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괴리
크게 오픈한 프랜차이즈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갔다. 디자이너와 의견을 나누고, 머리를 감고 나와 가운을 추스르며 자리에 앉았는데, "선생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으며 잡지에 눈을 붙이려는데 내 앞으로 누군가 걸어왔다. "선생님"이라는 하이톤의 생기 가득한 목소리가 나를 향했다.
어라! 낯이 익었다.
대답을 해야 하는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기억을 거스르며 훑고 있을 때, 구원의 종이 울린다.
"선생님! 저 J이요. 저 중학교 때 선생님한테 영어 배웠잖아요. 선생님! 저희 오빠도 같이 배웠잖아요."
"아! 으응! 알지. 너무 반갑다. 이렇게나 많이 컸구나. 부모님도 잘 계시지?"
"네. 선생님 다 잘 지내요. 선생님 아기도 많이 컸겠네요? 그때 임신 중이셨잖아요."
"그러게. 이제 초등학생이야. 시간이 이렇게 빠르네. J는 똑같이 이쁘네."
"저 선생님한테 영어 배워서 그때 문법도 쉽게 배웠어요! 진짜로 영어는 선생님 덕분에 잘 배웠어요!"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음에도 어색함 하나 없이, 당차고 야무지게 말도 잘한다. 네가 나보다 낫구나. 눈도 잘 맞추어가며 어찌나 조리 있게 기억을 찾아주던지, 살짝 진땀이 났다.
임신 중이었을 때 가르치던 아이였다. 입덧이 매우 심해서 정신력으로 버티던 시기이기도 했다. 수업을 하다 문제풀이를 시켜놓고 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가 게워냈던 적도 수차례였다. 남자아이들이 땀냄새를 풍기며 들어와도 입덧이 올라왔으니 배만 뽈록해지고 팔다리는 앙상해졌다. 레몬수에 얼음을 가득 타 놓고 수시로 마셨다. 와그작와그작 얼음을 씹으며 입덧을 달랬다. 그마저 미세한 물 냄새가 느껴지면 무용지물이었지만.
늦여름으로 기억한다. J는 수업시간에 늦었고, 오자마자 굳은 표정으로 대충 인사를 하곤 책상에 반쯤 기댔다. 수업을 들으며 딴생각을 하는 듯 보여서 무슨 일이 있나 물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래도 공부는 해야겠거니 해서 바른 자세로 수업을 듣도록 했고, J는 잘 따랐다. 평소에도 감정의 변화가 크게 눈에 띄는 아이였다. 밝을 때는 한없이 명랑하고, 가라앉을 때는 한마디 말도 안 하는 아이.
그 나이 때, 사춘기가 온 중학생 아이들은 대부분 그런 성향이고 그중 조금 더 예민한 아이였달까.
80% 이상 군인가족들이 거주하는 아파트 일층에서 공부방을 운영 중이었다. 다니는 아이들은 한 명 빼고 모두 군인가족. J는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갔고, 연이어 중3 수업 중이었다. 공부방을 다니는 아이들은 비번을 누르고 들어왔기에 벨을 누르는 일은 흔치 않았는데, 수업 중 별안간 벨이 울렸다. 가끔 비번을 잊고 벨을 누르는 아이들이 있곤 했기에 누군지 보지도 않고 문을 열었다. (요즘 같은 세상엔 상상할 수도 없지만, 그땐 그랬었다. 그래 봤자 보이스 피싱당하는 세상이긴 매한가지였지만. 각박함의 레벨은 지금보다 낮았달까.)
중문 소리가 들리질 않아 나가 보았더니 현관에 웬 남자가 서 있다. 그것도 표정이 심상치 않은. 얼굴과 몸짓에 기분 나쁨을 뿜어내고 있는 남자 어른. 순간 오소소 소름이 돋았고, 본능적으로 배를 한 손으로 감쌌다. 교실문부터 닫고, 최대한 담담하게 누구신지 용무를 물었다.
"나 J 아빱니다. J가 집에 오자마자 울어서 왜 우냐고 물었더니 방문을 쾅 닫습니다. 공부방에서 공부하고 들어왔는데 애가 왜 웁니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
크고 날선 목소리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며, 화를 내는 남자는 처음 본터라 겁이 나고 당황했지만, 손에 힘을 주고 그 힘이 목소리에 전해지길 바라며 답했다.
