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출장
"엄마 아빠는 어디쪄? 깜깜한데 왜 안 와? "
"아빠 보고 싶어?"
"응! 깜깜해지면 아빠는 집에 와야 해. 보고찌퍼. "
"아빠는 두바이에 가셨어. 우리 어제 아빠랑 안녕! 인사했잖아. 거기가 어디냐면..."
아이는 태어났고 남편은 바빴다. 잦은 출장과 늦은 퇴근이 반복되며 본의 아니게 육아에 멀어지게 된 남편은 주말이 되면 호텔도 예약하고, 텐트도 부지런히 치며, 함께 할 놀거리를 찾아 나름의 선방을 했다. 그마저도 주말에 라운딩을 가는 날이면 거품이 되어버렸지만 뭐 어쩌겠는가. 짬밥이 안되니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음을 말하지 않아도 이해했다.
그의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동안 나의 상황은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몰랐다. 허둥지둥 수습만 하다가 하루를 보내는 날이 허다했다. 아이가 잠들면 여유 있게 커피 한잔을 하고 싶었는데 속이 쓰려서 두유를 마시며 꿀 같은 시간에 무얼 할까 들떠선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아이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며 이불을 덮어주다 까무룩 잠이 들어버리곤 했다.
아빠와 빠빠이 인사를 나누고도 다음날 밤이면 아빠를 찾을 만큼 아이는 어렸다. 두밤, 세밤, 네 밤, 다섯 밤, 아빠가 오는 날을 헤아리며 숫자에 대한 감을 익혔으려나. 숫자 색칠공부 백날 해봐야 한밤, 두밤, 세밤 손꼽아 기다리는 진심에 못 당한다. 암요. 두바이, 홍콩, 미국, 중국... 그리고 늦은 퇴근.
아빠 빠빠이와 함께 아이는 쑥쑥 자랐다.
돌치레를 하며 아이가 처음 아프던 날, 남편은 홍콩에 있었다. 원체 겁쟁이인 데다가 처음이라 더욱 당황했던 나는 매일 밤 긴장을 끌어안고 선잠에 들었다 깨기를 반복했다. 그의 부재에 익숙해지고 있었지만 멘탈은 유리처럼 얇아서 부서지고, 부는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렸다.
주먹을 꽉 쥐고 마음을 강하게 먹어도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만나면 바사삭 멘탈이 되었다. 혼자라면 곧 그치고야 마는 소나기일 뿐이겠지만 아이와 함께일 땐 언제 그칠지, 안 그치면 여기서 어떻게 할지, 마음에 수많은 가지가 뻗어나가 바람에 흔들렸다.
언젠가 남편이 그런 말을 했다. 신혼이었을 때 너는 늘 좋았고 어설퍼서 항상 웃겼다고. 아이를 키우며 너는 조금 날카로워졌다는 말을 했다. 예민한 구석이 보일 때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지금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몇 년이 지난 지금의 너는 편하고 가벼워 보인다고 했다.
함께라서 편안하고 든든한 날들이 있기에 혼자 비를 만난 날도 툭툭 털어낼 수 있었다.
펼쳐진 마음과 접어버린 마음들이 있다. 그 모든 굴곡들이 내 삶의 나이테가 되어간다. 지금 여기. 작고 깊은 모든 순간, 여전히 사랑을 한다. 어설프지만 진하게.
아무것도 아닌데 전부인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바삭거렸던 멘탈을 책 사이에 부지런히 꽂아둔다.
어쩌면 내가 수많은 책을 사고 읽는 것은 강해지고 싶어서 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