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동산에서의 아이들은 뭐랄까. 즐거움과 행복함을 넘어선 결연한 의지가 비친다. 흡사 전쟁에 나가는 용사의 기개를 품은 듯 내딛는 발걸음마저 힘차다. 스펙터클한 놀이기구를 보며 고개는 절로 돌아가고, 눈이 보름달처럼 휘둥그레졌다가 이내 초승달처럼 갸르스름해져서 웃어댄다.
도전하고 싶은 마음 반, 두려움 반의 중간 쯔음에 선 채 망설인다. 도전에 성공한 아이는 의기양양한 기색으로 "생각보다 안 무서워. 재밌어!" 라며 허세가득한 표정으로 호탕하게 웃는다. 반면, 도전을 포기한 아이는 아쉬움에 몇 번이나 놀이기구를 쳐다보며 주먹을 쥐어보기도 하고 입을 앙 다물어도 보지만, 이름모를 사람들의 고함소리에 더욱 어깨가 움츠려 들고야 만다.
몇 년전 잠실 롯데월드에 갔던 날은 놀이동산 곳곳에서 좀비 코스프레를 하던 날이었다. 추석 연휴였고, 얼마 남지 않은 핼러윈데이를 위한 이벤트였다. 피를 흘리는 분장을 한 좀비들이 돌아다니고 사람들은 좀비를 피해 도망치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마도 지금이라면 무지무지 신나서 뛰어다녔을 텐데!
그때 둘째 아이는 유치원생이었다. 꿈과 희망의 동요와 인형들로 가득할 알록달록한 놀이동산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서울에 왔을 아이의 구름 풍선이 펑하고 터져버렸다. 파스텔빛의 풍선대신 피 흘리는 좀비들의 출몰에 아이는 사색이 되어 울었고, 너무나도 사실적인 좀비들의 출현에 큰아이도 짐짓 당황한 표정이다. 우리는 급기야 작은 아이는 안고, 큰아이는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좀비가 없는 곳으로...
눈물, 콧물, 땀범벅이 된 그날을 잊지 못하지. 그리하여 정작 인형들의 알록달록한 퍼레이드가 시작되었을 때 작은 아이는 지쳐 잠이 들었다. 정말로 웃프다는 말이 절로 나왔던 날이었는데 아이들은 그날의 추억을 너무 그립고 행복했다고 말한다.
"너 좀비 때문에 울었잖아."
"그건 좀비가 갑자기 나한테 달려오니까 놀래서 운 거지. 근데 엄마가 안고 도망가는 것도 재밌기는 했는데! 크크 놀이기구 타면서 신났어! 또 가고 싶어. 진짜진짜 행복했어."
추억은 다르게 적히지. 암만.
이번 여름방학 부산에서의 롯데월드는 사뭇 달랐다. 아이들이 나보다 놀이기구를 잘 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체력은 가뿐히 나를 앞지른다. 몇 년 새 딴 세상이 되었다. 아이는 흘러가는 시간과 땀으로 젖어버린 머리카락, 땀냄새가 물씬 풍기는 옷들과 반비례하며 생기와 에너지를 뿜어냈고, 나는 시간과 정비례하며 급격히 추락하는 에너지를 겨우 부여잡고 비타민 드링크를 마셔댔다.
큰아이가 용감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겁이 없을 줄은 몰랐다. 다음번엔 고난도로 도전해보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파트너인 아빠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큰 아이와 장단을 맞춰주며 타기가 여간 심장 쫄리는 일이 아니라나 뭐라나! "아이구 이 양반아..........................이....해.......해."
놀이동산을 나서며 저녁으로 뭐 먹으러 갈지 물으니, 아이들이 답한다. "아무거나"
"진짜로 먹고 싶은 거 없어?"
둘이서 눈빛 교환을 하더니 소리친다.
"라 면!!!!!!!!!"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이렇게 에너지를 많이 소비했는데 라면 가지고 되겠어?! 영양가 있고 든든하게 먹어야 충전이 되지."
"아! 엄마! 생각해봐. 사람들이 이사를 하면 뭘 먹어? 짜장면을 먹지? 그날은 에너지를 많이 썼는데 왜 짜장면을 먹겠어? 그게 제일 충전이 잘 되는 거니까야! 라면도 그런 맥락으로 지금 먹고 싶은 거지."
"어머! 근데 너 '맥락'이란 단어는 어디서 배운 거야?"
"엄마, 지금 그게 중심 내용이 아니잖아. 맥락을 잘 살펴봐!"
"흐흐 그럼 집에 가서 라면 끓여 먹을까?"
"아싸! 바로 그거야!! 히히 "
아이들이 깔깔 웃으며 환호한다. 롯데월드에 들어서던 입구에서도 보지 못했던 환호와 만개한 웃음을 라면 덕분에 본다.
우리는 정말로 집으로 가서 라면을 먹었다. 부족한 영양분을 어설프게라도 맞추느라 스크램블 에그를 휘리릭 하고 치킨너겟도 오븐에 굽고, 오이 하나를 간장, 식초, 매실액기스에 살살 버무려 가니쉬로 치킨너겟 옆에 두었다. 어쨌든 메인은 라면!
맥주를 꺼내 칙, 콸콸콸, 소리와 함께 얼음까지 추가해서 단숨에 들이키니 나의 메인은 맥주였구나.
다음번 놀이동산에서 우리는 또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올여름의 놀이공원을 어떤 마음으로 추억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