"아버님, 안녕하세요. 제가 지금 수업 중이라 긴 시간 말씀드릴 순 없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공부방에서는 별일이 없었습니다. 기분이 썩 좋지 않게 들어온 터라 신경이 쓰이긴 했는데 수업을 해야 하기에 자세한 건 묻지 못했습니다. "
"애가 우는 이유를 나한테 말을 안 하는데 왜 그러냐고요? 선생님이 물어봤으면 됐는데 왜 자초지종을 안 묻고 수업만 하고 보내요? "
"아버님, 저도 그랬으면 했는데, 수업은 J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함께 공부하는 다른 친구들의 시간을 뺏을 수가 없습니다. 그 나이 때 여자아이들은 친구들이 있을 때 자기 얘기하는 걸 꺼리기도 하고요. 내일 수업 전에 잘 물어보도록 할게요. "
수업 중이라 말씀을 드렸건만 막무가내였다. 턱 하니 서서 나갈 기세가 없다. 들으러 왔던 말을 못 들었으니, 아직 나갈 수 없다는 표정 같다. 아무 말도 없이 쳐다만 보고 서 계시는데 이건 뭐!
잘못한 게 없기에 죄송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분은 칼을 빼서 달려왔으니 호박이라도 찔러야 속이 풀릴 것 같다. 내가 호박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이젠 나도 화가 난다. 수업 중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게 무슨 실례인가.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어도 표정은 미온수를 유지한 채 예의를 지키는 것의 이름이 스트레스였던가?
어쨌거나 저쨌거나 수업을 하러 들어가야 했기에, 수그리고 노여움을 풀어 보내드려야겠다 싶었다.
" 아버님 죄송해요. 제가 더 챙겼어야 했는데, 제 불찰입니다. "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조아리자마자, 보란 듯이 큰소리를 내신다. 몹시 역정을 내시다 말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신다.
아! 어쩌면 그런 마음이었을까. 퇴근하고 왔는데 아무 말도 없이 방문을 쾅 닫은 딸이 야속했고, 그것을 풀 상대가 필요했는데 과녁이 일층에 있었던 터. 젊은 여선생님.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고 의연한 듯 수업을 했다. 떨림을 숨기려 목소리를 드높였다. 나중에 J의 어머니가 너무 죄송하다며 어쩔 줄 몰라하셨지만 그마저도 부담이 되었다. 뒤늦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남편은 펄쩍 뛰며 그 아이는 내보내라고 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자의로 그만두지 않는 한, 내가 먼저 말할 명분은 없다.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말 것 같았다. 그 뒤로 그런 일은 없었으나 J의 표정 속에 불안한 기색이 보일 때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선생님 죄송해요. 저 계속 공부방 다니고 싶어요. 아빠는 그럴 거면 학원은 전부 다 그만두라고 했는데 저는 다니고 싶어요. 우리 아빠는 원래 그래요. 화만 내요. 짜증 나요. 그래서 집에 가면 방문을 닫는데 그럼 더 화를 내고요. 이해도 못할 거면서 다 알려고 하고요. 그냥 짜증 나요."
아이에게 그날 무슨 일이 있어서 기분이 좋지 않았느냐고 다시 묻진 않았다. 기분 나쁜 날도 있을 수 있으니까.
아이의 모든 걸 알아야 할 권리가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있을까? 혼자 있고 싶은 날도 있고, 괜스레 마음이 들떠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가는 날도 있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짜증이 날 수도 있고 마음이 상할 수도 있지. 그럴 때 시간의 흐름을 따라 지나가면, 잔잔해질 때도 있다.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일이 일상엔 얼마나 무수하던가. 하나하나 붙들고 "이건 왜, 저건 왜" 따지고 고치려 들지 않았으면...
사춘기가 된 아이의 방문을 노크하고 들어가듯이 아이의 마음도 노크할 수 있었으면 한다.
며칠 전에 카톡으로 배달된 브런치 글을 인상 깊게 읽었다. "내가 쭈굴쭈굴하면 상대방은 적반하장 당당함의 역공을 펼칠 수도 있다. 선을 넘는 사람에게 구구절절 중언부언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없다. " 글에 빠져 한참을 중얼중얼 소리까지 내어 읽고 보니, 작가는 [포스트잇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의 저자였다.
상대의 마음을 애써 이해하려 드느라, 나의 마음은 뒤로 젖혀두기 일쑤였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됐어. (되긴 뭐가 돼!)
아무튼 긴 시간이 지나고 만난 아이는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담아 나에게 전했다. 가만히 가마니처럼 꾸역꾸역 넘겨버린 쓴 기억 속의 제자였는데, 아이의 기억 속엔 고마운 선생님이었다니. 그때 부당함을 어필하며 조목조목 함께 소리를 높이지 않아 다행이라고. '별 내색 없이 아이를 가르쳤던 것도 잘했어.'
예상 밖의 우연으로 인해 오래전 나를 다시 토닥일 수 있었다. 기쁘게 알아보고 감사함을 전하는 제자 덕분에, 가둬두었던 하나의 기억은 다시 추억으로 봉인 해제되었다.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