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우리 사이

존댓말과 반말

by 예담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둘째가 유치원을 다니던 무렵이었다. 명절을 보내고 며칠 뒤 엄마와의 일상인 전화통화였다. 가져간 음식들을 잘 먹고 있냐는 이야기 끝에 툭 던지듯 말을 꺼내셨다.

"부모에게 존댓말을 쓰도록 해야 하는데, 왜 너희들은 서로 친구처럼 말을 하냐고 아빠가 한 말씀하시더라."


그래도 아이들이 예의 바르고 다른 어른들에게는 높임말을 잘 쓰지 않냐고 하자 엄마도 그건 참 신통하다고 맞장구치며 어물쩍 넘어갔지만, 그 후에도 몇 번 존댓말에 대해 부모님께서 언급하신 적이 있으셨다.


엄마 아빠에게 존댓말을 쓰도록 하라고 한마디 하면 잘 들을 아이들을 왜 그대로 두냐는 부모님의 말씀을 이해하지만 나는 아이와 반말을 쓰며 친구처럼 지내는 것이 좋다.


친밀함에 대한 갈구인가.


나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께 존댓말을 쓰며 사소한 것들도 예의를 갖추었다. 수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언어들도 존대하는 것이 당연했다. 존댓말을 듣는 어른들은 예의 바르고 고분고분한 문장과 말투가 기분 좋게 들릴지언정, 일상의 사소한 언어들도 모두 존대해야 하는 아이는 말을 하며 껄끄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극존칭을 쓸수록 친하지 않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모든 이야기를 다 하고 싶지만 어쩐지 울타리 속에서 슬며시 빠져나오고 싶었다. 적확한 예의와 규범, 나이에 맞는 태도를 지닌 착한 아이는 꽉 조여진 양말을 신은 것처럼 갑갑해서 자꾸만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발끝을 밀어냈다.

해방에 대한 의지였다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




중학교 때 자주 놀러 갔던 친한 친구의 집에서 생경함을 느꼈다. 친구가 아빠에게 반말을 하는 걸 보고 입이 턱 벌어졌다. 엄마에게 하는 반존대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지만 아빠에게 반말은 상상도 못 했던 범주였다.


친구의 버릇없고 친밀한 말투가 계속될수록 내가 어쩔 줄 몰라 진땀이 났던 기억이 있다. 친구가 아빠와 나누는 화법은 친한 친구들끼리 나누는 말투였고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아주 강한 친밀감과 유대감, 애정을 동반한 믿음이 내포되어 있었다. 아빠는 아이의 투정에 웃음으로 화답하며 유머로 받아쳤다. 꼭 해야 할 말이 아닌 그야말로 '아무 말 대잔치'를 해도 어색함이 없는 사이였다. 어떤 이들에겐 철없는 아이로 보일지언정 그들은 탄탄했고 친구는 아빠를 사랑하고 존경했다.


부러웠다. 그게 전부는 아니었겠지만 반말이 하고 싶었다. 반말로 장난을 치고 싶었다. 우리 가족은 표면적으론 화목하고 행복한 가족이었으나 내적으로 친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올바른 행동과 존댓말을 쓰며 어른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 당연했기에 해야 할 말들도 다르지 않았다. 물론 반말을 쓴다고 하루아침에 바뀔 분위기도 아니었지만, 그때는 마치 '반말'이 비밀의 열쇠라도 되는 것 마냥 열쇠를 가진이들을 부러워했다.




우리 아이들은 부모인 우리에게 반말을 쓴다. 엄마, 아빠, 외할머니와 삼촌(내 남동생)을 제외한 모든 어른들에겐 존댓말을 쓴다.

삼촌과도 아주 친밀하다. 우리 아들과 나의 남동생은 깐부 사이다. 아이는 삼촌이 집에 오는 걸 가장 좋아하며 자신의 모든 걸 공유하며 마음을 나눈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별명을 지어 부른다. 남편은 '칫솔'이고 나는 '히힝'이다. 왜냐고 이유를 물으니, 별명을 짓기 위해 누나와 고민을 했던 날에 아빠가 갑자기 칫솔을 물고 나와서 '칫솔'이고 엄마는 '히힝'거리며 웃어서 '히힝'이라고 한다.


아이답다. 특별한 이유가 없어서 더욱 소중한 별명이기도 하다.

"칫솔, 집에 언제 와?"

"칫솔, 점심밥 많이 먹고 비타민도 꼭 먹어!"

"히힝! 우리 보드게임할까?"

"히힝~ 무슨 책 읽어? 내용 이야기해줄 수 있어?"

곧잘 친근하게 말을 건다. 우리는 친밀하고, 무용한 장난을 치는 걸 좋아하고, 종알종알 서로에게 말을 건다. 친구처럼 지내는 지금이 좋다.

물론 반말로도 서로를 존대할 수 있고, 존댓말로도 서로에게 친밀할 수 있. (마치 헌트의 이정재와 정우성처럼, 존댓말을 하며 친밀한 그들의 젠틀함이란!)


자신에 대한 확신에 찬 사람들은 어떤 말이 든 곡해 없이 받아들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처럼 서로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들은 반말과 존댓말에 대한 틀이 없이 존중과 친밀 사이를 넘나 든다.


애정 하는 이에게 장난을 치는 행위는 달고 온온하다. 사랑을 품고 있는 장난은 눈처럼 폭신하다. 그래서 타격이 없다.


우리는 서로를 친애하기에, 별명을 부르며 반말이나 반존대를 하고, 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장난을 친다. 아이들이 부모인 우리에게 감정을 쉬이 내비쳤으면 좋겠다.


우리 사이엔 턱이 없어 살피지 않고 질주해도 괜찮다고. 유머와 애정을 가득 담은 말들로 서로를 다독이며, 유대하고 친애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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