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믿음이 준 대가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터라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은, 그 해 봄.
공부방을 운영 중이었고 꽤 순탄하게 항해 중이었다. 출산 일주일 전까지 수업을 했고, 병원에서의 일주일간은(수술을 한지라 입원기간이 길었다.) 아르바이트 선생님에게 일을 전담해놓고 매일 출결과 수업 및 상담에 대해 통화하며 피드백했다. 산후조리원에 가지 않은 채 아이를 안고 집으로 와서 일주일 정도 더 쉬었다.(수업 외의 부가적인 일들을 처리하며.)
다시 일을 시작했다. 모유수유를 하기 위해 냉장실로 냉동실로 날짜순으로 라벨지를 붙여 저장하고, 부어서 뭉친 젖몸살에도 나름 애썼으나 쉽지 않았다. 모유는 줄어갔고, 시간은 서투름을 쫓았으며 조바심을 불러왔다. 가득 찬 하루 속에 혹여 놓치는 게 있을까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애썼다.
돌아보니 문제는 그것이었을지도. 잰걸음으로 달려도 찰랑찰랑 쏟아지지 않을 정도로만 채우면 좋았으련만. 가득 담고 뛰다 보니 흘러넘쳤고 다시 담기 위해 분주한 날들이 이어졌음을 그때는 몰랐다.
언제나 뒤늦게 알게 되는 삶의 회한이랄까. 잘 해내기 위해 동분서주했으며, 호기롭게 일을 벌이고 일사천리로 달렸다.
그래머 수업 중, 설명을 하고 문제풀이를 시켜놓은 뒤, 잠시 숨을 돌릴 때였다. 칠판 옆 책상 노트북이 깜박였다. 네이트온! (그 시절의 sns) 남편에게서 온 메신저다. 이 시간에 올 일이 없을 텐데... 무슨 급한일이 있나 싶어, 잠시 들여다보았을 때 나는 이미 삼켜졌을 터. 뜬금없이? 갑자기? 다른 계좌로 입금을 하라는 남편이 의아했지만, 수업 중인 나는 통화로 확인할 베포도 지체할 여유도 없었다. (같은 상황에 지금의 나였다면 몇 번이고 확인했을 텐데, 겨우 스물아홉이었던 그때의 나는 유연하지 못했다. 앞으로 나아감에 급급했다.)
급하다는 남편의 말에 '무슨 일이지?' 갸우뚱하며 일단 지체 없이 이체를 했다. 수업이 끝난 뒤 물어봐야지 싶었다.
삼 백 만 원!
입금을 하자마자 네이트온이 울린다. 고맙다고...
늦은 봄날의 미지근한 공기가 돌연 차가워졌다. 목덜미가 서늘했다. 고맙다는 말을 굳이 메신저로 할 사이는 아니잖아. (아니다. 정말 고마웠나 보지 뭐.) 싸함을 감지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올라오는 대화창.
미안한데, 이백 더 보내줄 수 있냐고.
..........
아, 나는 호구였구나. 당 했 다.
당황함을 애써 누르며 친구한테 전화를 했다. 거래하던 은행에서 근무하는 동창에게 전화를 했더니 일단 지급정지를 시키면 된다나 뭐라나. 횟집에서 건져 올린 물고기마냥 펄떡이던 심장이 친구의 한마디에 휴우, 안심하며 숨을 돌린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확인사살을 당한다. 벌써 빼갔단다.
경찰에 신고를 하고 여차저차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돈도 돈이지만, 것보다 괘씸하고 분했다. 사람의 믿음을 저렇게 이용해 먹다니! 고맙다는 말을 서늘하게 만들다니! 생각날 때마다 화가 치밀었다. 남편은 말했다. 괜히 경찰서 가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그만 신경 쓰고 잊으라고. 어차피 돈은 찾을 수 없다고. 인생 경험한 셈 치라고 허허 웃어대는 우리 남편! 정말이지, 내가 그런 당신이니까 두말 안 하고 돈을 보냈지!
믿으니까.
그는 단 한마디의 책망도 하지 않았다. 멍청한 실수가 그의 입에선 인생수업이라는 말로 바뀌어 나왔다.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려." "다음부터는 실수하지 않으면 돼." "괜찮아." 그러면서 실없이 웃었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며 웃어댔다.
뭐지? 남편의 그런 면을 몰랐던 건 아니었지만 종종 생경함을 느끼곤 했다.
우리가 만나고 연애 중이었을 때는 서로의 모든 면을 흡수해 이해하고도 뽀송했지만, 사랑이 일상이 되고 익숙해진 어느 지친 하루엔 그 익숙함을 무기 삼아 축축해진 솜처럼 처진 무게를 투덜거릴 수도 있었다.
대단한 무엇을 보고 감흥하는 것은 쉬이 지나가고 말지만, 작지만 인상 깊은 다름을 보게 될 때 어떤 특별함을 갖게 된다. 말하자면 사소하고도 중요한 삶의 접속사 같은 것.
이제는 작은 에피소드로 추억할 만큼 작아져버린 보이스피싱 사건? 이 떠오를 때면, 섣부른 믿음이 준 대가에 대한 자각과 함께 나의 믿음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남편은 인생 수업한 셈 잊으라고 했으나, 나에겐 어쩌면 남편 수업이었던 셈. 우리가 함께하며 늘 화창한 날만 맞을 순 없을 테니, 궂은날도 이렇게 낙관적으로 넘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오늘도 내일도 함께 걸을 수 있겠다.
그리고 여전히 한결같은 나의 사람을 마주한다.
결혼이란 오래 같이 살아서 생애를 이루는 것인데, 힘들 때도 꾸역꾸역 살아내려면 사랑보다도 연민이 더 소중한 동력이 된다. 연민은 서로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다. 연민에는 이기심이 들어있지 않다. 사랑은 단거리이고 연민은 장거리이다. 빚쟁이처럼 사랑을 내놓으라고 닦달하지 말고 서로를 가엾이 여기면서 살아라. 김훈 산문 [연필로 쓰기]
알 수 없는 세월이 흘렀고, 알 수 없는 세월이 도래할 것이다. 중요한 건 첫인상이 아니다. 지금 내가 당신을 어떤 마음으로 그리고 있는가, 그게 더 중요하다.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됐을까' 중얼거리며, 도토리를 가만히 만져보는 시간.
정말 소중한 건 물질적 가치로 쉬이 교환이 안 된다. 그런 건 마음과 시간을 들여 찬찬히 가꾸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우리가 바라는 행복은 어디에서도 팔지 않는다. 진짜 가난한 사람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만 가진 자인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결혼 11년 차, 같은 상황이 다시 온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