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꿈이 바뀌었다.

둘째의 꿈.

by 예담

아이의 꿈이 바뀌었다. 돌아서면 꿈이 바뀌는 아이라지만, 이번엔 사뭇 특별했다. 죽지 않는 약을 개발하는 연구원이 되겠다며 아이는 다부진 표정과 큰 목소리로 의지를 밝혔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러니까 엄마 내가 약을 개발할 때까지 건강해! 힘든 건 아무것도 하지 말고 나한테 도움을 요청해. 가습기물 넣고 혼자 들지 마. 무거워 엄마."

대화내용만 듣자 하면, 노인에게 하는 말 아닌가! 아들아, 엄마는 이제 40대에 들어섰단다. 저기 저어기 시골에 찐 할머니들이 많은 곳에 가면 "아가"라고 할걸?...엄마는 건강해!


덤덤한 척했지만 감응했다. 찌릿찌릿 자꾸만 뭉클해졌다.


아닌 게 아니라 둘째인 아들은 쉬지 않고 집안일에 매진하고 있는 엄마옆에 와서 곧잘 애교 섞인 항의를 했다.

"엄마 이제 소파에 앉아서 책 읽어. 내가 커피 타줄까?"

"엄마 청소 좀 그만해. 내가 청소기 돌릴께"

"엄마 또 뭐 만들어? 우리 반찬만 만들지 말고 엄마도 밥 많이 먹어야 해. 엄마 오늘 비타민 먹었어?"

"엄마 안아줘. 사랑해 무한으로. 쪽!"

정말이지 심쿵.


나에게 둘째는 세포를 움직이고 마음구석구석을 간질이는 존재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책벌레인 첫째 아이는 고양이, 기척을 내고 함께 하는 시간을 좋아하는 둘째 아이는 내 강아지. 아빠가 새벽에 가든, 밤늦게 오든, 언제나 현관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서 인사를 하 아낌없이 사랑을 표현한다.


주말에 놀고 싶은 마음이 어찌 없었으랴. 의욕이 충만해 뭐든 끈기 있게 해내는 누나를 픽업하러 여기저기, 누나의 대회를 따라 또 머얼리, 작년에는 주말을 반납하고 누나의 영재수업을 따라가 엄마와 4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아이는 재밌고 좋다고 했지만, 찌는듯한 더위의 여름방학 때는 쉽지 않았다. 더워서 힘든 게 아니라, 스벅의 한기 때문에 냉방병에 걸릴 지경이었다. 스벅에서 시간을 보낸 날은 어김없이 두통에 시달렸다. 래서 우리는 차라리 땀 흘리며, 산책길을 찾아 나무사이로 바람길을 찾아가며 걷기도 했다. 한 줌의 바람에도 감사하며 얼굴을 내맡겼다.


아들은 그 모든 지난한 시간을 함께하며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때때로 나는 물었다.

"미안해. 아들. 힘들고 지루하지?"

"아니! 왜 그렇게 말해? 엄마 나는 괜찮아. 엄마랑 같이 커피숍도 가고 동네구경 하며 노는 것도 재밌어!"


우리는 더러 장소 덕분에 행복하다 생각하지만, 행복은 장소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에 어디서든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안다. 아이들은 행복을 잘 만들어낸다. 밀가루 반죽하듯 툭툭 조물조물 모양을 빚는다.


행복을 요리조리 만들어 웃어주는 아이 덕분에 마음의 짐을 덜었지만 온전히 내려놓지는 못했다.


그런 아들이 반장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우리 가족은 한바탕 웃으며 응원을 해주었다. 기대와 부담 없이 그저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아이를 쓰다듬었다.

그날은 학교를 마치고 한방병원에 가는 날이어서 아빠가 아이를 픽업하러 갔다. 아이는 아빠를 보자마자 운동장을 가로질러 있는 힘껏 달려왔다고 한다. 숨이 턱까지 찬 목소리로 헥헥 거리며 침을 꼴딱 삼키고 환희를 내뱉었다.


" 아빠! 나 반장 당선됐어. 거의 몰표야! 원그래프를 선생님이 보여줬는데 내가 거의 다 차지했어"


상기된 얼굴로 아이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하루종일 선거당시의 상황에 대해 묘사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사실 그날 첫째 아이는 선거에서 떨어졌던 상황인지라, 분위기가 무척 애매하였지만 나 또한 감정이 요동쳤다. 첫째 아이를 위로하다가, 둘째 아이에게 가서 꼭 껴안아주며 기쁨을 함께했다. 정말이지 어메이징 했다.

우리 부부만이 아니라, 소식을 들은 할부지 할머니 삼촌을 비롯한 가족들 모두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다. 그게 뭐라고, 그게 전부인 듯 우리는 기뻐했다. 왜냐면, 우리 온이로 말할 것 같으면 작게 태어나 어렸을 때 병원도 참 많이 다녔으며, 놀이터에서 형아들을 따라다니며 팽이를 같이 돌리자고 조르고, 유치원에선 친구랑 장난을 치다 앞이빨이 다 깨지고 입술이 터져서 전화가 오질 않나, 등교의 목적은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잡기놀이를 하며 뛰어노는 것이 전부 인(수요일은 특식이 나와 점심식사의 즐거움도 추가되니 다행인가!) 지금은 포켓몬스터 카드에 빠져서 수제팩 양산에 힘쓰고 있는 그야말로 늑대소년이다.

자유로운 영혼의 아들에게 우리가 바라는 건,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 단 하나였다. 아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존중했다. 늘 바라보면 환하게 웃어주는 사이였다.


아무튼 죽지 않는 약을 개발하는 연구원이 되기 위해 아들은 겨울방학 내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수학예습을 하며 영어공부도 빼먹지 않고 있다. 그리고 강조한다. 약을 개발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공부한다고.

오늘은 새로운 고민에 휩싸여 자못 심각해진 아이가 말을 걸었다. 요지는 약을 개발하면 제일 처음 엄마에게 주려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나이가 많으니 할아버지에게 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단다. 그런데 약을 개발하면 제일 처음엔 쥐에게 실험을 해야 하는데 우리베리가(햄스터)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났다는 이야기.. 어떻게 사람들은 쥐에게 실험을 할 수 있냐. 번식력이 뛰어나고 인간과 유전자가 비슷한게 이유다. 하지만 너무 불쌍하다. 블라블라......


그렇다고 사람이 먼저 먹고 부작용에 대해 알아볼 순 없지 않냐, 임상실험은 위험한거라고 진지하게 응수했더니, 아이는 입을 앙 다물고 한 템포 쉬며 생각을 하는 기색이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그것도 연구해 볼래." 연구목록이 태산이로구나.

나는 먼 미래를 요원하다 생각하고 그저 웃고 있지만, 아이는 미래에 가닿는다. 과거와 미래도 현재인 듯 수평선을 거니는 듯하다. 아이를 통해 생각을 뛰어넘는 법을 배운다.

연한 잎이라 지켜보며 더 진해지길 기다렸지만, 실은 뿌리가 깊었다고. 색과 모양이 달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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