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배웠던 용기
개학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해졌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가을밤을 알리기 시작한다. 수컷이 암컷에게 구애하는 사랑의 세레나데가 고요한 밤을 수놓으며, 여름내 더위에 바짝 말라있던 마음이 촉촉해지기도 한다. 바야흐로 가을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예기치 못했던 상황들과 맞닥뜨리기도 하고 수많은 시련과 결핍에 앞이 막막할 때도 있다. 그럴 때 "이 사람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어떻게 말했을까? 어떤 행동을 했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사람이 있지 않나. 답이 안 보여 막막했는데 그 사람이라면?이라고 돌려 생각해보니 용기가 생기고 어렴풋이 길이 보이는 그럴 때가 있다.
중2 때 만났던 내 친구 승희.
봄이면 벚꽃으로 온 하늘이 하얗게 뒤덮이는 예쁜 진해가 내 고향이다. 김하늘이 나왔던 드라마로 유명해진 로망스 다리(여좌천) 바로 옆 진해여고가 있는 여좌동에 살았다. 중학교에 가려면 버스를 타야 했다. 우리는 흔들거리는 콩나물시루 버스를 타고 학교를 오갔다. 엄마의 도시락은 늘 맛있는 반찬으로 꽉 찼다. 점심시간에 내가 도시락 뚜껑을 열면 소시지에 볶은 김치에 전과 동그랑땡, 심지어 돈가스나 짜장밥 볶음밥 오므라이스 샐러드 등 손 많이 갈법한 반찬들이 종류별로 빼곡했다. (참 부지런했고 열성적이었던 우리 엄마)
그에 비해 나는 잘 못 먹었다. (그건 지금도 그렇다.) 비위도 약하고 입도 짧고 위도 작은지 조금 먹으면 배가 불러온다. 거기다 긴장하면 소화가 안되어서 거의 못 먹는 편이다. ( 늘 긴장하면 더 잘 못 먹었다. 오장육부도 긴장을 하는 건지 소화부터 힘들어졌다.) 그렇게 내가 깨작거리면 내 숟가락을 들고 밥을 푸고 그 위에 반찬을 올려서 "자 빨리 먹어. 입 벌려! 어서" 마치 우리 엄마가 빙의된 듯 잔소리를 하는 친구를 멍하니 보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한 숟가락 두 숟가락 억지로 더 먹게 되곤 했다. "좀 더 먹어! 이거 남았잖아! 아까워 어서 먹어. 김치도 먹어. 가려먹지 말고" 어찌나 매번 잔소리를 해대는지 그 아줌마 같은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건지 참말 궁금했다. 아직도 생각난다. 싫다고 절대 안 먹겠다던 깻잎무침을 밥 위에 야무지게 올려 내 입안으로 골인하던 너란 아이! 그러곤 "거 봐 맛있지?" 라며 예쁘게 웃던 친구였다.
승희는 눈썹이 진하고 예쁘게 생겼고 언제나 씩씩했다. 목소리도 크고 글씨도 예쁘고 심지어 공부도 잘했다.
나는 핏기없이 새하얀 피부로 체력이 약했고, 수학을 손꼽히게 잘했고 좋아했으며,(영문과를 갔다. 인생은 알 수 없다.) 말수가 적었지만 엉뚱한 소리로 친구들을 곧잘 웃기곤 했다. 아무튼 우리는 친했고 나는 언니 같은 내 친구가 좋았다. 승희는 뭐든 참 나와 달랐지만 웃음코드가 통했다. 함께라 즐거웠다. 승희 집은 시내에서 제일 큰 가요방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학교를 마치면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내려, 반쯤 내려진 셔터문을 올리고 가요방에서 제일 큰 룸으로 들어가 목이 찢어져라 노래를 부르고 다시 도서관으로 가곤 했다.
시험 전날이었다. 늦게까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오던 길, 자전거를 끌고 걸으며 돌아오던 그 밤에 술에 취한 군인들이 말을 걸어왔다. (해군의 도시인 진해는 군인들이 많다.) 겁에 질린 나는 순간 얼어붙었는데, 승희는 역시 승희였다. 양팔을 걷어붙이고 쏘아댔다. 그러니 그쪽에선 더 화가 났던 거다. 술도 취했겠다. 조그만 것들이 대든다며 언성이 높아지는데, 승희가 안 지는 거다. 더 크게 소리를 질러대며 악을 쓰는데, 인사불성인 한놈이 때릴 듯이 달려들고 친구가 말리고 그 상황이 나는 너무나 손발이 떨려서 "야!그냥 가자"며 그대로 달려 나갔다. 집으로 돌아와서 가뿐 숨을 들이쉬었는데, 승희는 내 걱정이 되어서 그 와중에 자기 집으로 안 가고 나를 따라왔다. 자전거도 버려두고. 그리고 내가 집에 잘 도착한 걸 알고 자전거를 찾으러 갔다고 했다.
