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너를 위해 있을걸!
"엄마, 현관문은 왜 있는지 알겠는데 방문은 도대체 왜 있는 거야?"
"으 응?"
초등 2학년 아들의 뜬금없는 질문에 웃음이 나려 했지만 꾹 참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아이는 몹시 진지하게 묻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지함을 가볍게 받아치면 안 되지.
"그게 갑자기 왜 궁금해진 거야?"
"현관문은 꼭 필요하니까 있는 거잖아. 우리 가족의 집이니까 다른 사람들의 집과는 분리돼야 하고, 또 도둑이나 나쁜 사람들로부터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도 필요하고, 더울 때랑 추울 때도 문이 막아주고, 아! 또 벌레도 못 들어오게 하잖아. 그런데 방문은 어차피 계속 열어두고 있는데 왜 달아놨지? "
아이의 눈은 집안의 문들을 훑고 있었다. 아이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정말로 우리 집의 문들은 모두 활짝 열린 채 벽에 찰싹 붙어있다.
빛바랜 기억 속의 우리 집은 늘 단정하고 깨끗했다. 바닥은 언제든 누워서 비벼도 괜찮을 만큼 먼지 한 톨 없이 빛났고 화장실과 현관도 언제나 새집처럼 타일의 틈새마저 하얗게 말끔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우리 집의 단정함이 엄마의 수고로움의 결과라는 것은 여름방학에 친구 집과 친척집을 놀러 가면서 알게 되었다. 습하고 더운 한여름, 거실 장판에서 찐득하게 뭔가 달라붙으면 '아 우리 집은 맨발로 걸어도 발바닥이 깨끗한데...' 학교 화장실이 더러우면 꾹 참았다가 다리를 베베꼬고 집으로 달려오며 '봐 우리 집 화장실은 이렇게 깨끗한데...' 명절에 큰집에서 잘 때 이불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면 ' 킁킁. 우리 집 이불은 뽀송하고 좋은 냄새가 나는데...' 어김없이 마음의 소리가 나왔다.
엄마는 부지런히 청소도 했지만 항상 문을 열어두었다. 화장실 문을 열어 습기를 없애고 맨발로도 다닐 수 있도록 건식을 유지했고, 아침에 일어나면 환기를 시키고 청소를 끝낸 뒤, 방문은 물론이거니와 옷장문과 신발장 문까지 모두 열어두었다. 몇 시간 정도 환기를 시킨 뒤 옷장과 신발장 문은 닫았지만 화장실과 방문들은 닫히는 법이 없었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방문을 닫기 시작했던 것 같다. 꽉 닫는 것도 아니고 열어두는 것도 아닌 쾅 소리가 안 날 정도로 조금의 틈을 두었다. 사춘기가 시작되어서라기보다 내 방문 옆에 거실 화장실이 있었고, 또 그때부터 뭔가 방해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닫히지 않은 방문인걸 알면서도 엄마는 노크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루틴을 보며 자라서일까. 로봇처럼 하루에 3번씩 환기를 하며 이것이 환기인지, 강박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여전히 우리 집 방문은 항상 열려있다. 아직 어린아이들이라서 방문이 필요 없다고 하기엔 큰아이는 어느덧 4학년으로 십대의 문턱에 들어섰다. 요즘 아이들은 빠르다고 하니 자기만의 방이 필요할까 하여 초등 입학시점부터 여러 번을 물어본 참이었다. 아이는 방이 필요 없다고 했고 그렇다면 필요할 땐 언제든 만들어주겠노라 했다.
아이들은 거실의 큰 테이블에서 공부를 하고 장난감이 있는 방에서 함께 논다. 안방과 마주 보고 있는 방이 아이들의 침실이고 두 개의 침대와 붙박이장, 책과 스탠드가 전부인 공간이다. 우리 집의 방은 각자의 이름으로 나눠져 있지 않고 역할에 따라 나뉘어 있다. 누구의 방도 아니므로 오픈된 공간이다.
트인 공간에서 숙제와 각자의 작업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을 하며 자신의 세계에 몰입하는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다른 세계에 속하기도 한다. 함께 있어도 따로 있을 수 있고, 따로 있어도 함께 하는 법을 알기에 세계는 충만해졌다.
언젠가 머지않을 날에, 네가 방문을 닫는 날이 온다면 기꺼이 무심한 듯 노크할게! 똑똑 노크를 하고 들어가 마주한 너의 얼굴을 보며 웃어줘야지. 아마도 나는 너의 세계가 사무치게 궁금할 테지만 기색을 숨기고 웃어야지. 혹여 뭐든 듣고 싶어 어슬렁대면 '아 우리 엄마의 세계가 좁아졌구나.' 측은히 여겨 들여다봐주도록! 돌고 돌아서 수없이 오는 세계일 텐데 우리의 순간은 하나이기에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이가 슬며시 방문을 닫는 날에 이 글을 촤락 열어서 보여줘야지.
" 이사를 축하해! 방들이는 할 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