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이 짙은 한 권의 책

나만의 케렌시아

by 예담


나만의 케렌시아.

소소하지만 나를 지탱하는 그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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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좋은 책이 주는 감흥.


책을 읽는다. 음식은 편식을 하는데 책은 모든 장르를 넘나들며 닥치는 대로 읽는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든 감성을 자극시키고 이성을 바로 잡는다. 마른 손끝에 닿이는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한 장 한 장 넘기는 그 바스락 거림도 좋다. 샤워를 하고 난 뒤 즐기는 책맥이 진리다. 좋은 책을 발견하면 더없이 황홀해진다. 아껴서 읽고 싶은 작가의 책들도 있다. 어렸을 때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비밀]을 수없이 읽으며 가나초콜릿을 조금씩 입안에 넣고 음미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 책을 읽기 전에 미리 초콜릿을 사 왔다. 조심스레 뜯고 글자와 함께 음미했었던 그 달달함을 잊을 수 없다. 그보다 더 맛있는 초콜릿은 먹어본 적이 없다. 나에게 초콜릿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비밀이라는 책과 함께였다. 글자 없이 책 없이 스토리 없이 먹는 초콜릿은 그저 그랬다. 이야기와 함께하면 뭐든 제값보다 훨씬 근사해졌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었다.


가장 관심 있는 인문도서를 즐겨 읽고,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 육아서적을 읽고, 그러다 내가 모자라다 생각이 들면 에세이를 읽었다. 쳇바퀴도는 일상이 답답할 때면 소설을 읽으며 낯선 세상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헛헛했던 마음을 어떤 한 문장에 위로받기도 했다. 백 마디의 말보다 한 줄의 글이 좋다. 공기 속에 부서져 없어지는 말보다 꾹꾹 눌러 담아서 적은 글이 늘 더 오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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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제7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인 심윤경 작가의 책은, 1980년대를 살아가는 어린 동구의 시선을 따라 그 시절과 한가족, 아니 어쩌면 우리네 모두의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동구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열 권의 육아서적보다 제대로 된 소설 한 권이 때론 더 깊은 울림과 깨우침을 준다. 그것은 나를 향한 가르침이 아닌, 아이의 시선으로 보는 어른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설이를 읽으며 느꼈던 그 애환. 그래서 단박에 작가에 대해 검색해보고 다른 책들도 주문을 했더랬다. 촉이 틀리지 않았음에 희열을 느꼈다. 아릿하게 저려오는 마음 깊은 곳의 무언가를 표현할 길이 없음은, 우리 모두에게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나에게 존재했던 아름다운 정원과 황금빛 깃털에 대해 가만히 생각을 더듬어본다.



이 세상 선생님들뿐 아니라 매일 아이와 마주하는 모든 이들, 그리고 나에게!

작은 아이들의 보이지 않고 말하지 않는 감정들을 들여다보고 가만가만 매만져줘요. 혹시 오늘 그러지 못했다면 내일 두번하면 되요. 다만, 고요한 밤의 다짐을 한낮의 소란함속에 잊지 않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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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랑하는 이유란 그런 것. 기대하며 읽고, 다시 그 기대를 보란듯이 뛰어넘는 마음의 울림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나의 간지럽고 아픈 부분을 이렇게나 간결하게 짚어 준 사람이 내 인생에 또 있었으랴. 공부 못하는 죄를 추궁당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 못하는 서러움을 이해받는 것은 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커튼을 젖히고 무대 뒤편으로 가보면 그곳에는 아직 어리고 미숙한 영주, 생각 깊고 마음 넓은 동구가 있었다. 선생님이 지금 처음으로, 어두운 무대 뒤편에 쪼그리고 있는 착하고 멋진 나를 무대 위로 불러내려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 순간 선생님의 손 안에서 선생님이 원하는 바로 그대로 순식간에 모양을 바꿀 수 있는 한 덩이 찰흙이 되기만을 열망했다.


남을 이해하려면 네가 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봐야 하거든. 어렵더라도 그 사람을 위해서 깊이깊이 생각해 봐야 한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거야.


아버지와 엄마는 돈을 많이 벌고 나를 잘 키우자는 희망이 있다. 나는 나중에 박 선생님을 꼭 다시 만나자는 희망이 있다. 하지만 할머니의 몫으로 남은 희망은 무엇일까? 할머니에게 손을 내밀고, 노래를 불러주고, 말벗이 되어주고, 나들이를 함께 나가던 영주가 떠난 후 할머니에게는 어떤 희망이 남았을까?


우리 가족들은 마치 신호등이 고장 난 네 갈래 길에 각각 서 있는 당황한 사람들처럼, 서로 말을 걸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짐작하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로 바라만 보게 되었다. 우리의 소통이 엉키지 않도록 요술 같은 방법으로 누군가는 기다리게 하고, 누군가는 직진하게 하고, 누군가는 좌회전하도록 지도하던 우리의 푸른 신호등은 영원히 잠들어 버렸다. 우리는 신호등 없이 교차로를 지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그리움은 순식간에 내 안을 가득 메우고도 자라기를 멈추지 않아 좁은 내 몸뚱이 안에서 사납게 뒤채며 나갈 곳을 찾더니, 마침내 나의 땀구멍 하나하나마다 황금빛 깃털이 되어 쏟아져 나왔다. 내 가슴팍에 맺힌 황금빛 깃털, 내 온몸을 휘감은 주홍빛 능소화. 나는 한 번도 땅에 묶여 있었던 일이 없는 것처럼 박 선생님이 떠나신 어둑한 하늘 끝 어디쯤을 향해 가볍게 후루룩 날아올랐다.





나의 시선과 발걸음으로 오늘의 행복을 마주한다.

그것은 가령 살에 닿는 선선한 공기의 느낌일 수도 있고, 아이의 웃음, 모두 잠든 고요한 밤, 남편의 작은 배려,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 기대치 않고 읽었는데 마음이 번쩍 뜨이는 좋은 책, 서점의 냄새, 뽀송뽀송한 이불, 샤워 후 맥주 한 모금, 몰래 보는 아이의 일기장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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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좋은 순간들만 마주하지 않습니다. 폭죽 같은 행복이 늘 꿈처럼 펑펑 터지지도 않지요.


다만 손에 한 움큼 쥐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작고 고운 행복들은 매 순간 있습니다.

마주하는 나의 작고 소박한 행복들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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