기를 그려서 테라스에 붙이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아이들이다. 올해는 궂은 날씨로 인해 민족의 자긍심을 역사책을 읽으며 새기고 있었는데, 책을 읽던 아이들이 다시 분노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일본 사람들은 마음이란 게 없냐고, 내가 옛날로 돌아가서 다 몰아내고 쳐부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눈을 치켜떴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역사에 대한 작은 토론에 빠졌다. 나라사랑의 마음으로 자발적인 역사공부를 끝내고 한숨을 돌린 뒤 아이들을 다시 불렀다. 과자와 주스를 앞에 두고 아이들과 마주 앉았다.


아이들의 역사공부는 과거에 수반된 것이고, 현재와 미래에 대한 관념은 과거에만 국한되어선 안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엄마가 아빠랑 결혼하기 전에 친구들이랑 일본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어."


"왜? 일본을 왜 가? 나쁘잖아!"


"그렇지. 정말 나빴지. 그런데 그건 과거였고 지금은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어. 누군가는 나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착할 수도 있지. 우리도 모두 생각이 다르잖아.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듯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야. 옛날 일제 시절에는 나쁜 사람들의 생각이 이겼나 봐. 책에는 쓰이지 않았지만 그때도 분명히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거야."


"그렇지만 화가 풀리지 않아. 분해."


"엄마도 일본이 싫어. 그런데 가보고 싶은 나라이기도 했거든. 귀엽고 꼼꼼하게 실제처럼 만들어진 미니어처들을 구경하고도 싶었고, 정갈하고 소소한 골목길을 걸어도 보고 싶었어. 장난감 같은 자동차들도 매력 있었고 아기자기한 소품들도 사고 싶었고 말이야."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초밥인 거 알지? 초밥은 일본음식이거든. 부드럽게 아릿한 초밥, 그리고 맥주 한잔이면 마음속의 무언가가 후련하게 스윽 다 내려가버리는 느낌이 들어. 너네들이 콜라에 치킨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면 이해하겠니? 아빠랑 데이트할 때 제일 많이 가던 곳이 일식집이었는데 우리는 여름이면 초밥에 맥주를 마셨고 겨울에는 따뜻한 사케를 마셨었어."


"유후인이라는 소담한 온천마을에 여행을 갔는데 도착하는 날에 태풍이 왔지 뭐야. 료칸의 직원이 차를 가지고 데리러 왔고 꾸불꾸불한 길을 한참을 달려서 산속의 운치 있는 료칸에 도착했어. 직원은 태풍이 몰아치는 중에도 운전하는 내내 웃으며 우리를 안심시켜주었거든. 엄마는 그게 참 인상 깊었어. 여행의 첫날에 닥친 첫 번째 난관을 그 사람의 표정 덕분에 유연하게 넘길 수 있었던 것 같아. 당황하거나 굳은 표정을 보았다면 아마도 엄마는 울고 싶었을 테니까. (뉴스에도 연이어 속보가 나오는 상황이었다.)"


"나무향이 가득한 료칸에서 바람과 비를 맞으며 노천 온천욕을 했어. 비가 와서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그래서 더 좋았어. 낯선 나라에서의 첫밤이 두렵지 않았던 건 함께한 친구들과 취기 어린 젊음 덕분이었지만, 처음부터 마지막 날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온화했던 그 직원의 대응 덕도 있었을 거야."


"일본 사람들은 우리보다 영어에 서툴거든. 그래서 소통이 쉽지 않아 답답할 때도 있었고 쇼핑몰에 갔을 땐 차갑고 마네킹 같은 직원들을 만난 적도 있었어. 그렇지만 대체로 친절했고 즐거운 여행이었어. 여행의 여운이 오래 머물게 하는 단단한 기운을 얻었어."


"너네가 우리 조상님들께 그랬단 말이지? 안가. 절대 안가! 나빠. 너넨 다 나빠!" 그러면서 살기엔 아쉬운 게 세상이고 세계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상과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 훗날 시간이 더 많이 흐른 뒤에 현재는 역사로 또 남겠지만 우리는 지금을 살아야지. 과거를 사는 게 아니라, 바로 지금! 그러니 제대로 알고는 있되 메여있진 않으려고 해.


"엄마는 에쿠니 가오리 작가의 책들을 좋아하고, 요시모토 바나나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도 좋아하거든. 히사이시 조와 유키 구라모토의 음악도 아주 많이 좋아해."


"어때? 엄마는 좀 별론가?"


"아니 아니 아니야.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나는 일본도 가보고 싶어 졌어. 엄마! 싫어하는 게 많으면 할 수 있는 게 적어지겠다. 나도 좋아하는 걸 적어봐야지. 아~~~ 치즈치즈 치즈가 제일 먼저 생각이 나. 크크킄, 그러니까 파리올림픽에 꼭 가야 되겠다! 운명이야. 나는 좋은 향기도 좋아하니까. "


" ^^ ^^ ^^ "


"왜 웃어?"


"네 말을 듣고 있으니 기분이 좋아져서 웃었지롱."


"나도! 나도 기분이 좋아졌어."



역사공부를 하며 분노하는 대신 감사해하면 좋겠다. 우리 선조들께서 남겨준 삶에 감사해하며 곧은 기상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에 대해 공감해 볼 수 있다면 역사는 안타까움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세상에 선이 늘어나는 것은 역사에 남지 않을 사소한 많은 행동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더 나쁜 세상에서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은 이유의 절반쯤은, 드러나지 않는 삶을 충실하게 살다가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무덤에서 잠든 이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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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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