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절개 하겠습니다.

삶의 방식은 다르니까요.

by 예담


결혼을 하고 일 년 뒤에 아이가 생겼다. 어설프게 배를 쓰다듬어보면 느껴지는 태동에 멈칫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지기 시작했을 때, 아이의 움직임만큼 찐하게 느껴지던 마음이 있었다. 보호받던 위치에서 자리를 옮겨 이젠 보호자가 되었다는 책임감과 함께 자잘한 불안과 큰 기쁨이 덜컹였다. 덜컹대는 기차 안에서 멀미를 하며 목적지를 향해가는 설렘을 안고 미묘하게 달라 보이는 풍경을 음미했다.


몇 개월 뒤 산부인과 정기검진에서 아이가 거꾸로 돌아가 있는데 조금 더 지켜보자는 담당의사의 설명을 들었다. 아이가 다시 돌아서 자리를 찾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해야 할 다른 조치에 대한 설명이었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며 나는 조금 당황했다. 하얗게 질려 설명을 들었고 빈혈약을 처방받았다. "잘 챙겨 드세요. 그리고 2주 뒤에 검진받으러 오세요."


지금 읽고 있는 '모기 뒤에 숨은 코끼리' 책을 그때 읽었더라면 조금 나았을까? 딱 그 마음이었다. 윙윙 작은 모기 한 마리에 압도되었던 몇 개월을 보내고 결심했다.


"난 제왕절개를 할 거야!"


아이를 돌리기 위한(?) 체조와 시술이 진행되고 첫 내진을 한 후 내린 결정이었다. 온 기운을 자연분만이라는 목표에 맞추고 노심초사하기 싫었다. 내 안에 있는 아기가 엄마의 감정을 느낀다면 걱정에 마음 졸이는 날보다 봄햇살처럼 여유로운 마음이고 싶었다. 자연주의 출산에 대한 책이 쏟아지고 연예인들의 수중분만이 유행처럼 번지던 해였다. 관련된 책을 모조리 다 읽고 난 뒤 자연주의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음... 자연스러운 분만이 아기에게 좋다면 자연스러운 마음이 동반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책에 공통으로 쓰여 있던 자연주의 분만에 대한 장점은 아이의 높은 지능이 단연 강조되어 있었고 나는 그것이 거슬렸다.


내 아이의 지능이 높다면 물론 기쁜 일이겠으나 그건 몸과 마음 모두 건강히 태어난 뒤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뱃속의 아가와 나에게 말해주었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으니 너도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에너지가 아주 많은 사람이라면 다 해내고도 가뿐할지 모르지만, 나는 체력이 약했고 예민했다. 하나의 문제점이 발견되면 해결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지쳐버리는 사람. 그게 나였다. 그런 나를 알기에 자연분만을 목표로 한다면 다른 일은 모두 2순위가 되어버릴 것이 선연했다. 임신과 출산이 내 삶의 중심에 있지만 테두리로 밀려난 부분들도 분명 나였다. 이상적인 프레임에 맞춰서 얽매이기 싫었다.


그냥 즐거웁쟈!


"이룸아, 뱅글뱅글 돌아도 괜찮고 가만히 있어도 괜찮아. 네가 어떤 모습으로 있어도 우린 기쁘게 만나게 될 거야."


남편과 시어머니는 내 의견을 존중해주었고 엄마는 입술에 힘을 모아 잔소리를 일발 장전했다. 엄마는 내가 딸이니까 거리낌 없이 잔소리를 하고, 돌아서선 언제 그랬냐는 듯 나를 응원한다. 그것을 알기에 엄마의 잔소리 총은 늘 맞을 땐 아파도 돌아서면 덤덤한 것이다.


"시어머니한테 허락받았어?"


"내가 결정해요. 이건 남편이나 시어머니에게 허락을 맡는 문제가 아닌걸 엄마도 알잖아요. "


길게 설명드리지 않았다. 변명처럼 들릴까 봐 서론, 본론은 생략하고 결론만 말씀드렸다. 이유를 물으시면 서론과 본론을 들려드릴 생각이었으나 시부모님은 웃으며 알겠다고 하셨다. 단 한마디도 보태지 않으시고 되려 내가 불편할까 봐 얼른 화제를 돌리셨다. " 더더 많이 먹어. 입덧은 괜찮니? "


마음을 먹고 나니 한결 시원해졌다. 역아, 역아 돌리기, 자연분만에 대한 검색과 체조로 채워졌던 하루는 마음을 졸이고 날짜를 세느라 빠르게 흘렀지만 조바심을 덜어내자 시간은 다시 제 속도로 흘렀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일에 몰두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예민했던 마음이 너그러워짐을 느꼈다.


출산의 고통으로 엄마가 되는 첫 관문을 시험받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 옛날에는 그럴 법했던 믿음이었을지도 모르나, 지금은 사랑을 고통의 강도에 비하여 칭송하는 시대는 아니다. 모든 걸 바쳐 희생하는 사랑보다 한걸음 거리를 두고 지켜볼 수 있는 사랑이 아이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가 아니라 '어머니는 자장면을 제일 좋아해. 짬뽕도 좋아해'라고 말할 수 있게 하고 싶다. 엄마는 희생의 아이콘이 아닌 미소의 아이콘! 엄마를 생각하면 서글퍼지지 말고 웃음이 빵 터졌으면 좋겠다.


"우리 엄마는 취미도 많고 좋아하는 것들도 많아!"




아이를 낳고 버리거나 혹은 부모로서의 기본적인 책임조차 다하지 못하는 이들이라고 출산의 고통이 없었을까?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수중분만 모두 출산의 다른 방법일 뿐이지. 사랑의 차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빠가 출산의 고통을 모른다 해서 아이에 대한 사랑이 덜한 것도 아니고, 엄마가 군대의 처절함을 겪지 않았다 해서 애국심이 적은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에게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아기가 우렁찬 울음소리로 세상의 문을 열고 나올 때, 온몸에 힘이 빠진 채 누워서 아기의 얼굴을 마주하는 엄마의 눈가엔 뜨거움이 흐른다. 뺨을 타고 줄줄 흐르는 눈물은 고통의 눈물이 아닌 기쁨의 눈물이다. 처음 느껴보는 책임감과 기쁨, 마치 나도 세상에 처음 태어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아이를 낳은 후, 지금부터 본 게임은 시작된다. 내가 추구하는 사랑은 크고 작은 마음들을 잘 들여다보고 만져주는 무한함속에서 꽃을 피운다. 달갑지 않은 마음을 마주하는 순간에도 싹이 튼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꼭 안아주며 위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위안을 받는다.


어쩌면 그렇게 너와 나는 함께 태어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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