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과 낙선
반장선거가 끝났다. 야심차게 공약을 준비하고 일주일 전부터 공들였던 5학년 아이는 탈락의 고배를 마셨고, '나도 나가볼까?'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한마디를 던지곤 설렁설렁 학교에 갔던 3학년 아이는 반장이 되었다.
예상을 뒤엎은 결과에 딸아이의 얼굴을 보니 이미 눈물이 뚝뚝 흐르고 있다. 훌쩍이지도 않고 눈물만 뚝뚝, 정성스레 공약을 적은 종이를 적시고 사인펜으로 또박또박 적은 글자가 번진다. 안 그래도 서글픈 마음인데 글자는 왜 번지고 난리냐. 사라져 가는 글씨를 보니 더 마음이 아픈지 종이를 만지작거리며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연신 옷소매로 훔쳐댄다. 아이는 진심으로 반장이 되고 싶었고, 반장이 되어야 회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될 확률이 높아진다며 뒷일도 도모했다. 그리고 될 거라 믿었던 것 같다.
아들은 누나처럼 목표와 의지가 강하지 않았기에 간절함도 없었지만, 최선을 다하는 누나를 보며 마음이 움직였다. 덩달아 출마해보았는데 몰표를 받아서 조금 얼떨떨했다고 한다. 휘뚜루마뚜루 공약을 발표한 아들은 어떻게 반장에 당선이 되었을까?
아들은 자연스럽게 물을 따랐을 것이다. 지금 마시는 것이니까 자연스러울 수밖에. 이야기하듯 덤덤하게, 하지만 누나가 연습하던 걸 곁눈질로 보았기에 공약을 말할 땐 힘을 주어 말했다고 한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갔지만 돌아올 때는 어깨에 힘을 잔뜩 준채 돌아왔다. 반장의 직책을 경험하며 솔선수범과 적극성을 익혀나가길, 반장이라는 책임감이 생긴 아들은 아마도 이번해에 더 여물어지겠지. 감사하다.
아쉬움에 어찌할 바를 몰라 눈물이 멈추지 않는 아이에게 '너도 잘했어. 괜찮아.'라는 위로는 들리지 않는다. 방안이 있어야 다음을 기약하며 눈물을 거두어들일 명분이 생긴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좌절 내구력은 일단 마음이 회복이 된 뒤에야 내적인 근육이 된다.
예담아, 강약 조절이 필요한 것 같아. 지나치게 힘을 많이 주면 보는 사람도 어색해질 때가 있거든. 아주 잘하고 싶은 마음을 조금만 가라앉혀봐. 에이 뭐, 그냥 해보는 거야. 완벽히 채우지 않아도 괜찮아. 출렁이던 마음이 넘치지 않도록 말이야. 넌 정말 잘했거든. 그런데 물이 가득 담긴 컵은 쏟아질까 봐 들기도 힘들잖아. 그래서 부담스러울 수도 있어. 다음엔 조금 힘을 빼봐. 농담도 곁들이면서 말이야. 무슨 말인지 이해 안 가지? 사실은 엄마도 잘 몰라. 초등학교 때 엄마는 너처럼 의욕 많고 꿈과 용기로 충만한 아이가 아니었거든. 학교 가는 길에 개가 있으면 저 멀리 골목을 뱅뱅 돌다가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는 겁쟁이였지. 세상에 회장 선거를 꿈꾸는 아이를 내가 낳았다니, 어메이징 하다!
그제야 아이가 웃는다.
"엄마, 나 다음 선거 때는 공약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게 다 외우고 배경음악도 깔래. 그리고 제스처도 정해서 연습해야지. 자연스럽게 하려면 일단 연습을 더 많이 해봐야 해! 자연스러운 것도 연습이 필요해 엄마. 이번엔 준비가 부족했어."
마음을 유연하게 가지고 힘을 빼라고 했더니, 힘을 빼는 연습을 완벽히 하겠다고 말한다. 노력을 확장시키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아아! 엄마가 틀렸네. 네 말이 맞는구나. 맞아. 노력해보지 않고 어떻게 알아.
어느새 눈물이 마르고, 마음이 환기되자 아이는 웃었다. 아이는 아이라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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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모든 가능성을 하나하나 실험하고 실현할 용기만 있다면, 우리 삶은 더욱 당당하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