뭐지? 지금으로 얘기하자면 츤데레! 얘가 딱 그랬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요방이란 곳에서 한낮에 목청껏 노래를 불러보았고, 태어나 처음으로 깻잎무침을 먹어보았다. 큰소리로 웃을 수 있었고 좋아하는 남자 친구 이야기도 고백도 거리낌 없었다. 심지어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말할 정도였으니. (중학교가 남녀반이 달랐던, 남녀공학이었다.)
그리고 중3 체력장 시험 치던 날! 나는 쓰러졌다. 119가 왔다.
빈혈이 심했으며 약했던 나는 오기는 또 강했다. 오래 매달리기와 오래 달리기를 이를 악물고 했던 거다. 하늘이 샛노란데, 점수를 잃지 않겠다고 점점 시야가 흐려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미련도 하지. 결국 쓰러졌고, 119를 타고 갔다. 쓰러진 나로 인해 학교가 소란스러웠던 점심시간 무렵, 승희는 그 와중에도 점심 도시락을 야무지게 입안에 욱여넣었다고 했다. 그렇지! 그래야 내 친구지!
내성적이었던 나에게 적극성을 이끌어 내었던 친구. 많이 안 먹던 나에게 숟가락에 밥을 푸어서 입에 넣어주던 내 친구. 내가 주저주저하면 툭하고 등을 쳐대던 내 친구.
어른이 된 지금도 "뭘 망설여? 그냥 해!"라고 나를 지금도 꾸짖고 있는 것만 같은 친구.
그 친구에게서 나는 배웠다. 큰소리를 내야 할 때 용기를 내는 법. 도움이 필요한 순간 누군가를 도와주는 법.
부끄러움과 당당함의 차이. 그리고 삶에 대한 태도. 일상에 매몰되지 않는 용기.
나는 진해여고를 갔고, 친구는 구미로 이사를 갔다. 그 후 in 서울의 유명한 여대를 간 내 친구는 장교와 결혼을 했다. 정말 찰떡이라고 했지! 내 결혼식날엔 멀리서 입덧이 극심해 오지 못했고, 며칠 뒤 택배가 도착했다. 옴뫄! 세상 내가 입을 거라고 상상도 해본 적 없었던 섹시한 잠옷이다! 아!! 너는 참 너구나!
성인이 된 나에게 다시 또 적극성을 이끌어 내는 내 친구!
머뭇거림 없는 참 한결같은 내 친구 승희.
잘 입었다!! 또 태어나 처음 그런 잠옷을 입어보았지. 너로 인해 또 다른 문을 열어보게 되었지. 어쩌면 너는 매번 한결같을까? 내가 머뭇거릴 때 등짝을 찰싹 쳐주던 중학교 시절처럼.
승희야, 네가 보고 싶고, 우리가 존경해 마지않았던 중3때 담임 정원희 선생님이 보고 싶은 별처럼 수많은 날들 중 하루가 오늘이었다.
이해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느 날 불쑥 삶을 좀 더 깊은 차원에서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 우리는 내가 완전히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음을 깨닫는다.
[컴 클로저]
세상 모든 것은 관계를 통해 나타난다. 색깔이라는 것은 다른 색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고, 차원이라는 것, 위치라는 것도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만 그 의미를 갖는다.
[피에트 몬드리안]
견고하지만 연약하고, 부드럽지만 단호하며, 누구에게도 속박되고 싶지 않지만 그런 자신을 이해해줄 누군가를 갈망하던 마음속 모순. 안주를 지향하지만 탈주를 동경하고 고독을 좋아하지만 타인과의 결합을 원하는 나의 모든 면.
지난 시간의 토막들아 단 하나도 가지 않고 남아 있었구나. 고즈넉이 마음을 태우며 그 추억을 세월에 지켜주고 있네. 그건 사랑이었지. 그건 사랑이었지. [루시드 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