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남자친구 없어? 좋아하는 건 좋은 거야!

고백을 고백하는 엄마

by 예담



초등학생인 아이에게 좋아하는 남자 친구가 없는지 물었다. 아이는 쳐다보지도 않고 시크하게 대답했다.

"없어."


"엄마가 보니까 멋진 친구들 많던데..." (소심하게 끝을 얼버무리며 대화를 이어 본다.)


"윽! 멋지다고? 누가? 다 못생겼어. 그리고 땀냄새가 폴폴... 체육 안 할 때도 냄새가 난다니깐!"


"사람은 누구나 땀 흘리면 냄새가 나지. 땀 흘리며 운동하는 거 멋지지 않아?"


"아닌데. 마스크를 써도 냄새가 나니까 신기할 따름이야! 엄마는 초등학교 때 좋아하는 남자 친구가 있었다고 했지만 나는 아니야. 그러고 보니 엄마는 사람을 잘 좋아하네요?"




사람을 잘 좋아한다?

아이의 말을 곰곰이 들여다본다. 우리 집 아이들은 엄마의 첫사랑을 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주전자를 들어준 같은 반 남자 친구! 나름 얼마나 애틋했던지, 브런치에도 썼었다.

(https://brunch.co.kr/@yedambook/36) 반하게 된 이유와 누군가를 좋아할 때의 행복에 대해 종종 이야기를 해주는 편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첫사랑, 주전자를 들어준 남자 친구를 몹시 좋아했지.

중학교는 남녀공학이었는데 1반부터 5반까지는 남학생. 6반부터 11반까지는 여학생으로 반이 나뉘어 있었거든. 음... 3반이었던 것 같아. 엄마 말고 좋아하는 남자아이의 반 말이야 크크. 그 친구가 교문을 통과해 들어오는 걸 보려고 학교를 일찍 갔어. 교실 창문에서 눈에 힘을 주고 기다렸지. 혹시 깜박할 사이에 지나가서 못 볼까 봐 친구까지 동원해서 같은 교복 속에 그 친구를 찾았어. 마치 윌리를 찾아라!처럼. 그런데 알고 보니까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던 거야. 아직도 생생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이었는데, 육교에서 만나자고 했거든. 우산을 쓰고 나가서 초콜릿을 줬어. 밸런타인데이에 누군가에게 초콜릿을 처음 준 날이었지.


"엄마 진짜 용감하다. 안 부끄러워?"


부끄럽다기보단 떨리고 설레었지.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표현을 해야 직성에 풀렸어. 좋아하는 건 좋은 거야!



그런데 학교에 소문이 다 퍼져버린 거야. 그때 한문 선생님이 굉장히 세련된 여자 선생님이셨거든. 그걸 알고 수업시간에 웃으며 물으시는 거야. 친구들이 맞다고 확인을 시켜주고, 선생님은 그 반에 수업을 하러 가셔서 다시 그 얘기를 하셨다네. 이건 뭐. 거의 공개 고백 정도로 일이 커져버린 거지. 그래도 아니라곤 안 했어. 누가 물으면 맞다고 했지. 응! 좋아한다고.


고등학교 때 또 진짜 진짜 좋아했던 남자 친구가 있었지. 같은 입시학원을 다녔는데 무스탕 옷을 즐겨 입었고, 굉장히 까칠했어. 그래도 반해버렸지 뭐. 그때도 학원 선생님들이 다 알 정도였어. 그리고? 대학교 때 또 어마어마하게 좋아했던 남자 친구가 있었지. 근데 이상하게도 말이야. 학교를 졸업을 하고 나서 만난 남자 친구들은 크게 기억에 남질 않아. 좋아함에 크기가 적었거나, 순도가 낮았거나, 아니면 애틋함이 덜했나 봐.


아빠? 아빠는 회사에서 만났지. 엄마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지. 말로 다 못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


아이들이 방긋 웃는다.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엄마의 사랑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수많은 질문을 쏟아내지만 질문의 끝과 기다리는 대답은 늘 같음을 안다.


아빠와의 사랑이야기가 끝이 되어야 아이들에겐 해피엔딩이 된다.


그렇지만 금사빠가 어딜 가나? 지금은 어떤 가수의 목소리에 푹 빠져있다.




결혼을 하고 십 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며 '풍덩' 하고 빠졌던 사랑에서 헤엄쳐 나와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 이제는 서로의 눈을 보며 설레어하는 사랑보단 등을 토닥여주고 뭉친 어깨를 만져주는 사랑을 한다. 몇 년 전에 읽을 때는 그러려니 했던 김훈 작가의 글은 시간과 함께 숙성되었다.


결혼이란 오래 같이 살아서 생애를 이루는 것인데, 힘들 때도 꾸역꾸역 살아내려면 사랑보다도 연민이 더 소중한 동력이 된다. 불같은 사랑, 마그마 같은 열정은 오래 못 간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대게 이기심이 섞이게 마련이고 뜨거운 열정은 그 안에 지겨움이 들어 있어서 쉽게 물린다. 연민은 서로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다. 연민에는 이기심이 들어있지 않다. 그러므로 사랑이 식은 자리를 연민으로 메우면, 긴 앞날을 살아갈 수 있다. 사랑은 단거리이고 연민은 장거리이다. 빚쟁이처럼 사랑을 내놓으라고 닦달하지 말고 서로를 가엾이 여기면서 살아라. [김훈 에세이]



함께 누릴 수 있는 즐거움에 감사하고, 함께 나눠질 수 있는 슬픔에 안도하며, 햇살처럼 터지는 기쁨이 있어서 축복 같은 순간을 맛본다. 아이들 때문에 징글징글......... 징글벨이 울려도 아이들 덕분에 우리의 행복은 풍성해졌음을! 찰나의 행복들이 겹겹이 층을 이루어 풍성해지는 크리스마스만큼 좋아한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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