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가 뛰어나오다가 넘어졌는데 날아가서 머리에서 계속 피가 나. 손으로 지혈하고 있는데 손에도 피가 나. 너무 아파. 어떡해! 엄마 어디야?"
전화기 너머 속 아이가 운다. 울먹이면서도 할 말을 또박또박하던 아이는 괜찮을 거라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연신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이의 이름을 부르자 참았던 울음이 터진 듯 서러움을 쏟아낸다.
울음이 뒤섞인 말을 듣자 하니 크게 넘어진 듯했다. 대관절 어떻게 넘어졌길래 머리에서 피가 난다는 걸까. 순간 나도 놀라고 당황하였지만 일단은 차분한 목소리로 아이를 안심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학교로 다시 들어가서 보건실로 가라고 했겠지만 10분 거리 도서관에 었었던 나는 서둘러 차를 몰았다. 떨리는 손에 힘을 주며 신호가 걸릴 때마다 호흡을 가다듬었다. 학교 근처에 다다르자 수많은 아이들 중에 내 아이가 보인다. 신이 동그라미라도 쳐놓고 간 듯 선명하다.
아이도 엄마차를 발견하고 한 손으로 머리를 잡고 가방은 한쪽어깨에 걸친 채 절뚝되며 온다. 눈가에 울음자국과 눈망울엔 다급함이 서려있다.
아이가 차문을 열고 타자마자 나의 마음과 시선, 그리고 걱정이 아이에게 최대한 닿지 않기 위해 완급조절을 해야 했다. 내가 덤덤하게 대하면 아이도 한결 안심할 것이기에 대수롭지 않은 척하는 연기가 필요하다. 엄마사람으로 살며 발휘하게 되는 본능이랄까. 외상치료는 의사에게 맡기되 마음의 치료는 엄마인 내가 작은 봉합이라도 해줄 수 있으니까.
아이는 학교 교문을 전속력으로 달려 나오다가 교문 입구즈음의 내리막길에서 고르지 못한 틈새에 발이 걸려 넘어진 것이었는데, 가속도가 붙은 데다가 무거운 가방의 무게 때문에 중심을 잃고 포물선을 그리듯 앞으로 쏠린 것 같았다. 아이의 표현에 따르면 날았다고 한다.
얼굴이 다칠까 봐 넘어지는 순간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며 그 순간에도 의기양양하게 순발력을 이야기하는 아이를 보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다행인지 고개를 돌렸던 덕분에, 눈 옆의 살이 쓸려서 피부껍질이 벗겨졌다. 눈의 끝쪽과 맞닿은 부분부터 상처가 시작되어 약을 바르고 치료하는 과정이 힘들었지만 그만하길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중심을 잡으려 애쓰며 짚은 손바닥이 심하게 다쳤고 무릎이며 팔꿈치며 상처투성이였지만 괜찮다고 말했다.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중심을 잘 잡은 덕분이라고, 정말이지 그 말은 진심이었다.
다음부터 내리막길에서는 속력을 줄이고 걸으라고 말해주었지만 한 번 넘어졌다고 달리지 않을 아이가 아니다. 여전히 달리겠지. 턱이 있는 부분에 당도하면 멈칫하겠지 하는 마음도 기우였다. 아이는 여전히 달리고 또 넘어지고 일어난다. 다만 이젠 울지 않는다. 피가 나도 놀라지 않으며 쓰라림도 당연하다는 듯 참는다.
회복탄력성과 좌절내구력이 요즘의 온실 속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능력이라면, 실수로 인한 고통을 겪는 아이에게 감정이 드러난 표정을 비추지 않는 것이 부모가 갖추어야 할 태도라 생각한다. 고통을 견디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덤덤히 지나쳐야 하는 일상의 틈을 마주할 때면 여전히 메워주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가진 시간 사이의 간극을 톺아본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시간은 다르기에 틈을 섬세하게 채우거나 혹은 틈 사이로 바람이 지나 들게 두는 것들은 으레 너의 몫이라는 것을.
내 마음이 평온해야 아이에게 여유로운 태도를 줄 수 있음을 새기며 유연한 사고를 지니는 것은 나의 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