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하는 날
엄마의 찐한 멸치육수에 쫄깃하고 감칠맛 나는 감자수제비, 갖가지 야채를 넣고 푹 끓인 나의 시그니처 야채 카레, 심신이 피로한 날 어김없이 생각나는 오징어볶음! 모두 쓰다가 말고, 다시 쓰다가 멈춘, 임시저장만 해둔 이야기들이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이 진정성이 있는지, 아니면 꾸역꾸역 쓰는 것인지, 쓰다 보면 알 수 있다. 아, 안 되겠다. 다음번엔 꼭 도전해야지 했는데...
마감 한 시간이 겨우 남은 이 시점 , 외할머니의 오드득 소리가 머릿속에 울린다. 아아아!!
어렸을 때 외식을 할 때면, 고삐 멘 소가 끌려가던 심정이 이럴까 싶었다. 외식이라면 신이 나야 할 법도 한데 그 반대였으니. 주구장창 아귀찜 집으로 향했다. 가정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골목 속에 아귀찜 집으로.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으면 우주선만큼 커다랗게 보였던 접시에 뻘건 아귀찜이 두 접시나 나왔다. 외할머니는 늘 드시는 음식인데도 처음인 마냥 맛있게 드셨다. 어린 나에게는 맵고 짜기만 한 수북한 콩나물이 왜 맛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발언권은 없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외가댁 가족의 외식은 늘 아귀찜. 아귀찜을 먹으러 갈 때는 모두 모였다. 한 달에 두어 번 반복되었던 찜 투어.
이 비위약하고 입 짧은 어린이에게 문제는 아귀찜이 아니었다. 돈가스까지는 바라지도 않았고, 콩나물을 깨작거리다가 계란찜이나 사라다 반찬을 먹으면 되니 모래성처럼 쌓아 올린 빨간 콩나물도 괜찮았다. 복병은 따로 있었으니, 그 이름하여 미더덕! 할머니는 미더덕을 즐기셨다. 오드득 오드득 입안에 넣으시고 한참을 씹으시다가 퇘, 하며 뱉어내셨는데 그때마다 어린 나는 멍하니 바라보다 숟가락을 놓고 싶은 심정이 되고야 말았다.
언젠가 한 번은 엄마한테 물었다. "왜 할머니는 자꾸 씹다가 뱉아요?" "뱉을걸 왜 먹어요? 너무 이상해!"
어린 나에게 엄마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원래 그렇게 먹는 음식이라고.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시는 음식이니 오래오래 잘 씹어 드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들어도 이해가 안 되기는 매한가지였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도 한참 후에나 알게 된 할머니의 맛.
아직 미더덕을 씹고 뱉을 정도의 풍류를 가지지는 못했으나, 알 것도 같은 할머니의 맛.
할머니가 미더덕을 오드득 오드득 씹으실 때마다 (우리의 부모인) 할머니의 자식들은 안도가 되었을까.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라고 확인하는 마음으로 더 맛있는 아귀찜 집을 찾아 돌고 돌았던 것일까.
그렇게 돌고 돌아도 우리 할머니는 한결같이 한 곳만 만족하셨지만, 자식들의 정성이 내심 좋으셨을까.
그 모든 마음이 뒤섞어진 우주선만 한 아귀찜 대자의 맛은 애틋한 맛으로 남았다. 어쩌면 할머니는 찜보다 가족이 모두 모이는 그날을 기다리셨던 게 아닐까. 늘 할머니를 걱정하는 자식들의 마음이 편안해지라고 더 열심히 미더덕을 씹으셨던 건 아닐까. 유년시절의 외식이 돈가스가 아닌 빨간 아귀찜이어서 나는 할머니를 더 농도 짙게 추억한다. 맵기만 했던 콩나물은 이제 칼칼하고 아삭한 데다, 뽀얀 아구 살을 발라서 감칠맛 나는 맵싹한 양념과 함께 먹는 아귀찜의 맛을 이제야 안다. 미더덕의 맛은 할머니의 나이 정도가 되어야 깰 수 있을 듯싶지만, 아무튼 느낌은 알겠다며.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