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이 단단한 사람
"엄마는 내가 커서 뭐가 됐으면 좋겠어?"
"음... 용감한 사람?"
"나 지금도 용감한데! 그럼 직업은?"
"직업은 당연히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좋겠어. 너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지?"
"그런데 나는 되고 싶은 게 하나가 아니야. 생각이 바뀌기도 하지만 추가되는 게 더 많아. 푸하하! 일단은 응급실 의사가 되고 싶어. 왜냐면 응급실 의사는 뭐든 다 치료해줄 수 있잖아. 위급할 때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고 말이야. 그래서 긴급할 때 꼭 필요한 응급실 의사가 되고 싶어."
"그리고 공예가도 되고 싶어. 나는 만들기를 좋아하고 잘하니까 공예가가 되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
"또 엄마도 알다시피 작가도 되고 싶거든. 실은 책을 쓰는 작가도 좋은데 나는 영화 대본을 쓰는 작가도 되고 싶어. 내가 상상해서 쓴 이야기가 살아 움직인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글을 쓰는 건 재미있잖아. 그런데 내가 만든 이야기를 사람들이 재미있게 봐주면 완전 멋지잖아. 상상만 해봐도 심장이 쿵쿵 뛰어"
"우와아~~~ 다 멋진데?"
"아 엄마 아직 안 끝났어.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처럼 우주비행사도 되고 싶어. 우주에 가보고 싶어. 아무리 책을 읽어도 궁금증이 사라지질 않아. 근데 이 직업이 제일 어려운 거 맞지?"
"올림픽을 보면 운동선수도 멋진 것 같고, 연주회를 보면 악기 연주자들도 너무 멋지고,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정말 최고잖아! 노래를 만드는 작곡가, 작사가도 진짜 최고야. 노래는 언제 어디서든지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니까."
그 후로도 아이는 한참을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생기가 가득한 채 많은 꿈을 나열하며 행복해했다. 마트의 장난감 코너에서 마주한 황홀한 눈빛처럼 어느 하나를 고르기 아쉬워했다. 꿈꾸며 제 것인양 미소를 짓는 아이의 얼굴은 여름 복숭아를 닮았다. 달고 말랑한 분홍빛 황도의 향이 나는 것만 같았다.
여느 부모들처럼 남편과 아이의 미래에 대해 대화해 본 적이 있다. 우리 아이는 커서 뭐가 될까? 하는 궁금증에서부터 시작되어 부풀고 부풀어 아이가 중, 고등학생이 되면 뻥 터지고야 만다는 모든 부모들의 일장춘몽이 라 했던가!
순순한 남편은 아이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괜찮다고 했다. 대학교도 직업도 관여하지 않고 응원만 할 것이라고 했고, 그런 결의 사람임을 오래 겪어보았던 나는 그것이 진심이며 지켜질 것을 안다.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너의 유년의 시간 속에 엄마가 미처 닿지 못하는 순간에도 담대했으면, 좀 더 자라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일이 생길 때 유연하게 넘길 수 있었으면, 어른이 되고 나이가 더 들어가도 유머를 잃지 않았으면, 지금처럼 꺄르르륵 웃진 못하더라도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누리며 살았으면 한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같다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혹여 그렇지 않다면 좋아하는 것이 더 많은 삶이 더 행복한 것 같아. 좋아하는 게 많으면 즐겁잖아. 즐거움은 자꾸만 확장되어서 삶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해. 콘텐츠의 세상이잖아. 봉준호 감독이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라고 말했듯이.
너만의 것을 좋아하는 힘을 키우면 좋겠어.
좋아해요! 만큼 설레는 말이 또 어디 있겠어.
예컨대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채송화 교수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함과 동시에 재능이 없는 게 분명한 노래를 눈치 보지 않고 목청껏 소리 높여 부를 때, 아무도 호응해주지 않아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즐거움을 지켜나가는 단단한 좋아함. 같은 것 말이지.
에헤에, 의사라서 예를 든 게 아니라니까. 삶에 대한 책임과 당당함을 예시한 거지. 오해하지 말고 들어.
아무튼, 예전에는 멋지고 예쁜 누가 봐도 빛나는 사람에게 눈이 갔었다면 이제는 삶의 태도가 아름다운 사람에게 눈이 간다. 내 마음을 움직이는 아름다움의 기준은 나의 취향과도 닮아 있다. 비슷한 일상을 살고 같은 길을 걸어도 모퉁이마다 새로운 행복을 발견해내는 마음을 가진다는 건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꿈 이야기는 늘 싱그러운 여름의 풀밭 향기가 나서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눈을 감으면 바람이 불고 자유로이 풀밭을 뛰논다. 손을 잡자고 말하고 싶지만 가만히 귀 기울이며 뒤에서 지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