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임에 빠져있던 아이들의 순정이 스멀스멀 말랑이로 넘어오는 건 예견된 수순이었다. 슬라임과 말랑이는 감촉이 닮았고 아이들은 보드라운 말랑이를 좋아한다. 장난감도 시대에 맞추어 진화한다. 요즘의 아이들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우나 정신적으로는 다소의 스트레스가 있어서일까?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서 촉감을 통해 편안해지는 장난감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유년의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남자아이들은 딱지와 구슬, 메칸더브이 장난감? 여자아이들은 종이인형과 공기, 고무줄, 미미와 교감했었던 것 같다. 음... 곰곰이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놀이엔 장난감이 메인이 아니었다. 노는 우리가 주체였다. 집안에서 논 기억이 딱히 많지 않은 걸 보면 학교를 마치면 가방을 던져놓고 무조건 밖으로 나갔던게다. 그 시절은 어쩌면 지금보다 더 풍요로웠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 앞으로 나가자아아아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달려간다아아아"
세상에! 만상에! 고무줄 뛰기를 하며 불렀던 이 노래를 아직도 흥얼거릴 수 있다니!!!
이런 노래를 큰소리로 부르며 고무줄 뛰기를 했다. 한 발을 높이 올려 고무줄을 걸쳐 내려 박자에 맞추어 춤을 추듯 뛰는 고무줄놀이는 여자아이들에겐 최고의 놀이였다. 꺄르르르 터지는 웃음과 함께 땀 흘리며 노는 아이들은 눈빛으로도 통했다.
놀이는 많은 감정을 공유한다.
그저 즐거워서, 친구들에게 뽐내고 싶어서, 살아남아서 더 오래 고무줄을 뛰기 위해서, 열심히 연습을 했다. 우리 편이 이기면 함께 신나 했고 우리 편이 지면 동지애가 더욱 싹텄다. 아무튼 이래도 저래도 즐거웠다. 학처럼 긴 다리로 폴짝폴짝 잘하는 친구들을 보고 있는 것도 꿀잼이었다. 함께 모여 그렇게 땀과 웃음을 쏟아내고 나면 기분이 샤워한 듯 깨끗하고 상쾌해졌다. 놀이의 주목적은 아마도 그런 것이리라.
한참을 놀고 나면 기분좋은 노근함 속에서 차오르는 에너지를 느끼게 된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집에 갈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건 베란다에서 목을 빼고 밥 먹으러 들어오라고 이름을 불러대시던 엄마의 음성이었다. 그렇다면 집에선 무얼 하고 놀았느냐? 어렴풋한 기억으론 종이인형을 오렸다. 그리곤 동생과 숨바꼭질, 역할놀이를 했다.
무도사, 배추도사 놀이를 아시나요?
"실례 실례합니다. 실례실례하세요오~~ 쏙쏘옥 들여다보는 부채도사 집이 맞나요오? "
손동작까지 완벽히 따라 하며 놀았던 기억이 이리도 선명한 걸 보면 '노는 게 젤 좋아'가 아닌, '노는 게 젤 중요해!' 정말 중요한 건 잘 노는 것이다.
종이인형 놀이가 싫었던 남동생이 메칸더브이 칼로 장난스레 나를 치면 그때부턴 조무래기들의 싸움 대환장파티가 시작되었다. 언제나 그 끝은 메칸더브이 칼로 엄마에게 손바닥을 한 대씩 맞는 엔딩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새드엔딩은 아니었다. 우리는 손바닥의 따끔함에 마음까지 잠식당하게 두지 않았다. 따끔함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우리는 새드엔딩을 해피엔딩으로 바꾸는 법을 알았으니까.
식상한 엔딩에 툭툭 털고 일어나 우리는 엄마 옆에 붙어 앉아 다시 낄낄거렸다. 속없는 공갈빵처럼 부풀었다 이내 꺼져버려도 달았다. 엄마가 담아주신 두부를 으깨어 참치와 야채를 함께 섞어 동글동글 빚어내어 참치 동그랑땡을 만들어 먹고, 엄마가 펼쳐놓은 돼지고기를 난타하듯 두드려서 살을 연하게 만들어 계란물과 빵가루를 입히며 돈가스를 만들어 먹었다. 한여름이 되면 냉동실에서 꽝꽝 얼어있는 원기둥 모양의 얼음을 꺼내어 빙수기를 돌리며 슥슥 갈아서 팥과 젤리, 연유와 우유를 넣어서 우리집 빙수를 만들어 먹었다.
(노느라) 바빴던 하루의 끝에 먹는 한 끼는 언제나 꿀맛이었지만 내손을 보태어 만든 저녁은 '감동의 꿀맛'이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구체적인 장난감보단 실체가 없지만 진하고, 흐릿하지만 애틋한 그때의 감정과 표정이 언제든 되살아나는 듯하다.
학교 앞 문방구에 신상 말랑이가 들어왔다며 아이는 이천원을 챙겼다. 원하던 말랑이를 고른 아이는 귀여워 어쩔줄을 몰라하며 애정을 담고, 그걸 지켜보는 나는 아이의 표정과 손짓, 애정을 담는 마음이 귀여워 어쩔 줄을 모르겠다. 먼저 만지작 만지작거리며 교감을 한 뒤 거래에 임하는 것이 수순이다. 아주 마음에 쏙 드는 운명의 말랑이라면 거래를 하기까지의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겠지만!
거래를 위해선 다양한 말랑이가 있으면 당연히 유리하겠지만 그중 신상도 하나쯤은 섞여 있어야 인기가 좋다 한다. 그러니까 희소성의 가치가 있어야 만족할만한 거래가 성사된다는 뜻이다. 친구들에겐 없는 말랑이가 나오면 서로 거래를 하려 하고, 인기가 높은 말랑이는 평균의 말랑이 서너 개와도 거래가 된다고 했다.
여기서 엄마의 궁금증!
"아니, 그래도 새로 산 말랑이를 가지고 있는 게 더 좋지 않아? 오랫동안 만지작거린 말랑이들은 터질 위험도 더 높잖아. (세게 많이 만지거나 떨어뜨리면 터지기도 한다.) 먼지도 제법 묻어있고 말이야."
"엄마, 거래한 말랑이를 내가 영원히 가지고 있는 게 아니야. 어차피 다시 또 거래하는데 뭘! 계속 거래하고 노는 거야. 자기 것만 좋다고 거래를 안 하면 놀지를 않는 건데? 그게 좋다고? 그럼 재미가 없어."
아아아아아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원샷한 듯 정신이 번뜩 들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런 순간이 종종 있다. 무릎을 탁 치며 깨달음을 얻고, 민망함에 웃음을 터뜨리고야 마는 그런 사소한 시간들 속에 나의 먼지묻은 편향을 자각한다.
그래! 네 말이 옳아.
놀아야지. 함께 놀기 위해선 더러 손해 보기도 해야지 말이야. 아니다. 이것도 잘못된 생각이었구나. 득과 실의 개념이 없는 거였어. 네 것과 내 것이 아닌, 함께 하는 놀이를 위한 준비물이었을 뿐.
결핍은 덜 가진 데서 오는 게 아니라 나누지 않는 마음에서 오는 것.
아이를 통해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