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배운다.
아이는 정말 의아한 모양이었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가 간식을 먹으며 작은 입을 옴짝달싹했다. 발그레한 얼굴로 씩 웃으면 아기였을 때의 표정이 겹쳐진다. 그럴 때면 설렁설렁 걸어오던 행복이 노크한다. 두 손으로 보드라운 얼굴을 쓰다듬으며 같이 웃음을 나눌 때면 어김없이 무장해제된다. 기꺼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웃어버리고야 만다. 아무것도 아닌 순간이 특별해진다. 서늘했던 공기에 온기가 돌고 경쾌한 아이의 몸짓에 햇살마저 리듬을 맞춘다.
"엄마! 수업시간에 모둠별로 발표를 할 때가 많거든. 다 같이 토론해서 결과 발표를 할 때도 있고, 모둠에서 제일 잘한 사람 한 명씩만 나와서 발표를 할 때도 있단 말이야. 제일 잘한 사람을 어떻게 뽑냐면 자기를 뺀 모든 친구들의 점수를 주고, 그걸 합해서 제일 높은 사람이 뽑히는 거야. 근데 매번 내가 제일 높아. 칭찬도 받고 선생님이 초콜릿 같은 것도 주셔."
아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설핏 웃었다. 눈을 반짝거리며 말끝이 올라가는 걸 보니 꽤 가슴 뛰는 경험이었나 보다 싶었는데, 본론은 그게 아닌 듯 아이는 말을 이어갔다.
"엄마, 내가 뽑혀서 좋은데, 이상하단 생각이 들 때가 있어. 그게 오늘인데... 난 아무리 생각해도 걔가 나보다 더 잘했다고 생각하거든. 가윤이가 더 잘한 것 같은데 내가 뽑히니까 좀 그랬어. 내가 제일 잘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 거잖아. 오늘은 내가 인정이 안되니까 가윤이한테 미안했어."
얼버무리듯 말끝을 흐리다가도 끝까지 제 할 말을 이어가는 아이의 당찬 모습에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건 어떤 마음일까? 나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선 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의 인정이 필요하다는 말이잖아.
어른도 힘든 이치인 것을. 타인의 인정을 바라느라 정작 자신의 마음은 들여다볼 여력이 없는 어른들의 세계는 크고도 얕다. 자신의 마음을 투명하게 들여다보고, 솔직하게 평가하며 인정하고, 티끝없이 기뻐하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아이의 세계는 작고도 깊구나.
"엄마는 네가 손재주가 있고 뭐든 최선을 다하니까 뽑히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선생님과 친구들도 너의 꼼꼼함을 인정한다고 네가 지난번에 그랬었고 그런 말을 듣지 않았더라도 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는걸."
"응. 그건 맞아. 그런데 다른 친구들이 더 잘하는 날도 있어. 내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해서 모든 그림이 완벽하진 않으니까. 내가 글쓰기를 잘하지만 어떨 땐 다른 친구가 더 멋진 경험을 흥미진진하게 적어서 내가 쓴 것보다 재미있을 때도 많거든. 그럴 때 내가 뽑히면 기쁘지가 않아."
"왜 그럴까? 생각은 다 다른 거니까, 다른 친구들은 너의 것이 멋진가 봐. 그냥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너도 친구에게 칭찬을 듬뿍 줘. 점수도 후하게 주고 말이야."
"응! 그런데 엄마, 난 항상 친구들한테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이미 최고점만 주고 있어."
"왜? 모두 다 잘해서 최고점을 준거야?"
"아니 그건 아닌데. 누구에겐 5점을 주고, 누구에겐 3점을 주고, 점수를 다르게 주는 게 미안해서 그냥 다 최고점만 줬어. 사실 똑같은 시간에 다 열심히 한 건데 조금 못했다고 점수를 작게 받으면 속상할 것 같아서. 나는 그냥 못한 친구한테도 잘했다고 해줘. 어차피 그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는 점수잖아. 그런데 만약에 상처를 받으면 그건 빨리 없어지지 않는 생각이잖아 엄마 맞지? 그래서 나는 모두에게 높은 점수를 줘."
아이쿠야! 이제 알았다.
최고점을 받기 위해선 내 점수가 높아야 하니 당연히 친구에게 최고점을 주기란 고민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한 녀석이 나에게 자꾸만 최고점을 준다. 내가 실수를 했을 때도, 완성하지 못했을 때도, 자꾸만 최고점을 주는 친구 녀석이 황당하지만 고맙다. 나도 이 친구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다. 그래서 요 녀석은 내내 최고점이 되었구나.
뭐 줄거리가 그쯤 되겠다. 내보내어진 마음이란 돌고 돌아서 결국은 나와 조우한다. 다양한 형태의 장애물과 꾹 닫힌 문이 즐비한 어른의 세상에선 험난한 과정을 거치며 갈 곳을 잃은 마음들이 나부끼고, 드넓게 탁 트여 펼쳐져 있는 초록의 평야를 닮은 아이의 마음은 어디든 사뿐히 날아간다.
두 팔을 펴고 서 있으면 햇살과 바람이 나에게 달려오는 듯해서 눈을 감고 한껏 껴안아보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호기롭게 마음을 내비치던 시절을 지나왔지만 어떤 날엔 바람 부는 평야에 서서 겹겹의 마음들을 벗어던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계산 없이 마음을 전하는 이는 주고도 모른다.
"엄마는 오늘 너에게 배운 마음을 글로 써둬야겠어. 잊어버리지 않도록.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