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의 힘은 '쉼'으로부터.

신혼 : 내가 만들어가는 길

by 예담


엄마는 강하다고 했던가. 강함에는 다양한 색이 존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엄마가 되고 나서 강하고도 약해졌다. 아이를 위해선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본능적인 강함이 생겼다면 반대로 아이를 우선으로 지키느라 자주 노심초사했다. 아이를 낳고 부채장수 우산장수의 마음이 되고야 말았다.


신혼은 그 마음이 오기 전이라, 하얀 스케치북을 앞에 두고 뭐든지 그릴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아무것도 몰랐지만 다 안다고 생각했고,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연애시절의 설렘과 풋풋함, 결혼을 준비하며 느꼈던 노곤함, 지나왔던 모든 과정들의 막이 천천히 내려지고 다시 부드러운 불이 켜지고 새로운 막이 올라갔다. 모든 게 나를 위해 준비된 공연장에 선 것처럼 충만한 마음이 들고 잘해보겠다는 의지와 용기가 불끈 솟아났다. 크게 두려울 것이 없었던 시절, 영원히 지켜주겠다 맹새하는 남편이 있고 새로움으로 가득한 집은 모델하우스처럼 정리되어 있다. 엄마의 잔소리에서 멀어지니 이제야 진정한 어른이 된 것 같기도 했다.


사내연애가 알려지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여러 말들이 나오고 주목받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다는 이유가 컸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멘탈이 별로 강하지 않았구려. 허허) 결혼을 하고 이른 아침 남편이 출근하면 베이킹을 했다. 베이킹과 책, 그리고 미드와 와인에 빠져 있었다. 살림에도 진심이었으나 이제 생각해보니 2인용 소꿉 놀이었을 뿐.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일로 리프레쉬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시간 부자였으니 뭐든 가능했다. 남편이 출근하면 배를 깔고 엎드려 노트에 끄적거리다 주방으로 슬슬 걸어가 머핀을 구웠다. 어떤 날은 또띠아피자를 만들어 맥주와 먹기도 하고, 빵을 가득 구워 버스를 타고 엄마에게 갔다. 갓 구운 빵을 전할 때 번지는 엄마의 웃음이 좋았다. 부풀어 오른 뜨끈한 빵을 담아 엄마에게 가는 길은 마음이 빵만큼이나 벅차올랐다.


결혼을 하고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가장 좋은 건 엄마의 칭찬,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주민등록등본에서 나왔지만 다시 버스를 타고 엄마에게 갔다.


정거장마다 소란했던 마음이 내리고 못다 한 마음이 탔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느리게 가는 길은 마음이 환기가 되었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이것저것 맞추고 재느라 시작도 전에 나가떨어졌을 법도 한데, 그때는 생각과 동시에 행동했다. 생각이 정리된 후 시작하는 게 아니라 하나를 생각하면 확장하여 두 개를 행동했다. 영어교재를 정하고 총판과도 컨택했다. 리딩을 위한 영어 원서는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여러 서점에 가서 사 왔다. 책상과 의자, 칠판, 책장을 구입하고 살고 있던 아파트의 일층 매물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14층에 살고 있었다.) 남편은 일사천리로 행하는 나를 지지해주었으나 집을 사는 과정에서는 표정으로 말했다. '일이 너무 커졌어요......'



영문학을 전공했고, 영어교육과로의 전과를 실패했지만 가르치는 일이란 함께 성장할 수 있어 매력적이었다. 공교육자로서의 사명이 중요한 것처럼 사교육자로서의 책임감과 개똥철학이 있었다.

1.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일 것.

2. 혼자 수업하지 말 것.

3. 마지막 타임 중3 여학생들은 차로 데려다줄 것.

4. 아이들의 성적을 공개하며 비교하지 말 것.

5. 부모상담시 보태거나 빼지 말고 담백하게 짚어 줄 것.


현수막을 내걸고 전단을 제작했다. 한두 명씩 상담전화가 오기 시작했고 입회원서를 작성했다. 한 달쯤 지나 10명 정도 되었던 학생들은 세 달이 되던 무렵 스무 명이 넘기 시작했고, 나는 25명을 커트라인으로 정하고 마감을 했다. ( 영어+수학, 한 타임에 5명씩 5타임정도로 그룹을 짰다. ) 그 후부터는 대기를 받았다. 대기 회원 원서를 미리 썼다. 그러니 중3이 졸업을 하게 되면 자동으로 대기 회원으로 채워지게 되었다. 12년 전이었고, 지방의 작은 소도시라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생각하지만 3할은 강단 있었던 멘탈덕분이 아닐까 싶다.


젊은은 나를 키우고 때때로 자만하게도 했지만 그 시절에 내가 나에게 취할 수 없었다면 모든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안다면 멘탈을 지키는 법도 알게 된다.



이전 01화연애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