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닮은 아이

쌍꺼풀에 대한 열망

by 예담

"엄마, 나 몇 살 되면 쌍꺼풀수술 시켜줄 거야?"


몇 년 전부터 듣고 있는 아이의 푸념 섞인 질문이다. 딸은 아빠를 닮으면 잘 산다는 말도 쓰다 보니 고루하게 느껴진다. 처음엔 솔깃해져서 "아 진짜? 아빠 닮으면 좋은 거야?"라고 반색했지만 이내 시들해졌다. 뭘 어떻게 잘 산다는 건지, 보이지 않는 허상보단 당장의 예쁜 얼굴이 더 중한 나이가 되었으니.


"의 앤, 예쁜 얼굴이 주는 쾌감에는 한계가 있어. 네가 얼굴이 예쁜 사람보단 삶의 태도가 아름다운 사람, 유일한 사람이 되길 바라. 오래도록 유지되는 행복은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이뤄가는 과정에 있거든."


"하지만, 지금 너의 마음을 이해하고 존중해. 교문 앞을 통과할 때 눈이 커 보이려고 최대한 힘을 주고 치켜뜬 채 들어가는 너는 얼마나 귀여운지."


12살의 아이는 큰 눈과 또렷한 쌍꺼풀이 갖고 싶었다. 정성 들여 각도를 바꿔가며 셀카를 찍어 프로필에 올리는 아이의 불만은 '무쌍의 눈"이다.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은 엄마를 닮았다는 것도 거슬리고 억울하단 생각이 든다. 속쌍꺼풀이 있고 하얀 남동생의 얼굴이 부럽기도 하다. 아빠를 닮아서 얼굴이 작고 올망졸망 귀엽다고 하지만 진한 쌍꺼풀이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게 된다.





아이의 눈은 갸르스름하게 아담하고 코는 적당한 크기에 귀엽고 입술은 도톰하게 앙증맞다. 얼굴은 아빠를 닮아 작고 팔다리는 길쭉길쭉하다. (엄마피셜이라는 게 함정.)


사실 어른의 눈으로 본 아이들은 하나같이 얼마나 예쁜가. 아동복 cf에서나 나올법한 인형같이 생긴 아이들보다 놀이터에서 땀 흘리며 뛰어놀다 꼬질꼬질해진 아이들이 생기 가득 예뻐 보인다. 얼룩하나 없이 깨끗하고 빳빳한 옷을 불편히 입고 있는 아이보다 급식에 먹다 흘린 밥풀이 하나 말라붙어 있고, '오늘 카레 먹었노라!' 무언의 대화를 하고 있는 티셔츠의 앞섬이 인간적인 아이들이 귀엽다. 빡빡하게 짜인 학원스케줄에 맞춰 ai로봇처럼 같은 길을 걷는 아이들을 보면 기특하다가 짠하다. 가고 싶은 길이 있었을 텐데, 멈추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텐데, 오늘의 무용한 자유를 꿈꾸기도 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성실이 삶에서 최선의 길이라는데 동의하지만, 가끔의 일탈은 또 다른 발상의 전환이 되어 삶의 영감이 되기도 하는 법이니까.


행복은 스스로 창조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가득 찬 스케줄로 틈이 없으면 발상을 전환시키고 생각의 가지를 뻗을 주체성이 없어진다. 빈둥거리며 놀고, 지루함의 끝에 놀거리를 찾아내다가, 읽으며, 그리고, 쓸 여백의 시간이 아이들에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돌아와서, 아무튼! 외모에 관심이 생긴 열두 살의 아이는 '쌍꺼풀 없는 눈'이 불만이다. 아빠를 쏙 빼닮은 아이가 그런 말을 할 때면, 남편은 나사 풀린 사람처럼 허허 웃어댄다. 헤죽헤죽 웃다가 인자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보탠다. "아빠 닮아서 아빤 좋은데, 그래도 쌍꺼풀수술은 시켜줄게." 그럼 아이는 맘이 약해져 꼬리를 내리고 나긋나긋 아빠 곁으로 간다. "아니야. 나도 좋아. 아빠도 멋있어. 그냥 쌍꺼풀이 없어서...... 그렇지. 남자는 쌍꺼풀이 없는 게 더 멋지데. 엄마가. "


아이고, 순둥순둥 부녀지간... 마음씨도 닮았네!



고등학교 때 아침자습시간, 선생님이 지나가고 나면 교실 뒤 거울에 모인 몇몇 아이들은 쌍꺼풀 테이프를 붙이느라 부산스러웠다. 겁이 많아서 (혹, 아플까 봐...)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으나 관심 없진 않았다. 친구의 눈이 더 예뻐진 것 같진 않았는데 뭔가 도전적인 인상이 된 듯하여 시선을 끌었다. 이게 참 묘했다. 어색한 얼굴을 한참 마주하던 어느 날 시험기간에 쌍꺼풀테이프를 붙이지 않은 친구의 맨얼굴(?)을 조우하며 우리는 빵 터지곤 했다.

"뭔가 답답해졌어. 그런데 너무너무 귀엽다 너!"


이해하고, 공감하고, 비슷한 사연을 보태어 들려줄 수도 있다만... 그런데 나는 너의 부모라서 너의 작고 쌍꺼풀 없는 눈마저 가없이 예쁜 것을 어쩌니.

도돌이표 같은 질문과 답이 반복되다가 우연히 떠오른 엉뚱한 생각이, 생각지도 못하게 아이를 안심시켰다. 남편의 여동생 고모였다. 아빠와 닮은 아이는 고모와도 은근히 닮아있었다. 고모는 화려했다. 화장도 즐기지 않고 단정한 옷만 입는 수수한 엄마에 비해, 고모는 손톱부터 발끝까지 늘 반짝거려 아이의 시선에 닿았다. 그 고모는 쌍꺼풀 수술을 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보톡스도 맞으며 리를 한다네.


카톡프로필을 보다 문득 든 생각에, 아이에게 고모 이야기를 꺼내었다.

"고모는 아빠랑 닮았고, 너랑도 좀 닮았잖아. 근데 고모는 쌍꺼풀 있고 눈이 크지?"

"응. 고모는 쌍꺼풀수술 한 거잖아. 아빠가 말해줬는데. "

"맞아. 어른이 돼서 했데. 그러면 너는 나중에 쌍꺼풀 수술하면 더 예뻐지겠네. 지금도 예쁘니깐."


아이가 빙긋 웃는다. 와 생각지도 못한 말간 웃음이다. 뭔가 해소가 된 듯한 표정이랄까! 아이를 납득시키기 위해선 허상이 아닌 실제가 필요했다. 예쁘다는 말을 백만 번 천만번 했는데 이러기냐... 스무 살이 되면 쌍꺼풀을 해주기로 약속했다. 그전에 마음이 바뀐다면 좋겠지만.


언제나 나를 긍정해 주는 너로 인해 내가 나의 가치를 존중하게 되었듯이, 엄마도 언제나 너를 긍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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