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지 못한 마음들
초코파이는 정이라는 문구가 머릿속에 콕 박혀있으니 광고의 효과란 그야말로 어마 무시하다. 따뜻한 온기를 전하고 싶을 때, 쉽고 부담없이 마음을 전하라는 의도는 정확히 사람들의 심중을 명중했다. 바쁜 현대인이면서 동시에 감성과 이성이 공존하는 사람인지라 바쁜 생활중에서도 우리는 마음을 전하고 싶으니까.시간과 정성을 기울여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은 크게 부풀었다가 이내 바쁜 일상에 매몰되어버렸다. 전하고 싶은 마음은 서서히 부풀었다가 뻥하고 터져버리거나, 시간의 흐름속에 쪼글쪼글 작아져버렸다. 타이밍을 맞추어 전해야 오롯이 동글동글한 마음이 전해졌다. 지금은 바쁘니까. 내일로. 다음으로. 미루고야 말지만 그러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고 보면 물질적으로 받은 고마움은 늦지 않게 답하게 된다. 명확한 사유가 있으니 적접적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보이지 않는 배려, 진심으로 건네받은 마음들은 따뜻함에 꼭 쥐고 한참을 음미했다. 명확하지 않은 고마움은 훨씬 더 깊어서 조심스럽다. 가령 어두운 동굴에 하나의 빛을 밝히고 걷는 심정처럼, 귀하게 들고 있다가 동굴 밖을 빠져나가면 환한 빛들에 숨겨져 고마움도 가방 속에 넣어버리곤 했다. 눈이 부셨다.
생각해보면 고마운 이들은 참 많기도 하지. 내가 주었던 고마움은 무엇이 있었나 반문해보기도 한다. 낮이라면 차 한잔을 가져와 느리게 마시면서, 밤이라면 와인 한잔을 앞에 두고 생각을 느리게 거슬러본다. (빠르게 마셔야 제맛인 맥주는 어울리지 않고, 소주는 사람과 마시는 술이지. 보드카는 생각을 다른 곳으로 새도록 만들 수 있고, 막걸리는 배가 불러서 졸리게 하니까. 샴페인도 좋겠군! 아, 술 글 쓰고 싶다. 손이 피아노 치듯 춤을 추네 그려. 흐흐 )
결혼 12년 차, 일주일 내내 땅을 적셨던 비가 그치고 오랜만에 햇살이 거실 가득히 들어온 날,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남편에게 받았던 고마움을 되새겨보았다.
첫째가 세 살이 될 무렵, 부모님과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갔다. 꽤 길게 일정을 잡고 떠난 터라 초반의 넘치는 에너지와 끊이지 않는 웃음은 점점 옅어지다가 여행의 끝무렵에는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아이의 첫 제주도 여행이었기에 많은 걸 보여주고 싶었기도 했고, 부모님이 가면 좋을 곳들도 다 가볼 기세로 덤볐던 것이 화근이었다. 일정이 과했다.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저녁이 되면 녹초가 되었다. 처음이라 몰랐다. 지금이라면 관광지는 하루에 두 곳 정도로 잡고 느긋하게 즐길 텐데, 그때는 워킹맘으로 긴 육아 끝에 주어진 천금 같은 휴가인지라 아이처럼 천지분간을 못했다.
다음날이면 돌아가는 일정의 마지막 날이었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리조트에서 피곤함이 몰려들어 예민해졌다. 아이를 씻기고 지쳐서 기대앉아있는 나에게 엄마는 한마디를 했다. 그게 한마디면 좋았을 테고, 나도 늘 그랬듯 웃으며 넘겼으면 무탈했을 텐데... 언제나 부지런하고 야무진 엄마의 눈에 비치는 나는 너무나 미약해서, 엄마는 (애정이 담겼을) 잔소리에 잔소리를 보태기 시작했고 평소 같으면 "네" 하며 흘려들었을 사소한 말들에 찔려 서운함이 밀려왔다. 울 일 까진 아닌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서 어쩔줄 몰랐다. 엉망인 감정을 추스리려 밖으로 나갔다. 그 와중에 아이가 놀랄까 봐 과자 사러 가자며 아이를 안았다.
로비로 따라 나온 남편이 나를 토닥였다. 들어가자고 구슬리나 했더니 프런트로 가서 얘기를 나눈다. 다가오는 남편이 아무일도 없었단듯이 빙긋 웃으며 등을 떠밀며 걷는다. 로비에 사람도 많은데 괜히 표정 관리하느라 애쓰지 말고 가자한다.
헐!
정신이 번뜩 든다.
설마?
이 사람 룸을 하나 더 잡았다. 그냥 맘 추스르고 들어가면 될 일을, 룸을 하나 더 잡다니. 것도 리조트라 다 대형평수만 남아있었는데... 멍하게 이끌려 따라가며 절로 내가 잘못했다 빌고 싶었다. 정말이지 요즘 말대로. "이게 머선 129?!!!!!!"
커다란 룸에 들어가니 말문이 막힌다. 안고 있던 아이를 내려두니 또 새로운 곳이라고 탐색하기 바쁘다. 어이없다는 눈으로 쳐다보는 나에게 그는 말했다.
"괜찮아. 그럴 때도 있어."
한마디에 눈물이 다시 또르르 흐르자 남편이 토닥이며 안아주었다. 아기 트럼시키듯이 등을 쓸어내리며 괜찮다고 되뇌어주었다. 감정이란게 말처럼 쉬운게 아니니까 애쓰지 말라고. 여기서 조금 쉬면서 진정하고 천천히 풀면 된다고. 어머니껜 내가 가서 잘 말씀드리고 풀어드리고 다시 올게. 라고 말한다.
아 물론! 내일이면 다 풀려버릴 모녀지간의 사소한 투닥거림이었다. 그러나 나는 부모에게 순종적인 딸이었기 때문에 말대꾸하는 일이 손꼽힐 정도로 없었다. 사춘기도 없었다. (아빠엄마 말은 다 옳기도 했다.) "네. 알겠어요."가 일상이었기에 아마도 안으로 입 다물며 삭혔던 상처가 있었으리라.
여행에서 돌아와 그 기분의 오락가락함을, 예민했던 이유를 알았다.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여행 중에 메스꺼움도 멀미인 줄만 알았지. 아! 이 남자. 선견지명이 있었나.
시간이 많이 흘렀다. 뱃속에 있었던 아들이 지금은 2학년이 되었으니 9년이 지났음에도 선명히 기억하는 마음이다. 그는 다독여주었다. 다음날이면 사라지고 말 감정이었음을 모르지 않았겠지만, 그 순간의 마음을 귀히 여겨주었다. 단 한 번도 왜 그러냐고, 여행 중에는 힘든 것도 감안해야지. 왜 그러냐고 묻지 않았다. 괜찮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다고.
그 후로 나는 마음이 힘들 때마다, 내 감정의 바닥을 딛고 올라올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리드미컬한 토닥임을 기억하면서.
결혼기념일을 무던하게 보내는 편이다. 일 년에 한 번인 날이 어디 그날뿐인가 한다. 날짜 대신 마음을 기억해야지. 달력에 동그라미 치듯이 마음에 동그라미를 쳐야지. 일 년에 하루 말고, 일 년에 수십 번 동그라미를 그리고 싶다. 기념일이 되면 그날의 꽃다발과 선물이 주는 상투적인 감동 대신, 차곡차곡 쌓아둔 나만의 마음들을 추억한다. 언제나 그렇게 믿음은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