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어느 맑은 날

호의를 베푸는 사람

by 예담

일곱 살 아들은 고깔 모양 초콜릿을 한 봉지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유치원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좁은 엘리베이터 안 꼬맹이들의 시선이 초콜릿에 반짝이며 닿였다. 아들이 봉지를 열고 주섬주섬 초콜릿을 꺼낸다. 잠깐만, 이라고 말하고 물었다. "이거 아이들 줘도 될까요?" 흔쾌히 고맙다는 긍정의 대답을 듣곤 아이에게 끄덕이며 눈짓했다. 아이는 방긋 웃으며 초콜릿을 꺼내어 하나씩 나누어준다. 은박 속에 숨어있던 초콜릿을 입안 가득 머금은 아이들의 표정이 한낮의 바다에 햇살과 함께 부서지는 파도 같았다.



6살에는 유치원에서 멜로디언에 손이 닿질 않아 까치발 하는 여자 친구를 보고, 자기가 가서 꺼내 주었다고 했다. 마트에 다녀올 때면 꼭 뭐라도 들어주겠노라 큰소리를 치곤 하나라도 받아 든다. 바쁜 아빠 때문에 여행 계획이 자꾸 어그러졌고 우리끼리 가자고 하니 안된단다. 왜? 집에 들어온 아빠가 외로울 것 같다고. 집에서 우리가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나 뭐라나.


나이와 공감능력은 비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이만큼 경험하며 쌓였을 법한 공감과 배려 칸은 먼지가 뽀얗다. 자기애가 그 위를 덮었다. 어른이 될수록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애쓴다. 이유 없는 호의를 의심하고, 받은 호의는 무게를 재어서 갚아준다. 나쁜 사람이 되기도 싫고, 좋은 사람이 되기도 부담스럽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좋아하는 같은 반 남자 친구가 있었다. 일곱 살에 학교에 입학했던 나는 같은 반 친구들보다 한 뼘만큼 작아서 늘 앞줄에 앉았는데,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얼추 따라잡은 키로 슬금슬금 뒷자리로 갔을 때였나. 앞자리에 앉을 때는 선생님만 보였는데 중간 쯔음 지난 자리에 앉으니 많은 것이 보인다. 흔들흔들 집중 못하고 몸을 연신 꼬아대는 친구의 딋통수, 코딱지를 파곤 책상 밑에 붙여두는 친구의 꼬질함, 꾸벅꾸벅 기가 막히게 잘도 조는 친구,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빛의 속도로 손을 들며 발표도 잘하는 친구, 선생님이 돌아서 칠판에 판서를 할 때면 장난치고 시시덕 거리는 친구들, 그중 가장 시선이 오래 머무른 곳은 그 친구였다. 키도 크고, 운동도 잘하고,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잘 웃고, (쓰라면 더 쓸 수도 있겠지만...) 발표마저 잘했다. 그야말로 완벽해 보여 이질감마저 들었던.


심장이 쿵쿵거리기 시작했던 건 주전자 때문이었다. 번호별로 돌아가며 물당번을 정해놓고, 운동장 옆 지하수가 나오는 동그란 수돗가에 노오란 양은 주전자를 들고 가서 가득히 물을 담아서 교실 뒤에 두는 것이 물당번의 역할이었다. 우리 반은 4층이었고 물을 한가득 담은 황금색 주전자는 무거웠다.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낑낑대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층과 이층 사이 계단을 오르고 있을 때 그 친구가 나타났다. 아무 말도 없이 주전자를 휙 가져가더니 들고 올라간다. 무거울 텐데, 한걸음 한걸음 그렇게 씩씩할 수가 없다. (뭐지? 친하지도 않은데 왜 저래?) 급작스런 호의에 멍하게 있다가 뒤따라서 허겁지겁 교실로 갔더니 주전자는 제 위치에 가지런히 놓여있고, 그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자리에 가있다.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도 여유가 있는 자에겐 한결 더 쉬운 법, 얼굴이 빨개져서는 단 한마디도 못했다.


그때부터 시나브로 그 친구를 좋아했다. 학년이 바뀌고 다른 반이 되어도, 중학생이 되어 다른 학교를 다닐 때도 계속 좋아했다. 고맙다는 말을 삼키고 그 친구가 말이라도 걸면 되려 샐쭉하게 받고 피해버렸으면서, 마음으론 늘 응원했다. 그 친구의 소식을 들을 때면 흘려듣는 척 발연기를 하면서, 집중하고 귀를 쫑긋 세웠다. (영어 듣기 평가를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호의를 받고 마음이 동했다. 그것은 찰나였고 스쳐 지나갔지만 마음은 언제나 시공간을 넘어선다. 사랑이 많은 이는 그 사랑을 자기도 모르게 나누며 산다. 여전히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 좋다.


+ 여담! [사랑의 불시착] 드라마에서 (현빈) 리정혁 씨가 백화점 문을 열고 나오며,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차마 손을 놓지 못하고 계속 잡아주고 있던 장면이 인상 깊었다. 작지만 선명한 호의는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한다. 이유 없이 기분 좋은 어느 맑은 날처럼.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리. 뚜렷하지 않은 것을 제대로 보려고 조금씩 다가가는 일. 하지만 그 무엇도 내가 다가가지 않으면 쉽게 다가오지 않으리. 당신이 움직일 수 없다면 내가 가야 하리. 그 일은 희생이 아니라 희망이리. 무모한 일이 아니라 무한한 일이리. 어느 지독한 여름날에 문득 오늘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저지른 이 무모함이 따뜻한 한 조각의 기억이 될 수 있을까?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변종모 에세이
미국 체로키족의 나이 많은 추장이 손녀에게 말했다.
"우리 마음속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살고 있단다. 그 둘은 항상 싸우곤 하지. 한 마리는 나쁜 늑대야.
분노, 질투, 슬픔, 후회, 욕심, 오만, 자기 연민, 거짓, 허영, 헛된 자존심이지.
다른 한 마리는 착한 늑대란다. 기쁨, 사랑, 희망, 친절함, 겸손, 동정, 긍정, 너그러움과 믿음이야."

마음속 두 마리의 늑대 이야기를 들은 손녀가 물었다. "그럼 그중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
추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더 많은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기게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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