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마음에 들어!

아이의 긴장을 풀리게 만든 것

by 예담


"마음에 들어!"



전학 후, 학교를 다니던 아이가 처음으로 내뱉은 공식적인(?) 긍정의 표현이었다. 빠르게 적응하기를 바라지도 않았고, 바란다고 해서 속도를 맞출 아이도 아니었다. 원체 마음을 굳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속도가 느린 아이이기에 아이의 감정의 흐름을 가만히 지켜보곤 한다. 그리고 나는 느리기에 더욱 단단하고 여문 아이의 마음을 좋아한다. 아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마음에 든다는 말을 했다.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이유를 물었더니 아이가 하는 말이 구수하기 그지없다.



"응. 왜냐면, 국이 따뜻해! 엄마, 이 전에 학교는 애들이 너어무 많아서 급식실 앞에서 줄을 서야 했거든. 줄을 서면 다리가 아프고 국은 미지근하고 식어 있을 때가 많았었어. 그런데 지금 학교는 국이 따뜻해! 그래서 너어어어무 좋아. 줄도 오래 안 서도 돼. 다리도 안 아프고 따뜻한 국 먹으니까 마음도 편해"



푸하하하 세상에! 아이의 이유에 실소가 났다. 아이라고 무어 다를 테냐! 뜨끈한 국을 한술 떠야 몸도 마음도 풀린다는 한국인의 멋과 맛이랄까? 정서랄까? 아무튼 그 느낌적인 느낌에 아이는 긴장이 스르르 풀리고 말았다.






이사 오기 전 다니던 학교는 신도시에 위치해 있어서 아이들이 밀집되어 있었다. 한 학년이 열반이 넘었고, 한 반의 인원수도 30명에 육박했던 터다. 최신식의 학습시스템에 깨끗하고 넓은 교실과 정갈한 식당을 가진 학교의 단점은 없어 보였는데, 아이가 본 관점은 그렇게 달랐던 거였다. 이사 온 학교는 역사가 깊은 만큼 외관이 낡았고 복도는 좁고, 아이들도 절반 이상 적다. 그래서인지 아이의 만족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대충 이해가 갔다.


아이들은 지금에 집중한다. 어제는 어제라서 좋았고, 지금은 지금이라서 좋은 이유가 생긴다. 그러므로 늘 행복할 수 있다. 어른은 추억에 집중하느라 종종 지금의 행복을 놓쳐버리고 만다. 오늘의 국이 이렇게 따뜻했는데, 어제의 고기를 추억하는데 마음을 쏟는 격이다. 아이의 말을 통해서 오늘의 국의 따뜻함을 음미한다.


엄마도 오늘이 마음에 들어! 아이스커피가 시원했거든. 부는 바닷바람이 더할 나위 없이 시원한 우리 집도 좋아!






아이의 학교 선생님과 통화를 하던 중,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수업시간에 연극처럼 한 명씩 나와서 하는 발표가 있었는데 아이가 제 차례가 되자 앞으로 나와서 이렇게 말을 했다 한다.

"선생님, 저는 안 하면 안 돼요? "

"왜? 하기 싫어?"

"그건 아니고요. 제가 전학 온 지 얼마 안 돼서 쑥스러워서요."

모든 아이들이 제 차례가 되면 나와서 해야 했던 수업이었으니 노파심에 하신 말씀 일수도 있었겠고, 요즘은 발표를 중요시 여기는 부모들이 많으니 언급하셨을 수도 있겠다 싶다. 아무튼 통화를 하며 자연스럽게 나온 이야기였다. 나는 그 말을 전해 듣고 웃음이 났고, 되려 안심했다. 늦은 밤, 남편과 앉아 이야기를 하며 우리의 생각이 같음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마음을 쓸어주었다.


그렇지?

온이는 이미 발표를 한 거야.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으니까. 모두와 같은 정해져 있는 것을 말해야만 발표가 아님을, 때론 조금 다른 생각이어서 무안할 상황이 예상되더라도 어긋남이 보여도, 용기를 내고 표현할 수 있다면 걸음이 한결 더 가벼워질 거라 생각해. 가벼운 걸음은 어디로든 갈 수 있잖아.


스스로의 감정을 알고 만져주는 일에는 힘이 있다. 아이는 생각을 했고, 힘을 내어서 자신의 감정을 전했을 테다. 언제까지나 전학생일 수는 없을 테니 그 이유는 사라지고 말겠지만, 그때의 감정과, 감정이 전해지고 받아들여지던 순간은 오래 기억에 머문다. 유년의 추억은 내게도 그런 것이었으니.






속닥속닥,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비밀편지.


순간순간의 감정을 알아나가고, 그 감정을 모른 척하지 않았으면 해. 좋은 감정은 표현하고, 불편한 감정은 숨기는 것이 아닌, 모든 감정을 소중히 여기어 바르게 다룰 수 있기를 바라!


실은 고백하자면 말이야. 엄마는 서툴러서 불쑥불쑥 나오는 감정에 속수무책 부딪쳤거든. 이럴 수도 있고 그럴 수도 있는데, 정답처럼 감정도 정해놓고 틀린 답은 구겨 넣어서 숨긴 것 같아. 숨긴 마음은 내내 아팠어. 그것도 열심히 푼 답이었는데 말이야. 그러니까 모든 마음은 함부로 지우면 안 될 것 같아. 정답이든 오답이든 소중한 거야. 오답이면, 다시 한번 더 문제를 읽을 기회가 생기는 거잖아.


어떤 마음이 노크도 없이 불쑥 문을 열고 나오면, 이렇게 되뇌어 봐.

"음, 그럴 수 있어. 그럴 수도 있지."


너의 모든 마음에 토닥토닥.