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누구를 제일 존경해?" 아들의 질문에 하던 일을 멈추고 눈을 끔벅거렸다. 원래 아이들의 궁금증은 뜬금없기에 '갑자기? 왜?'라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저 정성스러운 대답을 해주면 된다.
"음... 엄마는 존경하는 사람이 참 많은데, 그중에서 제일이 누구냔 말이지? 순위는 안 매겨봤는데 지금 생각해 볼게!"
"고르기 힘들면 위인들 중에서만 말해줘. 참고로 난 이순신 장군님과 안중근 의사님 이야.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하며 애쓰셨잖아. 그리고 그 힘든 전쟁 속에서도 이순신 장군님은 난중일기도 쓰셨어. 그래서 우리가 지금 알게 된 거잖아. 씩씩함에 나는 감동받았어.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애국심과 용기를 생각하면 분노와 슬픔이 밀려와."
'와! 분노와 슬픔이 밀려온다니... 우리 집 늑대소년 마이 컸구나... '
아이들은 그렇다. 말하고 싶을 때 되려 질문을 하곤 하지. 아이는 책을 읽다 존경심이 일었고 벅차오른 마음을 터뜨리고 싶었을게다. 동시에 다른이 도 같은 마음인지 궁금해져 가장 가까운 엄마에게 질문을 하는 것이다. 늘 이렇게 뜬금없이, 귀하고 감사하게!
음... 엄마는 위인들 중에서 고르라면, 무지무지 많지만 그중에서도 슈바이처를 존경하지. 엄마는 강한 왕보다는 이타적인 위인들에 감명받았어. 역사공부를 하면 인문학과도 연결되거든. 그게 무슨 말인가 하면, 꼭 업적을 기리고 위대함만 칭송하는 게 다가 아니라, 그 외의 자잘한 부분들도 궁금해지게 돼. 어떤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 적군과 아군을 가르지 않고 모아두면 누구든 어떤 이들에겐 소중할 테잖아. 그런 생각말이야. 그래서 이타적인 사람을 존중하게 되나 봐. 물론 결과적으론 강한 선조들 덕분에 우리가 있게 되었으니 모두에게 감사해야 하지.
"나의 시선으로 보지 말고 객관화시키고 이해해라." 역사공부를 하며 얻었던 그 가르침이 너무나 와닿아서 적어두었는데 그것은 비단 역사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엄마의 시선으로 아이들을 바라볼 땐 잔소리를 하게 되고 더러 과잉보호를 하게 될 때가 있지만 객관화하고 이해하려 하면 잔소리도 덜하게 되고 그냥 렛잇비 하게 된다. 내려놓게 되지. 존중!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며 바라보니 날 섰던 결들이 자세를 낮추어 바람을 타고 움직인다. 자연스러운 흔들림은 느긋한 여유로움을 준다. 아이의 세계에 순응하고 함께 음미하는 시간은 나를 유년의 세계로 인도하며 닫혔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고 만다.
존경을 떠올리면 빼놓을 수 없는 천사 같은 우리 작은 외숙모도 존경하고,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우리나라 위인들도 물론 존경하고, 초, 중, 고 학창 시절에 존경했던 선생님들도 꼭 한분씩 있었다.
"엄마 그럼 대학교 때는?"
음... 글쎄 잘 기억이 안나는 걸 보니 교수님껜 크게 감명받지 못했나 봐. 존경심이 든 적은 없었어. (실은 엄마가 그때는 노느라 관심이 없기도 했고. 그렇지만 다른 무수한 감정들을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이었지.)
"그럼 지금은?"
지금은 많아! 아빠도 존경하고 주위를 둘러보면 존경할 사람이 지천에 가득해.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거나, 백 프로 완성된 사람을 존경하진 않는다. 상을 받고 주목받는 이들도 있지만 모퉁이 구석진 곳에서 작은 빛을 오래도록 밝히는 이들도 있지. 가만히 누군가를 관찰하면 닮고 싶거나 배우고 싶은 부분이 생길 때가 있다. 외모가 아니라 태도! 누군가의 삶을 존중하면 존경심이 생긴다.
존경하는 사람이 많다면 네가 존중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 그러니 보드라운 너의 마음을 굳게 두지 말고 부지런히 매만져 줘.
부러운 사람보다 존경하는 사람이 많다면 시작하는 하루에 희망의 빛이 감돌지 않을까. 가만히 부러워하는 수동적인 마음보단 존경을 담아 배우려는 능동적인 마음의 파이가 더욱 크기를! 그리하여 해면을 반짝이게 하는 햇볕처럼 존경의 빛을 발산하며 어디서든 존중받기를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